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영어를 잘해야 하는가. 어느 정도가 잘하는 수준인가. 영어에 대한 내 목표는 서양 영화를 자막 없이 이해하고 라디오나 TV의 코미디를 즐기며, 서양인들이 웃을 때 나도 따라 웃으면 만족한다는 정도다. 크루즈(Cruise)여행 갔을 때의 불편하고 어색함을 기억한다. 배 안의 극장 안에서는 매일 저녁이면 각종 쇼가 벌어지고 그중에는 코미디가 언제나 끼어있다. 옆 사람들은 배를 잡고 웃는데 우리 한국인들끼리는 고도에 표류한 듯 심각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알아듣지를 못하니 근엄한 표정으로 와인이나 마시면서 빨리 끝나기만 고대했다. 이곳에서 40년을 살았는데도 그랬다. 공부를 안 하면 백년을 살아도 영어 못하기는 마찬가지란 말은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자녀들의 영어실력이 문제되는 것은 부모들이 그들의 영어실력에 착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자녀들이 서양영화를 이해하고 코미디를 즐기는 수준이어서는 부족하다. 학문적 논문은 구글(Google)에서 다운해서 읽는 수준이 결코 아니다.
늘 보는 토론토스타(Toronto Star)나 글로브앤드메일(Globe and Mail) 수준을 훨씬 넘는다. 영어신문은 단어나 문장의 수준을 초.중학교 정도의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러므로 신문을 불편 없이 읽는다고 해서 대학공부에 지장없을 것이라 안심할 수 없다. 한국의 정부문서나 사법부의 판결문 등을 너무 어렵게 쓴다고 비난했다.
이곳 학술논문은 쉬운가. 6.50~29달러를 신용카드로 내야 컴퓨터로 받는 이런 논문들은 내 실력으로는 내용도 어렵지만 우선 해독이 결코 쉽지가 않았다. 신문기자들이 1~2장으로 쉽게 압축할 만한 논문이지만 단어도 생소하고 문자도 복합적이다. 어려운 단어를 써서 논문의 질을 높여 보이게 하고 그래서 권위를 인정받으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른 나는 과거 여기서 태어난 우리 애들의 영어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안심했다. 이런 논문을 한 번 읽어서 이해하고 또 그런 논문을 본인들이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실력인지를 한 번도 짚어 보지 않았다.
하버드 6주간 나는 인종차별, 여성차별, 환경오염, 개발도상국의 여성들을 위한 마이크로 파이낸싱(Micro-financing), 물이 적은 지역의 화장실과 건강 문제, 인류를 위협하는 국제전염병, 사업발전 모델연구(Case-Study) 등 수십 개의 토픽에 관해서 읽고 강의를 들었으며 토론에 참여했다. 그 규모는 모래사장의 모래 한 알만하겠지만 이걸 위해서 하루 종일 공부하고 자정을 훨씬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남들이 다 이렇게 공부하므로 따라 한 것이지 나만 유난 벌떡스럽게 더 노력한 것은 아니다.
‘히로’라는 50대 초의 일본학생은 “이래선 쫓겨나겠다” 걱정됐는지 새 자전거를 400달러 주고 샀다. 여기 저기 띄엄띄엄 떨어진 교정을 걸어 다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였다. 자전거는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교통수단이었다. 어떤 여학생들은 가방을 멘 채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다녔다. 나는 반바지에 티셔츠, 양말 없는 샌들 차림에 배낭을 지고 걸어 다녔다. 학생들은 내가 곧 70세가 된다고 말하면 “신분증을 보자”면서 믿지 않았다. 감사한 일이었다.
캠브리지시의 다운타운 22에이커 땅을 차지한 하버드에서 여름학기를 지내는 것은 기숙사-식당-교실-컴퓨터실이나 도서관을 순환하는 생활이었다. 나는 걸어 다니느라고 시간은 다소 소모해도 아이팟을 귀에 꽂고 뭔가 들으며 다녔으니 분초를 다툰 시간활용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주중이니, 주말이니 하는 개념은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