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다.

놀면서도 가만히 있질 못했다. 밴쿠버로 날아가서 집이나 빌딩, 가게를 샀다 팔았다 반복했다. 하도 자주 샀다 팔았다 해서 돈을 벌지는 못했다. 그러나 손해를 보지는 않았다. 그건 때를 정확하게 꿰는 김 사장의 능력이다.

김 사장 이력서엔 '대학인수 운영'이란 이색경력도 덧붙일 수 있다. 94년이었다. 휴식하면서 밴쿠버 인근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찾던 중 어느 전문대학이 눈에 들어왔다. 밴쿠버에서 1시간30분쯤 떨어진 쿠니라는 곳에 있었다. 학생 수는 500명 정도. 일본인 유학생들이 특히 많았다. 혼자 벅찰 것 같아 몇 사람이 함께 공동투자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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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대 중반 어느 크리스마스이브파티에서 김학준(왼쪽) 사장이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채 직원들과 어울리고 있다.
6개월쯤 해보니 이건 아니었다. 정직한 교육사업으로 큰돈을 번다는 게 좀 그랬다. 지분을 넘기겠다 하니 여러 사람이 경쟁적으로 달려들었다. 본전만 건지고 훌훌 털었다.

왜 토론토에 왔을까?

90년대 중반 밴쿠버엔 홍콩 바람이 불었다. 중국 반환을 앞두고 홍콩 갑부들이 돈 싸들고 밴쿠버로 몰려왔다. 자고나면 부동산 값이 뛰었다. 광풍이었다. 밴쿠버는 돈 놓고 돈 먹는 거대한 투기장이 되었다. 난다 긴다 하는 돈선수들이 속속 집결했다.

거품이 훤하게 보였다. 아~ 여기 있다간 망하겠구나. 돈뿐 아니라 사람까지 망가질 것 같은 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미련 없이 밴쿠버를 버렸다.

토론토로 왔다. 토론토는 밴쿠버에 비해 우중충한데다 경제도 활력을 잃은 상태였다. 그러나 시든 꽃에서 향기가 풍겼다. 경제가 엉망인 곳에서 거꾸로 기회가 보였다.

"내가 있을 곳은 바로 여기다."

토론토에서 꿈은?

역시 레스토랑을 앞세워 세계무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방법은 프랜차이즈가 가장 현실적이다. 미국 캔자스지점에 이어 내년 안에 미국 2호점을 열 계획이다. 이미 밴쿠버 등지에서 사업파트너들이 오히려 더 성화다. 스스로 계약서 만들어 들이대며 독촉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다.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확장에 미온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이제 때가 익었다는 판단이다. 매출 규모는 연 2천만 달러 이상. 물론 인건비가 30% 이상을 차지한다. 그만큼 사람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김 사장에겐 아들이 3명 있다. 큰아들 리처드(29)와 막내 로저(26)는 아버지를 도와 경영수업중이다. 이들이 더 젊은 감각으로 좋은 기업을 만들어 가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둘째 로버트(27)는 예비변호사로 로스쿨에서 공부 중.

어디까지 갈까?

"어디까지 해보실 작정입니까?"

"끝이 있나요. 일이 재미있으니까 가는 데까지 가보는 것이지요."

김 사장은 스스로 돈 욕심이 없다고 말한다. 돈이 목표나 목적이 아니라고 몇 번씩이나 강조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일이 인생인데 죽음 이외에 은퇴란 있을 수 없겠지요."

남는 시간에 무얼 하느냐고 묻자 "없다"고 짧게 대답했다. 그게 가능하냐, 그래도 좀 쉬지 않느냐 물었더니 그때서야 무스코카에 카티지를 하나 샀다며 부인과 가끔 가서 쉬고 온다고 한다.
(조영권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