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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_newpaper.gif1997123일 김영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다. 이 사건은 한국인으로서는 잊을 수 없는 대굴욕이었고 범국민적인 고통을 안겨주었다. 태국, 말레이시아 다음으로 한국을 강타한 외환위기 뒤에는 국제적인 환투기 헤지펀드가 있었고 그중에는 조지 소로스(George Soros)가 이끄는 헤지펀드인 소로스펀드가 있었다. 당시 말레이시아의 마히티르 총리는 소로스를 공개적으로 맹비난하기도 했다. 이번 칼럼은 원래 기업사냥꾼 얘기를 하려고 했으나 사실 소로스는 기업인수보다는 환투기, 금융기관 인수합병, 무위험 차익거래 등을 전문으로 한다. 하지만 소로스는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고 한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사람으로 그에 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bank_of_england.gif소로스는 1992년 영국의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을 초토화시키고 93년 세계 금값 폭등, 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야기한 사람으로 악명 높지만 한편 9조원 이상을 기부하며 세계민주화운동에 적극 기여해 나름 대단한 철학을 지닌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소로스가 이런 인물이 되기까지는 그의 성장배경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는 1931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13살 되던 해 2차 세계대전 중 전쟁포로로 러시아에서 수감됐지만 탈출에 성공, 부다페스트로 돌아온다. 그의 부친은 꽤 지성적으로 알려졌고 소로스에게 철학과 문학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혈통과 유대교의 뿌리를 잊지 않도록 교육하였다.

soros_fund_management.gif소로스는 2차 대전 나치 점령 하에서 고초를 겪었고 1947년 영국에 있는 친척을 찾아 이민한다. 친척 도움으로 대학교(London School of Economics)에 입학, 1952년 철학 전공으로 학사학위를 마쳤다. 이후 미국으로 다시 이민해 투자사업을 시작한다. 몇몇 미국투자회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하다 1970년대가 되어서야 퀀텀펀드(Quantum Fund)’라는 개인투자회사를 설립했고 이후 소로스펀드를 만들어 본격적인 헤지펀드를 시작한다. 이로써 그의 투자본능이 나타나고 엄청난 성공을 이룬다.

영국이 아직도 유럽연합통화인 유로(Euro)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배경에는 소로스가 있다. 당시 영국 보수당은 독일의 눈부신 경제발전과 저인플레이션 통제정책에 감명 받아 독일 마르크화를 기준으로 환율정책을 펴는 소위 유럽환율정책기구(ERM)에 가입 중이었다. 이는 유럽국가들이 자국 통화를 마르크화에 연동해 상하 6% 이내에서 환율을 고정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독일통일 이후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독일은 통화팽창정책을 사용했고 이에 높은 인플레이션이 수반됐다. 따라서 이자율은 폭등하고 마르크화는 평가절상되었다. 상대적으로 영국 파운드화는 평가절하됐고 이에 몇몇 유럽국가들은 환율정책기구의 약속을 저버리고 6% 이상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영국 보수당은 자존심과 신의를 위해 평가절하하지 않고 6% 이내에서 버티었다.

소로스는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막대한 영국의 파운드화를 빌려 투매하는 환투기를 하였고 영란은행은 이에 맞서 환율유지를 위해 싸웠으나 완패해 소로스는 불과 이틀 만에 무려 미화 10억불의 이익을 챙겼다. 이 사건은 1992년의 소위 검은 수요일로 알려져 있다. 소로스는 영란은행을 몰락시킨 사나이로 유명하다. 결국 영국은 기존의 환율정책을 수정하고 유럽환율정책기구에서 탈퇴, 오늘날까지 이 여파로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처럼 소로스는 환투기를 전문적으로 하는 헤지펀드를 성공적으로 경영했고 그 결과 2011년 기준으로 개인재산 30조원을 보유한 거부가 되었다. 많은 성공한 투자자와 달리 소로스의 성장배경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가 1970년이 되어서야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갑작스런 성공 배경에 대해 음모론까지 있다.

소로스는 이러한 악명과 함께 1979~2011년 인권, 공중위생, 교육분야에 무려 9조원을 기부한 박애주의자로도 알려져 악과 선이 공존하는 양면성 및 베일에 가려진 배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신비롭게 여기는 인물이 되었다.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원수로 여겨지던 소로스와 알 와리드왕자를 청와대로 초청한다. 당시 배석자의 말로는 소로스가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화 노력에 감명을 받았고, 한국이 IMF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적극 투자하며 돕겠다는 약속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로부터 1년 후 소로스는 한국에서 소로스펀드 한국법인을 설립한다. 그는 주택은행 등 자신이 좋아하는 금융기관들을 훑어 보다 당시 경영난을 겪고 있던 서울증권을 선점, 전환사채 인수로 대주주가 된다.

소로스의 한국에 대한 투자는 외환위기로 외자유치에 목말라있던 한국기업들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2005년 소로스는 많은 이익을 남기고 서울증권을 매각한다. 항간에는 당시 소로스와 한국정권 사이에 뒷돈이 오가고 이를 대가로 알짜배기 한국기업들을 외국투자회사들에 넘겨주었다는 음모론도 있으나 아직까지 밝혀진 사실은 없다.

소로스는 독일나치와 공산정권으로부터 시련을 겪음으로써 자유주의경제 및 민주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엄청난 기부를 하는 동시에 남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피도 눈물도 없는 유대인 투자가라는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미스터리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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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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