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7년(26세) 경제 불황으로 사업이 힘들게 됐는데 시카고여행 중 사업기회를 포착했다. 2년 뒤 시카고로 옮겨간 그는 비가 오면 수렁같이 질퍽한 시카고 지역의 건물과 도로를 높이 올리고, 수렁 위에 기둥을 세워 도로를 까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벌여 돈과 함께 사회적 명성도 얻었다. 1860년(29세) 금맥을 찾아 콜로라도로 이주, 광산?목재소?건물임대 사업을 벌여 3년 만에 약 10만 달러의 거금을 모아 시카고로 돌아왔다. 1864년(33세) 자기 대신 군복무를 맡을 젊은이를 고용, 군대에 보내고 1859년부터 필드 (Benjamin C. Field)와 동업했던 침대기차를 제조하는 사업에 전념했다. 1830년대부터 사용된 침대차는 달리는 기차의 충격흡수장치가 없어 잠을 편히 잘 수가 없었다. 당시 뉴욕에서 시카고까지 기차여행은 3일 반이나 걸렸다. 정거장호텔에서 잠을 자지 않는 이상 기차여행은 편한 침대차 없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낀 풀맨은 콜로라도에서 번 돈으로 호화침대차 2대를 만들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배운 목관제조 아이디어를 응용해 기차 안벽 창문 위에 고리를 달아 침대를 매달아 접었다 펼 수 있게 만들었고 위쪽에는 푹신한 매트리스를 깔았다. 낮에 접었을 때에는 현대 여객기의 좌석 위 여행가방 캐비닛 같이 보였다. 또한 좌석을 접어 밤에는 아래쪽 침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창문도 호화스럽게 꾸몄다. 아울러 안전한 난방장치는 물론 카펫까지 깐 호화판 침대차(Pioneer, 1865년)를 제조, 부유층 여행객들부터 큰 인기를 모았다. 새로 나온 침대차는 링컨 대통령의 시신을 옮기는데 사용, 미국 전역에 알려지게 돼 풀맨의 침대차사업은 선풍적 인기를 끌며 급성장하게 됐다. 1867년(36세) ‘풀맨 침대차회사(Pullman Palace Car Co.)’를 설립해 식당차도 개발, 승객들에게 일류식당 메뉴를 제공하고 객차와 객차 사이를 안전하게 연결시켜 달리는 기차에서도 승객들이 걸어서 식당차로 갈 수 있게 만들었다.
< DY&Partners 제공 > • 캐나다 한국일보
발행일 : 201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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