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에 강풍이 몰아치면 보통 높이가 15m나 되는 큰 파도가 일어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유 불문하고 선박은 파도치는 쪽으로 항해, 파도를 갈라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난 파도는 배의 측면을 몰아쳐 전복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년에는 어떠한 파도에도 밀리지 않고 제자리에서 원유를 뽑아 올릴 수 있는 배(원유시추선)가 필요하게 되었다. 육지의 석유는 고갈되어가지만 바다 속에는 상당량의 원유가 매장돼있는바 이를 뽑아 올리려면 영국 북해도에 있는 브랜트 석유시추탑같이 건설해야 하는데 설치비용이 엄청나고 위험성도 높다. 이에 차선책으로 해저유전을 따라 옮길 수 있는 드릴쉽(drill ship)을 구상케 됐다. 하지만 실제로 만들어 띄어보니 배가 제자리에서 이탈하기 일쑤고 때로는 시추파이프를 타고 바닷물이 스며들어 원유 대신 바닷물이 배위로 치솟아 2000년 이후 드릴쉽 조선(造船)은 사실상 중단됐다.
하지만 세계선두 IT기술을 보유한 삼성은 실패한 드릴쉽에 IT기술을 접목하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일념 하에 연구를 거듭, 2005년 2대의 IT드릴쉽을 건조해 당시 정부로부터 ‘세계일류상품’이란 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배를 인수한 선주는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3년 후 진면목이 드러나게 됐다. 즉 3년 동안 수많은 격랑에도 불구, 배는 제자리에서 3m 이상 벗어나질 않았다. 대성공인 것이다.
IT접목이란 스마트 핸드폰같은 탐지기를 드릴쉽 주변에 띄워 파도의 일거일동 변화를 본선에 연락하는데 그 정보는 배 밑에 부착된 6개의 프로펠레에 연결, 배가 자동적으로 파도를 미리 감지해 대처하는 기술이다. 또한 스마트탐지기는 시추파이프에 부착돼 바닷물이 스며들거나 이상이 있을 때는 즉시 작업을 중단시켜 사고를 예방하기도 한다. 이 성능이 입증이 되자 금년에 발주된 30척의 드릴쉽 중 삼성중공업이 22척, 대우조선이 6척, 현대중공업이 2척으로 모두 한국이 차지했다. 지난달에 완성한 시추선은 3만톤 중량에 반잠수식으로 높이가 112m에 이르며 해저 1만2천m까지 시추가 가능하다. 100% 국산기술과 설비로 가격은 10억 달러였다.
한국은 IT뿐만 아니라 철의 강도를 높여 부식에 강한 선박을 만드는 나라로 유명하다. 2년 전부터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1의 조선국이 되었다. 올해도 세계선박수주량이 43%로 일본(28%)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조선산업을 뒤돌아볼 때 정말 격세지감을 느낀다. 일본은 이미 1916년에 2만톤급 전함을 건조했고, 1950년부터 약 50년 간 세계 1위를 고수했던 나라다.
한국은 일본의 질주를 구경만 하다가 1972년 5만톤급 선박을 제조할 수 있는 도크(dock)를 미포에 건설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대형선박 조선경험이 전무한 한국의 도크시설만 보고 주문할 선주는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몇 척 주문을 받았으나 자재 수입을 위한 외화가 없어 외국은행들을 찾아다녀야 했다. 당시 정주영회장이 한국지폐에 그려진 거북선그림을 보여주며 “400년 전에 잠수함을 건조했던 나라”라며 외국은행들을 설득한 것은 유명한 얘기다.
이런 나라가 이제 조선대국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2002년에는 ‘바다 속의 유령’이라는 장보고잠수함을 건조했고 2007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나다는 이지스구축함 세종대왕함을 만들었다. 조선산업은 수천 명이 동시에 일심전력(一心專力)해 만드는 종합예술이다. 한국이 모든 분야에서 조선산업처럼 했었다면 통일도 선진국도 벌써 성취했을 것이다.
드릴쉽(drill ship)
해상플랫폼 설치가 불가능한 심해(深海)지역이나 파도가 심한 해상에서 원유를 발굴하는 선박형태의 시추설비로, 선박의 기동성과 심해 시추능력을 겸비한 고부가가치 선박이다. 보통 척당 가격이 8억 달러로 대형유조선보다 3배 비싸다. 올해 삼성중공업이 만든 극지용 드릴쉽은 바다 위에서 에베레스트산(8848m)보다 더 깊은 해저 12㎞까지 드릴장비로 파내려 갈 수 있고, 높이 16m의 파도와 초속 41m의 강풍 속에서도 제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문종명 (과학수필가 · 토론토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