“개미는 여름의 뙤약볕 속에서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여치는 매일 같이 시원한 그늘을 찾아다니며 즐겁게 놀기만 했다. 계절이 바뀌어 겨울이 왔다. 여름 내내 놀고만 지내던 여치의 집에는 먹을 것도 없고 땔감도 없었다. 추위와 허기에 견디다 못한 여치는 개미네 집에 동냥하러 갔다....” 누구나가 다 아는 이솝우화다. 젊었을 때 땀 흘려 일하지 않으면 인생 말년에 고생한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솝 얘기는 천편일률이 아니다. 나라에 따라 시대에 따라 결말이 크게 달라진다. 어느 현대판 ‘개미와 여치’ 얘기다. 구걸하러 온 여치를 할아버지 개미가 문전박대하는데 젊은 개미는 반갑게 맞아들인다. 그리고는 여치와 함께 밤새 놀자판을 벌인다. 노는 데 재미 붙인 젊은 개미가 다시는 일할 생각을 하지 않자 할아버지 개미는 “세상 말세가 됐다”며 개탄했다.
이보다 더 비극적인 일본판 시나리오도 있다. 허기를 참다못해 여치가 개미집을 찾아왔을 때 개미들은 모두 과로로 죽고 음식들도 썩어 있었다는 것이다. 일밖에 모르고 일에 쫓겨 사는 사이에 참다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일본인 모습에 대한 자기반성에서 나온 얘기다.
휴가철이 피크를 맞아 떠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남들이 떠날 때도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 역시 많다. 떠날 생각을 하면서도 비즈니스나 가정형편상 주춤하거나 포기하는 경우다. 휴가를 떠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휴가 갈 형편이 아닌데도 휴가 가는 행동이야말로 결단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다. “최근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임원들에게 ‘눈치 보지 않고 휴가 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라’고 지시한 후 스스로 3주 휴가를 떠나는 모범을 보였다. 이에 따라 SK에너지는 전 임직원이 2주 동안 여름휴가를 갈 수 있도록 내부 방침을 정했다. 이 회사 구자영 사장은 ‘잘 놀고 잘 쉬는 것도 경쟁력’이라며 ‘재충전을 잘해야 창의적으로 업무를 하는 만큼 임원들은 솔선수범해서 여름휴가를 2주씩 가야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임원들이 휴가 가라는데 눈치 볼 직원들이 있을까. 더욱이 팀원이 휴가일수를 채우지 못하면 팀장이 인사고과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SK그룹은 무조건 떠나야 하는 분위기가 됐다. 기업이 덩치가 커질수록 일은 더 많아지는 법이다. 일이 없다면 만들어내서라도 직원들을 바쁘게 부리는 게 기업의 생리다. 그런 점에서 SK그룹 최고경영진은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외국기업들의 대형사고를 떠올리면 선견지명적이다.
사원들의 과로가 회사에 얼마나 큰 손해를 끼칠 수 있는가를 실감나게 드러낸 사건이 있다. 유조선 엑손 발데즈호의 알래스카 연안 기름유출사고다. 엑손석유는 이 사고에 따른 벌금과 정화비용으로 30억 달러를 지출했으며 그러고도 해결되지 않아 총 400억 달러 소송에 휘말렸다. 이 사고는 재판과정에서 선원들의 과로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소련의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도 과로 때문이었다. 핵발전소를 수리하던 기술자들이 쉬지 않고 일을 하다가 누출되어 8천여 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만 명이 핵에 감염되는 비극을 당했다. 미국우주선 챌린저호의 공중폭발사건도 과로 때문이었다. 발사 전날 관계자들이 20시간 일했는데 이렇게 서두른 것은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는 윗사람들의 공명심 때문으로 알려졌다.
과로의 대가는 비싸다. 과로는 여유를 앗아간다. 그리고 사람이 여유가 없어질 때 그야말로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온갖 일들이 일어난다.
바쁘다는 망(忙)자는 마음과 망이라는 두 글자가 합쳐진 것이다. 즉 마음을 잃은 상태라는 뜻이다. 공자도 일장일이(一張一弛)라고 말했다. 활시위를 죄었다 늦추었다 하는 것처럼 사람도 마냥 긴장만 하고 있으면 안 되고 휴식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처칠은 휴가에 대해 “자기 주위를 둘러보는 시간, 생각하고 독서하고 뜰의 화초를 가꾸는 시간, 한마디로 살기 위한 시간을 갖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왜 떠나는가. 결국 살기 위해서다. 개미처럼 살아야 하겠지만 여치처럼 살아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지금이 그런 때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