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의 교훈
1.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감독기관 제대로 일하지 않으면 무용지물 2. 통신· 전산기술 급변...금융감독체제가 새 환경에 부단히 적응해야 3. 금융시장 세계화로 강력하고 국제적인 금융규제 감독시스템 필요
이번 위기로 사회주의적 자본주의 도래하고 시장경제 몰락한다는 전망은 설득력 없어
금융기관 국유화는 위기탈출의 한 전략
지금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경제불황은 작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시장의 마비가 주요 원인 이다. 미국금융시장 마비는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확산되었다. 금융시장 마비는 비우량 주택 담보대출의 대대적인 부실에서 비롯되었다. 시장경제체제하에서 금융시장의 일시적인 마비와 이에 따른 일시적인 신용경색은 주기적으로 오는 것으로 그 자체가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는 심도와 규모면에서 2차대전 후의 어느 것과도 비교가 안 된다. 그렇다면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이번 금융위기의 주범은 갚을 능력도 없이 무조건 비우량대출을 받은 주택구입자들도 아니고, 비우량대출을 마구 남발한 은행들도 아니다. 이런 금융행위의 위험성을 미리 알아채지 못했거나, 알고도 눈감아준 금융규제 감독기관들이다. 착각일지는 모르나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추구하려는 기업으로서의 은행이나 소비자로서의 주택구입자는 그들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을 했을 따름이다.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유지할 법적 의무가 있는 금융규제 감독기관에게 마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은행업의 본질
건전한 금융제도는 시장경제체제의 원활한 작동에 필수적인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해 자금의 효율적인 분배를 가능케 한다. 그러나 금융제도 안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은행업은 성격상 다른 분야에 비해 더 많은 위험이 따르며, 한 은행이 망하면 그 영향이 금융권 전체에 즉각 파급되기 때문에 일찍이 정부는 은행들을 철저히 규제·감독 해왔다. 은행은 비교적 적은 액수의 자기자본을 투자해 많은 예금주로부터 소액의 돈을 빌려 모아 큰돈을 만들어 자금이 필요한 기업체나 개인에게 빌려줌으로써 이익을 창출하는 금융기관이다. 예금은 은행의 부채이고 대출은 은행의 자산이다. 따라서 은행의 부채는 유동성이 높은(현금화하기 쉬운) 반면 은행의 자산은 유동성이 낮다(현금화에 시간이 걸린다). 또한 유동성이 높은 부채에 대한 이자율은 낮고, 유동성이 낮은 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율은 상대적으로 높다. 은행은 소액의 자기자본을 바탕으로 유동성이 높지만 이자율이 낮은 부채를 유동성이 낮지만 수익성이 높은 자산으로 변형시켜 이익을 창출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위험이 발생한다. 이것이 은행업의 본질적인 위험이다. 은행은 총부채에 대한 자기자본의 비율을 최소화하거나, 또는 유동성이 낮고 위험도가 높지만 수익성이 좋은 자산을 최대한 늘릴 수 있다면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다. 따라서 이윤 극대화의 추구는 일반적으로 위험도의 극대화를 의미한다.
금융피라미드 형성
만일 무슨 이유로 해서 한 은행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 예금주들이 모두 현금을 찾으려 몰려든다면 이 은행은 아무리 건전한 자산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 해도 이를 당장 현금화할수 없기 때문에 문 닫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은행들이 현금만 쌓아놓고 있을 수도 없고 유동성이 높은 자산만 끌어안고 있을 수도 없다. 유동성이 높은 자산은 수익성이 낮기 때문 이다. 따라서 은행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수익성이 높은 자산에 투자하며 자기자본비율을 가능한 한 최소화하려 한다. 근래에는 자산의 유동성을 높이기 위해 은행들은 부동산담보대출이나 자동차담보대출 같은 유동성이 낮은 자산을 유동성이 높은 자산담보증권(Asset Backed Securities)으로 탈바꿈시켜 자본시장에 내놓아 투자상품화하고 있다. 자산담보증권은 유동성이 높아졌으나 위험도가 내려갔다고는 볼 수 없다. 증권을 담보하고 있는 자산이 부실화되면 증권 자체도 같이 휴지조각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신용부도스와프(Credit Default Swap: CDS)’라는 일종의 보험상품을 대형 금융기관들이 대거 발행했다. 지극히 위태로운 금융피라미드가 형성된 것이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이 부실화하자 자산담보증권이 휴지조각 됐고 이를 변상해 줄 의무를 떠안은 CDS를 남발한 금융기관들의 자산가치가 폭락하게 되었다.
물론 경기가 좋아 대출된 돈이 제대로 회수되고 자산담보증권 같은 투자상품의 거래가 정상적으로 활발히 이뤄진다면 금융기관들은 큰 이익을 낼 수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경기가 나빠져 은행자산이 부실화하기 시작하면 금융권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 너도나도 현금을 회수하려 들어 금융기관들이 줄도산하는데 있다. 1930년대의 대공황 때에는 수천개의 미국은행들이 도산했고 이번 금융위기 중에도 벌써 수십 개의 미국은행들이 문을 닫았다. 물론 지금은 1930년대와는 달리 예금보험제도가 있고, 도산하는 은행들은 다른 건실한 은행들에 의해 인수합병되기 때문에 예금자들은 한 푼의 돈도 잃지 않는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초래하는 신용경색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때론 막대할 수가 있다. 한 가지 금융권에서나 볼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은 금융규제와 감독이 거의 완벽한 캐나다 같은 나라도 미국의 금융규제와 감독의 부실로 인한 세계적인 불황의 여파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새 금융체제 도입론
각국 정부는 이러한 금융권의 본질적인 불안전성에 대비해, 그리고 금융위기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인식해 철저한 금융규제와 감독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시작된 금융자유화 추세로 지금은 거대한 금융지주회사들이 은행업뿐만 아니라 모든 금융업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새로운 복합금융상품의 출현으로 인해 종전의 금융 분야별(은행, 신탁, 증권, 보험) 기관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위주로 한 미국의 기존 체제로는 효율적인 규제와 감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신용부도스와프 같은 새로운 복합금융상품은 분야별 규제감독체제로는 효율적인 규제감독이 용이하지 않은 좋은 예이다. 따라서 모든 금융분야를 총괄적으로 규제 감독할 수 있는 강력한 금융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지금 오바마정부가 추진 중인 금융 규제감독체제의 개혁은 이러한 기존의 약점을 보완하고 지금까지 규제감독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헤지펀드 같은 새로운 금융기법도 포함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증권거래에서의 공매도(空賣渡, short selling: 없는 증권을 빌려서 팔았다가 값이 내려간 뒤 다시 사서 되돌려 주는 기법)에 대한 규제도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구체적인 형상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이런 총체적인 규제와 감독의 권한을 거머쥐게 될 강력한 기관의 권력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과연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것이다. 효율적인 업무수행을 위해서는 규제감독기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긍정적 측면
이번 금융위기가 가져다주는 밝은 면도 없지 않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말했듯이 우리는 좋은(?) 위기가 가져다주는 기회를 절대 낭비해서는 안 된다 (We should never let a good crisis go to waste). 이번 금융위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세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첫째 아무리 좋은 금융규제 감독제도가 있다 해도 담당기관들이 제대로 일하지 않으면 쓸모없다는 것이다. 둘째,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금융규제감독체제가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 틀림없는 새로운 금융시장의 형태에도 가장 적합한 것으로 남아 있기를 바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급변하는 통신 및 전산처리 기술은 금융서비스와 금융상품의 고도화를 가져와 금융규제감독체제가 끊임없이 이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셋째, 고도로 발달된 통신 및 전산처리 기술은 금융시장의 세계화를 가져와 국가별은 물론 국제적인 금융규제감독체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국제결제은행(The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을 통한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 형식의 규제보다는 더욱 강력하고 효율적인 국제금융감독체제가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교훈을 잘 받아들여 국가 및 국제적인 금융감독체제를 확립할 수 있다면 이번의 위기를 좋은 기회로 활용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몇 주 전 영국 런던에서 있었던 G20 정상회의는 이를 향한 첫걸음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금융위기가 앵글로색슨 스타일의 시장경제체제의 멸망을 가져오고 정부의 입김이 더 세지는 사회주의적 자본주의를 불러올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한다. 그 예로 영국, 미국, 서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 금융기관들의 국유화를 지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너무 성급하다고 본다. 금융기관 국유화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1980년대 미국과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한국에서도 있었다. 즉 금융위기 때마다 시장경제국가들이 애용해온 방법일 뿐이다. 일시적으로 국유화된 금융기관들은 경제가 정상궤도에 들어서면 다시 민영화될 것이다. 오히려 더 튼튼해진 금융규제 감독체제가 기존의 시장경제체제를 더 튼튼한 기반위에 올려놓을 가능성이 많다. 태풍이 지나간 뒤 바닷물이 다시 잠잠해지고 비가 온 뒤 땅이 더 굳어지듯이.
유 종 수, Ph.D.
경제고문, 재정 상담가 (DY & Partners)
한인상공회의소 경제고문 (416) 886-5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