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의 달력은 8월이 정월이다. 8월은 새로운 시작의 달이다. 광복의 8·15와 건국의 8·15가 있는 달이다. 긴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나 민족의 빛을 되찾고 새로 나라를 시작한 태극기 휘날리는 달이다.
그러다 문득 참담하도록 부끄러운 아픔을 마주하는 달이기도 하다. 바로 8·29일 국치일(國恥日)이다. 특히 올해는 일제의 한국 강제병합 10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은 망국 100년 만에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우뚝 섰다. 8월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달이다.
토론토의 8월도 새로운 시작의 달이다.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애국지사 3인의 초상화가 한인회관에 게시된다. 도산 안창호 선생, 안중근 의사, 백범 김구 선생이 ‘보는 가운데’ 65주년 광복절 기념행사가 열린다. “나는 천국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 국권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대한독립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국권이 회복되고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조국과 해외동포사회를 내려다보며 천국에서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삼창하는 안중근 의사의 모습을 그려본다. 토론토의 올 광복절행사는 어느 해보다 뜻 깊고 가슴 뿌듯한 자리가 될 것이다.
한인사회에 새로운 빛을 선사한 곳은 캐나다애국지사기념사업회(회장 김대억)다. 기념사업회는 약 3개월 전 한인미술가 3명에게 애국지사 초상화 제작을 의뢰, 지난 11일 도산홀에서 완성작 공개행사를 가졌다. 지난 3월 창설 당시 백지에서 출발, 5개월 만에 일궈낸 역작이다. 기념사업회 집행부와 위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초상화 제작에 심혈을 기울인 미술가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번 사업은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특히 자라나는 2세들에게 한국인의 뿌리를 알려주고 역사교육의 현장을 남겨주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런 점에서 애국지사 초상화 게시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다른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모습도 화폭에 담아 한인회관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큰바위얼굴’로 삼게 해야 한다. 단순한 초상화 설치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정신도 이어받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추모사진전, 기념서적 발행, 장학기금 설치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한인회관의 일부 공간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2세 역사교육장소로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모국의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면 커뮤니티가 바로 설 수 없고, 특히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에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민족개조론을 주창하며 뛰어난 웅변으로 한국인의 가슴에 민족혼의 불꽃을 일으킨 안창호 선생은 숱한 명언을 남겼다. 그 중에서 요즘 한인사회에 크게 와 닿는 가르침 하나만 소개한다.
“내게 한 옳음이 있으면 남에게도 한 옳음이 있는 것을 인정하여서 남의 의견을 나와 다르다 해서 그를 미워하는 편협한 일을 아니하면 세상에는 화평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나와 다른 의견을 용납하는 아량이 없고 오직 저만 옳다하므로 그 혹독한 당쟁이 생긴 것이다. 나도 잘못이 있는 동시에 남도 옳을 수 있는 것이어든 내 뜻과 같다 아니해서 멸족까지 하고야 마는 것이 소위 사화(士禍)이었으니 이 악습이 지금도 흐르고 있다....”
선생은 우리 민족의 편협성과 당파성을 지적하면서 비록 의견이 서로 다르더라도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선생의 가르침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였다면 실협사태는 오래 전에 끝났을 것이며 한인사회의 이념대립도 지금처럼 깊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분쟁 당사자들은 애국국지사 초상화가 걸린 한인회관에서 ‘화해모임’을 갖는 게 어떨까.
국가의 품격은 곧 국민의 품격이다. 국민이 얼마나 자존심을 갖고 품위 있게 살아가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한인사회의 품격도 마찬가지다. 한인 품격에 달려있다. 품격의 원천은 모국역사에 대한 자부심이다. 이번 애국지사 초상화 게시를 기점으로 모국역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그들의 숭고한 정신도 함께 계승하려는 노력이 더해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