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6일~28일 유콘 화이트호스와 미국 알래스카 일대에서 기아자동차캐나다법인의 뉴스포티지 시승행사 참여기를 두 번에 나눠 싣는다.

1. 화이트호스(Whitehorse)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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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트호스에서 알래스카로 가는 길 주변의 전형적인 시골마을.
거대한 열병식처럼 양 옆으로 흰 눈 뒤집어 쓴 채 줄지어선 봉우리들, 2차선 하이웨이 갓길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이름 모를 들꽃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메이드인코리아’ 뉴스포티지 18대 행렬. 유콘(Yukon territory)의 주도 화이트호스에서 미국 알래스카 스캑웨이로 가는 길은 장엄했다.

그날 새벽 눈을 뜬 건 5시. 밖은 벌건 대낮이었다. 화이트호스엔 여명이 일찍 찾아왔다. 아니, 처음부터 밤은 없었다. 전날 밤 11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토론토와 시차 3시간을 감안하면 새벽 2시다. 몸은 젖은 수건처럼 늘어졌지만 눈은 또렷하다.

하지(夏至)가 한 달 가량 지난 7월 하순이라 낮이 그만큼 짧아졌는데도 끝내 어두움은 찾아오지 않았다. 눈부신 곳에 편안한 휴식은 없는 법. 행여 한 줄기 빛이라도 들어올까 두꺼운 커튼으로 창문을 꼭꼭 가린 채 잠을 청했다.

화이트호스를 떠나는 마지막날 만찬석상에서 씩씩한 여자 시장 베브 벅웨이에게 “도대체 이곳에서 낮이 가장 길 때 몇 시간이냐?” 물었더니 “24시간”이라 짧게 대답하며 웃었다.

스캑웨이까지는 180Km. 차량 18대가 동시에 출발했지만 어느새 앞뒤로 까마득하게 멀어지고 홀로 달리고 있었다. 동승한 채드 소우는 밴쿠버에서 온 20대 젊은 기자. 필자에게 첫 운전을 권했지만 바깥경치 구경이나 해볼 요량으로 양보하는 척 은근히 그에게 운전대를 맡겼다.

채드는 자동차 전문기자답게 운전기능 모든 것을 시험하려는듯 했다.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대로 기기를 작동했다. 다른 것은 참을 수 있겠는데 급가속, 급제동만은 쉽지 않았다.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것도 모르고 채드는 “속도감, 안정감 참 좋다”며 혼자 평가하고 감탄했다.

슬쩍 말을 건넸다. “나 토론토에서 우리 가족 다시 만나고 싶거든?” 채드는 큰 소리로 웃더니 “걱정말라”며 자신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말을 돌렸다. “피곤하면 언제든 말해라. 바꿔주마”했더니 채드는 고개를 세게 흔들며 운전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란다. 그렇다면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지. 속도가 늦춰지고 차체는 안정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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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트호스에서 스캑웨이로 가는 길에서 필자.

그제서야 유콘의 대자연이 눈에 들어왔다. 날카로운 봉우리, 뭉툭한 봉우리, 에머럴드 빛보다 더 휘황한 ‘에머럴드 호수’, 길게 이어진 협곡, 드넓은 평원...한참 삼매경(三昧境)에 빠져있는데 산마루를 휙 도는 순간 갑자기 낯선 차가 길 가운데 떡 버티고 서 있었다. 고장인가?

길옆에서 검은 물체가 움직였다. 곰이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인간들이 자신을 살펴보고 있는데도 곰은 아랑곳하지 않고 풀을 뜯어 먹었다. 사람보다 곰 개체수가 많다는 유콘이 실감났다. 곰스프레이를 만지작거렸다. 위급시 곰퇴치에 사용하라고 운전석 옆에 실려 있었다.

차에서 내려 옆으로 다가섰다. 불과 2~3미터. 힐끗 무표정하게 올려다보더니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우리에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곰을 향해 ‘퇴치 스프레이’를 떠올린 게 부끄러워졌다.


2. 스캑웨이(Skagway)

구름이 옆으로 비껴날았다.

높이 올라왔다는 증거다. 알래스카로 넘어가는 고개 정상에 차를 세웠다. 표지판에 적힌 해발고도는 870미터. 눈으로 보기에 적어도 2천미터 고봉들이 정렬해 있으니 이들은 해발 3천미터는 족히 된다는 얘기다.

고갯마루에서 채드는 우리가 타고온 뉴스포티지 차체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Beautifulll line!”을 연발했다. 단순한 서양식 칭찬은 아니었다. 첫눈에도 당차고 세련되게 보였다. 혹시나 해서 물었다. “내가 한국인 기자라서 한국차를 칭찬하느냐?” 그는 안경이 벗겨질 만큼 크게 고개를 저었다.

미국 국경사무소는 험한 계곡 중간에 자리잡고 있었다. 수십번 국경을 통과해봤지만 이렇게 훌륭한 미국관리는 처음 본다. ‘영자’라는 한국인 친구 때문만은 아닌듯 싶었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 손짓 하나 어디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고 친절하고 완벽한 ‘미합중국 공무원’이었다.

내려오는 길엔 운전대를 넘겨받았다. 미시령 고개가 떠올랐다. 한국에서 딱 이맘때면 늘 아내와 어린 아들 딸을 싣고 미시령을 넘었다. 요즘도 동해 바다는 눈이 시리게 푸르고 속초거리는 명동처럼 흥청거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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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캑웨이에 정박한 대형 크루즈선. 골짜기 좁은 항구에 보통 4척이 들어온다.
왼쪽 계곡을 내려다보니 천길 낭떠러지. 아찔했다. 사실대로 털어놓자면 운전을 바꾸자 한 건 순전히 불안감 때문이었다. 채드는 그 가파른 내리막 왕복2차선 길에서도 시속 100Km 막무가내로 달렸다. 아무리 뉴스포티지 브레이크와 균형능력이 좋다 해도 이건 아니었다. 운전석에 앉아 속도계 바늘이 60Km이하로 내려가는 걸 보고서야 비로소 불안감이 가셨다.

스캑웨이는 알래스카 크루즈여객선들이 꼭 들러가는 관광지. 좁은 피요르드식 계곡이 내륙 깊숙이 파고 들어온 산간 소도읍이다. 화이트호스와 함께 1900년대 초 골드러시로 유명했던 곳이다. 클론다이크강의 사금(砂金)은 지금도 옛명성을 유지한다.

인구 1만5천명 시골도시의 다운타운은 북적였다. 그럴만도 했다. 비좁은 항구에 3천명 타는 크루즈선 4척이 정박해 있었다. 상주인구만큼 많은 여행객들이 호텔보다 더 큰 배에서 내렸으니 오죽하랴.

이곳은 화이트호스보다 낮이 짧은 것 같았다. 밤 10시인데도 주위에 희미한 땅거미가 내려 앉았고 갑자기 인적이 끊겼다. 골짜기를 꽉 메웠던 거대한 크루즈선들이 거짓말처럼 조용히 빠져나간 뒤였다. 항구엔 휑뎅그레 적막만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