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신문을 읽다가 두 개의 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소녀시대’의 일본 데뷔공연 뉴스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에 시집 온 몽골주부 얘기였다. 두 기사는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한국인은 누구인가를 다시 생각게 했다.
지난 25일 도쿄에서 열린 소녀시대 공연을 보려고 일본 팬들이 전국에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2만이 훨씬 넘는 청중 중에 상당수는 10~20대 여성으로 이들은 한국 걸그룹의 춤과 노래에 열광했다. 일본취재진도 수백 명이 몰리는 등 언론도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소녀시대가 일본열도를 뒤흔들자 일부 한국신문은 “일본에 신한류시대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2003년 ‘겨울연가’가 중년여성들의 심금을 울렸다면 7년 후 소녀시대는 젊은 층의 넋을 쏙 빼놓았다는 것이다.
어디 배용준과 소녀시대뿐인가. 장동건, 이병헌, 원빈이 있고 박용하는 죽어서도 일본을 울리고 있다. 한류를 뒤집어보자. 만약 한국 젊은이들이 일본 걸그룹 앞에서 열광하며 ‘일본찬가’를 불렀다면 어찌 되었을까. 일본의 꽃미남배우들에게 한국 중년여성들이 거의 광기에 가까운 극성을 부렸다면 특히 한국남성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시선을 도쿄에서 서울로 돌리면 8년째 한국에서 차별대우 받으며 사는 몽골주부 얘기를 접할 수 있다. 그녀는 7살 연상인 택시운전사 남편에게는 별 불만이 없다. 하지만 집을 나서면 곳곳에서 벽을 느낀다. 몽골학교엔 '왕따'가 없는데 한국에는 있다. 혼혈아들의 교육이 걱정된다. 택시를 타도 마음이 편치가 않다. 어쩌다가 친구와 함께 타서 몽골말로 대화하면 기사표정이 달라진다. 반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몽골에선 사람이 사람을 무시한다는 게 뭔지 모르고 컸는데 한국에 와서 무시를 알게 됐다고 한다.
그녀는 말한다. “이런 일은 시장에서 옷 살 때, 공공기관에서 서류 뗄 때, 아이 데리고 나들이 갈 때 수없이 반복된다. 가만히 있으면 한국사람인줄 알고 자연스럽게 대하던 사람들도 내가 입을 열면 '어, 너 뭐야?' 하는 얼굴이 된다. 한국인은 외국인을 차별하는 게 아니라 '못사는 나라 사람'을 차별한다.”
한국인은 일본을 폄훼할 때 흔히 섬나라 근성을 들먹인다. 섬나라에서 갇혀 살다보니 속 좁고 배타적이고 쩨쩨한 품성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욕하면서 닮는다더니 일본인의 섬나라 근성을 한국인들이 닮아가고 있다. 재일동포들이 차별대우 받는다지만 한국에 있는 화교들도 그만한 홀대를 받았다. 한국화교들은 대를 이어 100년을 살아도 영주권을 받지 못하자 상당수가 외국으로 떠났다. 굳이 일본인들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한국인이 개방적, 타협적, 국제적 성향을 지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경제는 세계 10위권이라지만 어떤 때는 일본인보다 더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다. 한국에서 일하는 스리랑카 노동자나 베트남 신부들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
작년 10월 한국을 방문했던 하토야마 일본총리 부인 미유키 여사는 파격적인 한류행보로 숱한 화제를 낳았다. 한국드라마와 한식을 좋아하는 열성 한류팬임을 스스로 밝히며 맨손으로 김치를 담그고 공식석상에서 한국말로 “밥도 주세요”라고 익살을 떨기도 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재임시절 “쉬리에 반했다” “욘사마를 보고 싶다. 닮고 싶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가 일본에 가서 그곳 영화스타와 일식을 찬탄하는 말을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한국인은 “소니를 닮자, 도요타를 배우자”고 외친 적은 있어도 일본문화를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감탄사를 쏟아내는 경우는 드물다. 자칫하면 지탄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는 강물처럼 흐르고 서로 나누는 것이다. 신한류 열풍, 반갑고 자긍심을 갖게 한다. 한류가 대단하지만 그 한류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나라들도 대단하다.
한국인도 이제 마음의 문을 열었으면 한다. 한국 땅에도 ‘일본류’ ‘‘중국류’ ‘유럽류’가 자유롭게 흘러야 하며 그런 가운데 만인이 공감할 수 있는 차세대 한류가 탄생할 것이다. 지금은 문화로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아닌가. 문화강국이 되려면 섬나라 근성부터 털어내야 한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일본을 이기는 길이다. 모레면 꼭 망국 100년이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