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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아직도 유럽연합통화인 유로(Euro)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배경에는 소로스가 있다. 당시 영국 보수당은 독일의 눈부신 경제발전과 저인플레이션 통제정책에 감명 받아 독일 마르크화를 기준으로 환율정책을 펴는 소위 유럽환율정책기구(ERM)에 가입 중이었다. 이는 유럽국가들이 자국 통화를 마르크화에 연동해 상하 6% 이내에서 환율을 고정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독일통일 이후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독일은 통화팽창정책을 사용했고 이에 높은 인플레이션이 수반됐다. 따라서 이자율은 폭등하고 마르크화는 평가절상되었다. 상대적으로 영국 파운드화는 평가절하됐고 이에 몇몇 유럽국가들은 환율정책기구의 약속을 저버리고 6% 이상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영국 보수당은 자존심과 신의를 위해 평가절하하지 않고 6% 이내에서 버티었다. 소로스는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막대한 영국의 파운드화를 빌려 투매하는 환투기를 하였고 영란은행은 이에 맞서 환율유지를 위해 싸웠으나 완패해 소로스는 불과 이틀 만에 무려 미화 10억불의 이익을 챙겼다. 이 사건은 1992년의 소위 ‘검은 수요일’로 알려져 있다. 소로스는 영란은행을 몰락시킨 사나이로 유명하다. 결국 영국은 기존의 환율정책을 수정하고 유럽환율정책기구에서 탈퇴, 오늘날까지 이 여파로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처럼 소로스는 환투기를 전문적으로 하는 헤지펀드를 성공적으로 경영했고 그 결과 2011년 기준으로 개인재산 30조원을 보유한 거부가 되었다. 많은 성공한 투자자와 달리 소로스의 성장배경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가 1970년이 되어서야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갑작스런 성공 배경에 대해 음모론까지 있다. 소로스는 이러한 악명과 함께 1979~2011년 인권, 공중위생, 교육분야에 무려 9조원을 기부한 박애주의자로도 알려져 악과 선이 공존하는 양면성 및 베일에 가려진 배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신비롭게 여기는 인물이 되었다.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원수’로 여겨지던 소로스와 알 와리드왕자를 청와대로 초청한다. 당시 배석자의 말로는 소로스가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화 노력에 감명을 받았고, 한국이 IMF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적극 투자하며 돕겠다는 약속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로부터 1년 후 소로스는 한국에서 소로스펀드 한국법인을 설립한다. 그는 주택은행 등 자신이 좋아하는 금융기관들을 훑어 보다 당시 경영난을 겪고 있던 서울증권을 선점, 전환사채 인수로 대주주가 된다. 소로스의 한국에 대한 투자는 외환위기로 외자유치에 목말라있던 한국기업들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2005년 소로스는 많은 이익을 남기고 서울증권을 매각한다. 항간에는 당시 소로스와 한국정권 사이에 뒷돈이 오가고 이를 대가로 알짜배기 한국기업들을 외국투자회사들에 넘겨주었다는 음모론도 있으나 아직까지 밝혀진 사실은 없다. 소로스는 독일나치와 공산정권으로부터 시련을 겪음으로써 자유주의경제 및 민주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엄청난 기부를 하는 동시에 남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피도 눈물도 없는 유대인 투자가라는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미스터리한 사람이다.
발행일 : 201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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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