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스 레스토랑은 영업점마다 독립적인 매니저 시스템을 구축했다. 종업원은 총 450명. 문제없이 잘 굴러간다. 실제 인터뷰를 하러 처음 찾아 갔을 때 종업원들의 밝은 웃음을 보며 직감했다. 되는 곳이구나. 어느 기업이든 직원들 얼굴에 그 회사의 현재와 미래가 씌어있다.
김 사장도 이걸 훤히 꿰고 있었다. 그는 또 실패원인도 말해줬다. 간단했다.
“주위 분들이 레스토랑이나 다른 사업을 시작할 때 제가 도움을 많이 줬어요. 시작은 다 비슷한데 이상하게도 결과는 달랐어요. 분석해보니 원인은 딱 하나였어요.”
‘게으름’이었다. 이건 약도 없다 한다.
김 사장이 전하는 비즈니스 토막조언. 들어갈 때와 나갈 때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 이건 풍부한 실전경험과 이론공부만으로는 힘들 때가 많다. 흐름을 짚어내는 감각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한다.
일을 운동 삼아
2001년 프랜스를 인수하자마자 토론토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영토 확장에 나섰다. 다음해 빅토리아, 영 또 멀리 북쪽 배리에 지점을 냈다. 김 사장이 꿈꾸는 무대는 토론토만이 아니다. 전 캐나다와 미국, 그리고 세계.
우선 미국에 발판을 마련하는 게 절실하다고 느꼈다. 때마침 가까운 비즈니스 친구가 미국 캔자스시티에 진출해 있었다. 이왕이면 아는 곳에 먼저 가보자는 심산으로 그곳 몰에 레스토랑을 냈다. 70년 캐나다 개구리가 드디어 우물 밖으로 나가는 순간이었다. 지난해 일이다.
지금은 레스토랑 경영에 집중하고 있지만 비즈니스 기회가 눈에 띄기만 하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타고난 성격이라 자신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김 사장이 전하는 에피소드.
몇 년 전 부인 박미숙(54)씨와 어렵게 시간을 내 플로리다 여행을 갔다. 호텔에 도착하니 부동산 홍보팸플릿들이 호텔로비에 널려 있었다. 하나하나 읽어보니 재미있었다. 종류별로 모아서 호텔방으로 끌고 들어왔다.
짐을 풀자마자 부동산 에이전트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다음날 에이전트들이 호텔방문 앞에 줄을 섰다.
“정말 여행 와서까지 이러기예요?”
머리끝까지 화가 난 부인은 짐 보따리 싸서 방을 나섰다. 에이전트들을 곧바로 돌려보낼 수도 없어 대충대충 얘기를 끝낸 다음 황급하게 공항으로 쫓아갔다. 싹싹 빈 다음에야 부인을 호텔로 모셔올 수 있었다. 물론 그 여행에서 다시는 부동산팸플릿에 한눈팔지 않았다.
김 사장은 돈을 버는 건 그 다음 문제고 일 자체에서 쾌감을 얻는다. 한 비즈니스를 기획하고, 저질러 버리고, 완성한 다음 찾아오는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게다가 돈까지 벌리면 그 기쁨은 배가(倍加). 이를 김 사장은 ‘중독’이라 불렀다.
새 사업을 시작하다보면 때론 힘도 들고, 화도 나고, 덜컥 포기하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산고(産苦) 후에 작품을 보는 순간 직전의 고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만다. 이 맛에 달리는 자전거에서 좀처럼 내려올 수 없다고 한다.
세상에서 이보다 재미있는 것을 아직 발견하지 못해서 다른 취미는 없다. 골프는 30년 전에 누군가 채를 선물로 줘서 예의상 한 번 가본 게 전부. 술도 즐기지 않는다.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그렇다고 건강을 위해서 특별히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김 사장 얼굴은 해맑았다. 55년생이니 올해 딱 55세. 과장을 보태지 않아도 그는 40대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비결을 물었다.
"일을 운동삼아 하니까 젊어지나 봅니다.“
수많은 기업인들을 인터뷰하며 일을 취미삼아 하는 사람은 흔하게 만났지만 운동삼아 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꿈에도 못 잊을 이름
가게를 오가는 길 참 궁금했다.. 그 식당 앞엔 늘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아침이라 그러겠지? 웬걸. 저녁때도 역시 줄은 길었다. 자신이 운영하던 편의점도 잘 됐지만 저건 그냥 눈뜨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식당엘 찾아 갔다. 백인 부부가 운영하는 흔하디 흔한 동네 식당이었다. 다짜고짜 말을 붙였다.
“나에게 팔아라.”
주인은 별 희한한 녀석 다 보겠다는 표정이었다. 매일 들러서 졸랐다. 청년이 하도 진지하게 달라붙으니 주인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다. 팔 마음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슬슬 협상을 시작했다.
긍정적인 신호가 왔다. 부랴부랴 가게도 팔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댔다. 20만 달러는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로선 큰돈이다. 그래도 모자랐다. 넉살 좋게 주인에게 요구했다. 조금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나머지 돈은 당신이 모기지로 빌려주면 좋겠다.”
주인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3~4개월을 끌어 결국 식당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몬티스(Montys)’
꿈에도 못 잊을 이름이다. 김 사장에게 꿈을 품게 했고, 실현하게 해줬고, 더 큰 꿈을 꾸게 한 레스토랑. 1981년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스물여섯 살 청년 때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