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에서 만난 한국인교수 한 분은 하버드학생들의 질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매년 전 세계에서 학교수석 약 3,600명이 입학원서를 냅니다. 이 중에서 학교는 4가지 점에 주목하면서 연간 700~800명을 뽑습니다. 이 중에서 약 30%는 공부를 견디지 못해 다음해에 자진중퇴하거나 낙제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고교 성적이 우수하다든지, 반에서 수석이라든지 정도로는 입학이 어렵다. 하버드가 입학심사 때 주목하는 것은 첫째, 부모나 조부모 중에 하버드 출신이 있는지, 둘째, 학교에 어느 정도 기부금을 낼 수 있는지, 셋째, 학업성적, 넷째, 장래성이다. 하버드 졸업생은 세계 어느 나라 대학원도 환영한다. 대신 하버드대학에서 하버드대학원으로 올라가는 것은 지독하게 힘들다. 그러므로 학부를 공부가 약간 쉬운 다른 대학에서 하고 좋은 성적을 내서 하버드대학원으로 입학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이 교수(그리스어)는 사석에서 설명했다.
어느 날 나는 숙제하느라고 컴퓨터룸에서 밤 2시가 지난 줄을 모르고 있었다. 고등학생처럼 어리게 보이는 남녀 학생들이 계속 들락거렸다. 새벽 3시가 됐는데도 학생들은 떠날 줄 몰랐다. 나중에 청소하는 분들에게서 들으니 어떤 학생들은 밤을 새기도 한다는 것이다. 캐나다나 다른 나라의 대학교에서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겠지만 밤을 새는 모습을 처음 보면서 나는 감동이 깊었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들은 삶이 쉬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치열하게 노력해야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6월 하순 하버드에서 여름학기를 시작하기 전 나는 공부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아침과 오후는 학교서 시간 보내고 방과 후에는 운동이나 하면서 맥주나 마시고 아니면 보스턴 일대를 관광이나 다녀볼 생각이었다. 음악회에도, 미술관에도 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개강하는 첫날 아침의 오리엔테이션 시간도 불참했다. 다음날부터 그 대가는 톡톡히 치러졌다.
오전, 오후 2시간씩 하루 4시간 주5일 수업은 대부분 토의와 발표형식이었다. 공부는 자기가 하는 것이었다. 숙제를 안 하면 이런 토의에 참여할 수도, 급우들 앞에서 발표도 할 수 없었다. 학생들의 중국식 영어, 독일식 영어, 중동식 영어 발음을 이해하는 것은 본토 영어를 이해하는 것보다 어려웠다. 그래도 들은 것으로 하고 질문도 던지고 대답도 해야 했다.
이런 중에서 간혹 동문서답도 있었겠지만 잠은 3~4시간으로 줄이더라도 공부를 안 해올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도 선생이 영어발음을 고쳐주거나 단어를 설명해 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선생은 다만 발표자, 질문자의 발음이나 잘못된 단어선택들을 쪽지에 적어 건네주는 역할만 수행했다. 한 반 15명 미만의 학생들은 각종 형태의 토의에 참여했다. 토의에도 하크네스(Harkness), 소크라테스(Socratic), 피시보울(Fishbowl) 등의 종류가 있었다.
글을 읽고 요점을 적는 데도 서머리(Summary)냐, 아웃라인(outline)이냐, 앱스트랙(Abstract)이냐에 따라 형식과 내용이 다름을 처음 알았다. 나는 비즈니스-커뮤니케이션 클래스였기 때문에 사업계획서 작성법, 사업의 진단 등을 케이스스터디 방식으로 또 배웠다. 읽고 쓴 모든 교재를 학기의 주제인 ‘인류의 성차별(Intersection of Gender and Power)’과 비즈니스 등 두 가지 각도에서 재조명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취급했던 모든 교재를 총괄해서 쓰는 졸업논문(Capstone Project)이었다. 편지지로 10페이지를 쓰고 교실에서 10분간 이를 설명하며 5분간 질문을 받는 프로젝트인데 컴퓨터의 파워포인트 프로그램까지 동원해야 했다. 파워포인트 경험이 전무한 까닭에 이를 젊은 급우들에게서 속성으로 배우느라고 귀중한 반나절을 소비했다.
숙제가 많고 공부가 밀릴 때는 아침밥이나 점심 거르는 것은 다반사였다. 10대 연령부터 70대까지의 모든 학생들이 비슷했다. 공부는 연극이나, 국제정치, 종교문제 등으로 달랐다. 대부분 숙제도 안 하고 우쭐대며 빈둥거리던 일부 학생들은 도중하차했다. 200여 수강생 중 12명이 환불도 못 받고 조기귀향했다. 그들은 가족들에게 도중하차 이유를 어떻게 설명했을지 궁금하다. 한국, 중국, 일본계들은 모두 악착같이 매달렸으므로 이런 수모를 겪지 않았다. 장래가 보이는 모범적 학구열이었다. 이들 중 특히 여학생들은 학기 첫 주 학교생활이 암담해서 줄줄 울었다고 한다. 나도 중도포기를 생각했었다. “내가 이 나이에 왜 사서 고생?” 이런 생각은 다행히 도전정신으로 변하기는 했지만.
하버드도 좋지만 아이비리그와 서쪽의 스탠포드도 매년 손가락 꼽는 대학교다. 미국뿐 아니라 이곳 토론토대학교를 위시해서 매길, 퀸스, UBC, 워털루 등 캐나다의 여러 대학교도 한 가지로 우수하다. 꼭 하버드에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찍은 대학교가 있다면 미리 서머스쿨 정도 다녀 보는 것이 좋겠다는 점은 분명했다. 그리고 부모는 자식들의 학비를 대주건 안 대주건 간에 함께 공부한다는 태도를 자녀들에게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