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6월 하순부터 8월 초까지 미국 하버드대에서 단기연수를 하고 돌아왔다. 연수기를 3회에 나눠 싣는다.

기숙사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의 식당에 가려면 존 하버드(John Harvard) 동상을 지난다. 아침 7시인데도 동상 앞에는 사람들이 북적여 이들 사이를 뚫고 나가기가 늘 거추장스러웠다. 언제 도착했는지 몰라도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다. 아마 버스에서 앉아 자면서 밤새 달려와 세수도 안 하고 내린 듯하다. 하버드! 이 한 마디는 어느 정도 마력을 가진 듯하다. 눈이 부스스한 사람들은 하버드의 창시자 존 하버드의 좌상 앞에서 사진 찍기에 바쁘다. “그의 발끝에 손을 대고 사진을 찍으면 자식들에게 복이 온다”는 소문 때문에 그의 구두 앞 끝은 사람들 손가락에 닳아 청동색이 구리색으로 반짝인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손을 댔으면 쇠가 저렇게 닳았을까.

관광객들은 밤낮으로 계속되고 주중 주말이 따로 없다. 하버드교정은 밤 10시가 되어도 오고가는 학생들과 관광객들로 한창이다. 하나의 좋은 관광자원이며 이 때문에 주변 일대는 상점, 술집, 음식점, 선물가게로 성시를 이룬다.

그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어보면 대개는 중국말이다. 중국인들이 경제가 나아지면서 대거 몰려오는 것이다. 다른 관광지보다 유명대학을 보겠다는 생각은 바로 그들의 교육열을 보여주는 듯했다. 다음이 한국말, 기타 짐작할 수 없는 말들이다. 일본말은 이미 없다. 60년대 극성을 부리던 일본인들의 ‘깃발부대’ 관광은 이미 자취를 감춘 듯하다. 관광도 국력의 상징 아닌가. 아직 인도-파키스탄 쪽 사람들의 혀 짧은 발음은 들려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하버드에 다녀갈 정도의 경제수준이 안 되는 모양이다. 몰려오는 정도, 학생들의 수로 보아 21세기 후반부터는 역시 중국인들의 세상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보스턴(정확히는 캠브리지)의 하버드대학교 교정은 누구나, 언제나, 들어갈 수 있도록 대문이 개방됐다. 그러나 도서관 등 건물출입은 제한된다. 또 관광객을 위한 가이드의 마이크 사용도 금물이다. 그래서 가이드들이 목청을 높여 설명하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존 하버드씨는 1636년 이 대학을 세웠으니 하버드대학은 거의 400년의 역사를 가졌고 수많은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이 중에는....” 이들은 수백 년 된 높고 싱싱한 나무와 잔디로 덮인 교정(‘하버드 야드(Yard)'라고 불린다)을 둘러싼 고풍스런 건물들을 설명한다. 교정에는 의자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학생들이건 방문자들이건 누구나 앉아서 또는 누워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앉았거나 누웠거나 간에 컴퓨터를 두드리거나 책을 읽고 있는 것은 하버드생들이다. 하버드생들은 잠시의 시간낭비도 허용하지 않음을 목격했다. 하버드대가 ’하버드‘임은 그들의 분초를 다투는 노력 때문이란 것을 느꼈다. 밥을 먹을 때도, 누워서 쉴 때도 손에는 책 아니면 노트북컴퓨터가 있다. 노트북을 읽으면서 바삐 걸어가는 학생들을 볼 땐 감격스러웠다. 얼마나 시간이 부족하면! 공부란 저렇게 하는구나. 이것이 하버드이고 이것이 미국이구나. 감탄사가 나왔다.

관광객 중에는 어린 초등학생부터 대학생들도 많다. 자녀들에게 학교를 구석구석 보여주고 역사를 설명해주는 모습에서 난, 가슴이 찌릿했다. “나는 부모로서 우리 애들에게 하버드를 한 번 구경이라도 시켜주었나?”하는 자책이 가슴을 쳤다. 하버드는 고사하고 코앞의 토론토대학교나 요크대학교, 라이어슨대학교를 함께 가 본 적이라도 있는가. 애들이 대학 다닐 때 학교를 함께 돌아본 적이 있는가. 몇 번이나 기숙사에 찾아갔는가. 반성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없이 이어졌다. 제들이 알아서 공부 잘 하겠지 하는 안일함 때문이었었다.

학생 때는 배우는 즐거움도 있지만 공부가 주는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클 것이다. 더군다나 공부 외에 급우들, 선후배, 교수들과 어울려 교제도 해야 하고 이러면서 인생을 배운다. 공부만 잘하면서 외톨이가 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급우들과 원만해야 하고 교수들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우리 애들 같은 소수민족 출신이라면 그것 때문에 받는 무언의 스트레스가 분명 있을 것이다. 왜 동양애들은 동양애들끼리, 서양애들은 서양애들끼리 만나면 편안한지. 동양인 중에서도 한국인이라 하면 왜 더 가깝게 느껴지는지. 이것은 애들이 다른 인종과 접하면 약간은 불편하고 신경을 더 쓴다는 반증이 아닌지. 이런 모든 것이 인간관계이고 이를 잘 유지하는 것은 공부 못지않게 중요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학생으로서 받는 스트레스는 부모의 상상을 넘을 수 있다. 이걸 애들이 재학하던 시절에 이해해 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자녀 교육에 얼마나 무관심했는가를 깊이 반성했다.

지난여름 7주간 하버드에서 뭘 특별히 배웠다기보다는 서양사회, 특히 일류대학에서 공부하는 방법의 일단을 본 것이 나에겐 때늦은 경험이지만 소중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