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초기 인류는 생존을 위해 열매와 곡식을 따고 날짐승·들짐승을 돌멩이나 몽둥이로 때려잡았다. 탄자니아 세렝게티평원에서 사자의 사냥성공률은 평균 15%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15%를 유지시켜주는 사냥감들은 병들거나 다친 들짐승과 연약한 새끼다. 살집 좋은 건강한 영양이나 누, 버펄로를 잡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
그 15%를 깎아 먹는 것은 수컷들이다. 새끼양육을 도맡은 암사자들은 치열한 모성애 때문인지 성공률이 30%에 이르지만 수컷들은 5%도 채 안 된다. 타고난 무능이다.
수컷들은 오줌으로 표시해 놓은 자기구역을 어슬렁거리며 순찰하다 어미들이 새끼 먹이려 어렵사리 잡아놓은 사냥감을 보는 족족 강탈해가기 일쑤다. 인정사정도 없다. 빼앗긴 먹이가 아까워 암사자들이 고기 한 점이라도 넘볼라치면 잔인하게 폭력을 행사한다. 씨만 뿌려 놓고 한 번도 부양책임을 져 본 적 없는 제 새끼마저 서슴없이 죽인다.
암컷에게 없는 갈기털 멋지게 휘날리며 위풍당당한 백수(百獸)의 제왕이 겉보기와는 영 딴판이다. 제 새끼 먹이나 가로채는 비루(鄙陋)하고 치사한 존재다. 물론 생존과 균형이라는 미명하에 야생에서 이같은 수탈은 합리화되지만 말이다.
인간이라고 나을 것도 없다. 큰 머리통 말고 힘도 보잘 것 없는데 사냥이 어디 쉬운 일인가. 활을 만들고 돌화살촉을 깎아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지만 어차피 들로 산으로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하는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어느 날 사냥도 안 되고 배도 고프던 차에 다른 집단 움막 한 켠에 쌓인 곡식과 열매, 사냥감들이 눈에 띄었다. 저걸 그냥 지나쳐? 들짐승에게 향했던 몽둥이 방향을 틀어 눈 질끈 감고 인간에게 휘둘렀다. 단숨에 끼니 걱정이 해소됐다. 세상에 이 쉽고 편한 길을 두고 왜 그리 어렵게 살았던가.
이들은 정기적으로 인근 동네를 돌았다. 한 손엔 몽둥이, 다른 손엔 전리품 수거용 가죽부대가 들려 있다. 벼룩도 얼굴이 있는 법. 허구한 날 반복되다보니 은근히 미안한 감도 들어 그럴싸한 명분을 끌어왔다. 외적방어, 질서유지.
세계 4대 문명 발상지라는 이집트 나일강,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인도의 인더스강, 중국 황하 일대에 남겨진 벽화엔 공통점이 있다. 화려하게 치장한 대장 앞에 창칼을 든 군인, 그리고 그 앞에 곡식·짐승을 갖다 바치며 고개 조아리는 농민이나 노예. 몽둥이질은 이렇게 인류의 역사와 함께 태동했고 제도화됐다.
그렇다면 지금은?
사소한 사례를 들어본다. 토론토 길을 지나다보면 아무것도 아닌 도로공사가 3달인지 3년인지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인 경우가 허다하다. 완벽을 위해서? 필자 눈에 이건 순전히 핑계다. 1주일이면 충분한 공사를 1년 끄는 건 제도를 악용한 착취이자 보이지 않는 몽둥이질이다. 구멍가게에서 피땀 흘려 벌어서 낸 세금이 이런 식으로 날아가는 건 참 억울한 일이다.
횡령만이 범죄가 아니다. 관료들이 법과 제도라는 몽둥이를 앞세워 끼리끼리 잘 먹고 잘 사는 건 세계 어느 나라도 예외는 아닌듯하다. 지난 8월1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의회에서 고위공무원 연봉제한 법안이 상정됐다 해서 오죽하면 그랬을까 자세히 뜯어봤다.
캘리포니아주에서 가장 가난한 소도시인 벨(Bell)시의 시청 국장 연봉이 80만 달러, 은퇴하면 죽을 때까지 종신연금이 60만 달러라 한다. 국장 보좌관 연봉도 40만 달러. 이들의 은퇴연금을 벨시가 지급하지 못하면 인근도시가 함께 물어줘야 한다.
이 도시의 재산세율이 1.5%로 주내 최고라는 사실에 이르러선 말문이 막힌다. 부자동네도 1% 안팎이라는데. 가난한 주민은 중과세에 신음하고 공무원은 호의호식? 지독한 악성이다.
지금 공직세계의 부조리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가정이나 평범한 모든 조조직에도 해당된다. 조직에서 함께 나눠 져야할 부담을 동료에게 전가하는 것, 자신의 무능과 게으름을 시스템 잘못으로 미루는 일, 절차적 정당성을 획득한 공동체파괴, 오직 상대방을 괴롭힐 목적으로 하는 합법행위... 이 가운데 가장 무서운 건 교묘하게 합법의 탈을 쓴 몽둥이질이다.
요즘 우리 한인사회에 이런 몽둥이가 너무 횡행하지 않는지... 다 함께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