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의 태양이 지고 있다. 지난 한 해를 차분히 되돌아보고 다가오는 새해의 꿈과 희망을 그려보는 때다. 이런 계절에 거리로 뛰쳐나와 본격적인 생존권 투쟁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온주실협 회원들이다. 그들에게 연말은 희망을 얘기하는 계절이 아니라 다가오는 먹구름 걱정에 밤잠을 설치는 고뇌의 시간이다. 앞으로 얼마를 더 버틸 수 있을까. 벼랑 끝에서 한숨짓는 한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들의 식구를 포함하면 4천 명이 훌쩍 넘는다. 임피리얼 담배문제가 범커뮤니티적인 문제인 이유다.
지난 21일 토론토의 방송·신문사 등에서 전개된 실협회원들의 임피리얼 차별항의 시위를 보면서 지난 10월의 칠레광부 기적을 다시 떠올린다. 산호세광산 붕괴사고로 지하에 매몰된 33명의 광원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를 되돌아보는 것은 오늘의 실협에 교훈이 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 8월5일 광산 갱도가 무너져 광원들이 700m 아래 갇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사상 최악의 탄광사고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7일 만에 절망은 희망을 캐내는 드라마로 바뀌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은 경험 많은 조장의 리더십과 광원들의 연대의식, 양보와 희생, 남미 특유의 낙천성 덕분이었다.
갱도에 갇혔던 광원들은 사고 17일 후 지상과 연락이 닿기 전까진 살아 돌아가리란 보장이 없었다. 이런 기간 광원들을 지탱해준 것은 현장 작업조장 루이스 우르수아와 연장자 고메스의 지휘 아래 결속된 강한 조직력이었다. 광원들은 이들의 지시에 철저히 따랐다. 터널 붕괴 후 매몰된 것을 직감한 우르수아는 광원들을 모아 상황을 설명하고 생존을 위해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먼저 식량배급량을 책정해 48시간마다 참치 두 스푼, 우유 반 컵을 배급했다. 간호사 출신 광원에게 건강 체크, 엘비스 프레슬리 흉내를 잘 내는 광원에겐 오락을 맡기는 등 역할을 분담했다. 그리고 항상 희망과 유머를 잃지 말자고 독려했다. 2010년 지상 최고의 인간드라마는 이렇게 탄생했다.
실협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대조차 걸지 않으며 아예 관심 밖인 회원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칠레광원들의 위기극복법을 10분의 1이라도 흉내 낸다면 실협의 임피리얼 캠페인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지금 실협회원들 사이에는 이대로 가다간 2년 내에 회원업소의 절반가량이 문을 닫을 것이란 위기의식이 팽배해있다. 37년 실협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희망을 잃지 않는 일이다. 희망을 잃지 않고 버티면 언젠가 기적은 일어나는 법이다. 그러자면 먼저 회원들이 함께 의지하고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분위기 조성이 시급하다.
지난 21일 시위에는 800여 회원들이 참가한 것으로 실협은 추산하지만 회원업소가 밀집해있는 광역토론토지역의 참가율은 매우 저조했다. 지난 1년에 걸친 내분 후유증 탓이겠지만 집안일로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외부문제는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점에서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시위에는 임피리얼 우대프로그램에서 제외된 회원들은 물론 서명한 회원들도 참가해야 한다고 본다. 개인사정상 부득이 서명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들도 결국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임피리얼의 박리다매 정책을 따르다보면 영업수익이 계속 떨어질뿐더러 종국에는 그들에게 예속될 수도 있다. 실협 집행부는 앞으로 이들도 시위에 참가하게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협 집행부의 리더십이다. 우선 임피리얼 캠페인의 청사진을 마련, 회원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앞으로 시위를 어떻게 벌일 것인지, 정치인과 현지언론에는 어떻게 홍보할 것인지, 다른 소매단체들과는 어떻게 제휴할 것인지 등을 소상하게 밝힌 후 회원들을 설득하고 커뮤니티에 협조를 구해야 한다.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나갈 게 아니라 이럴 때일수록 자세를 낮춰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회원들 사이에는 캠페인을 벌여봤자 이미 엎질러진 물이란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실협이 대동단결해도 힘든 판인데 사분오열된 상태에서 무엇을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자포자기적이며 절망감에 빠진 회원들을 캠페인에 끌어들이려면 결국 실협회장단이 ‘대화합 선언’을 하는 길뿐이라고 본다. 새해에는 조합 측이나 야권인사들과 적극 대화에 나서야 하며, 반대인사들도 담배캠페인에는 공동보조를 취하기 바란다. 그것이 실협·조합 모두가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