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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부호 중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클루게는 현재 95살 고령에도 불구, 사업 확장에 전념하고 있다. 1921년 부친을 잃고 다음해 모친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 디트로이트에서 잡일을 했고 후에 포드자동차 조립공으로 일하며 학업을 계속했다. 웨인주립대학 재학 중 장학금을 받고 뉴욕의 컬럼비아대학으로 옮겼다. 세계공황 당시 대학 기숙사에서 포커게임으로 돈을 따거나 조그만 사업으로 용돈을 벌었다. 그의 포커실력은 후일 사업체 인수협상에서 드러나 융자규모와 조건을 놓고 은행가들의 가슴을 조아리게 했다.

대학졸업 후 외판원으로 근무시 타고난 판매수완을 발휘해 오튼사(Otten Brothers) 지배인이 되었다. 2차대전 중에는 미 육군정보대위로 근무, 1946년(32살) 제대했고 퇴직금 1만5천 달러로 매릴랜드주 실버스프링시의 WGAY 라디오방송을 사들였다. 방송사업이 번창하자 플로리다방송(1952), 세인트루이스방송(1953), 피츠버그방송(1954)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부동산투자회사(1954)와 클루게투자사(1956)를 설립했고 식품회사(1956)도 동업으로 매입하는 등 사업을 크게 확장했다. 1957년(43살)에는 웨스트뉴욕방송, 1959년 WWB방송, 1961년 메트로폴리탄방송(Metropolitan Broadcasting Co.)를 매입한 후 메트로미디어사(Metromedia Inc.)에 합병시켰다.

메트로미디어는 그후 미국 전역의 수백 개 라디오방송 및 TV방송과 1968년 MPC (Metromedia Producers Co.)를 인수, 인기 TV연속극을 미국뿐 아니라 세계 우방국 시청자들을 상대로 방영했다. 1968년 이후 TV시청자들은 매일 나오는 MPC 연속극과 주연배우 이름은 일일이 기억하지만 클루게 회장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1974년(60살)부터 8년 간 메트로미디어 주식은 40배 이상 급등했다. 1984년(70살) 은행융자금으로 메트로미디어사 주식 72%(12억 달러 상당)를 사들여 사실상 개인회사로 만들었다. 그런 후 비싼 값에 자산을 매각하기 시작, 1989년 60억~80억 달러의 차익을 챙겼다. 당시 미연방은행의 고이자정책(연 16% 이상)으로 대출금(12억 달러)에 대한 이자가 엄청나 매입자가 없을 경우 클루게를 파산에 몰아넣을 수도 있었다. 그의 사업매각 결정은 20세기 폭스사 등 메트로미디어의 자산에 눈독 들인 여러 방송사 최고경영자들과의 포커게임이었다고 미국 기업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클루게 자신도 매일 식은땀을 흘렸다고 후일 실토했다. 만일 클루게가 폭스사 최고경영자였다면 메트로미디어사의 파산은 시간문제라는 것을 알고 기다렸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1989년 75살의 클루게는 나이의 한계를 느끼지 않고 새로운 사업에 도전, 대형 레스토랑체인(Ponderosa, Bennigan's, Bonanza, Steak & Ale), 장거리전화회사(LDD’s Metromedia), 자동차부품회사(Stanodyne), 오리온영화사(Orion Pictures), 무선전화회사 등을 잇달아 매입했다. 하지만 작년 금융위기로 미국 전역의 베니건스와 스테이크 앤드 에일 식당 300여 곳이 문을 닫아야 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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