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동양인 역시 인격화된 신을 믿는 습성은 마찬가지였지만 그 과정은 서양과 차이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우선 고대동양인이 그렸던 반인반수(半人半獸) 그림이나 조각들은 고대서양에서 초인간을 염원하며 만들었던 것들과 내용이 다르다. 반인반수 그림은 매해 띠를 상징하는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12가지 동물 중에 3분의 2가 쥐, 닭, 뱀과 같이 하찮은 동물이었다. 이는 고대동양에서 초인적인 동물보다는 산신령이나 칠성신 같은 자연물을 신격화하고 믿어왔기 때문인데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즉 고대동양인은 생명을 포함한 우주만물이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관리된다고 믿었고, 실제로 신비스러운 힘을 체험하기도 했는바 이를 기(氣)라 불렀다.
고대동양에서 말하는 천기(天氣)나 지기(地氣)라는 말은 자연이 기(氣)를 가진 인격화된 신을 의미한다. 이런 바탕에서 기를 학문으로 체계화해 자연법칙을 파악해보려고 시도한 이론이 주역(周易)이다. 하지만 현대과학도 접근하지 못한 기(氣)를 당시에 규명하기는 무리였고 결국 주역은 점이나 사주를 보는 역술이론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기(氣)의 신비성을 저버릴 수 없어 일부 학자들은 연구를 계속해 17세기에 기(氣)를 주제로 하는 성리학(性理學)과 주자학(朱子學)까지 이끌어냈으나 이런 학문들 역시 서구문화에 밀려나고 말았다.
이같이 못 다한 학문이지만 이들이 말하는 기(氣)가 무엇인지 잠깐 음미해보자. 오감(五感)으로 느끼는 정보나 자연의 운동을 주자학에서는 이(理)라 하고, 자연이 갖고 있는 신비의 힘을 기(氣)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기(氣)가 없으면 이(理)도 존재할 수 없다는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과 둘은 별도라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의 학설로 대립되기도 했다. 일례를 들면 주자학에
“이(理)가 발하면 기(氣)가 이(理)를 따르고, 기(氣)가 발하면 이(理)가 기(氣)를 따른다”는 말이 있다. 이는 인체의 피 같은 물질은 이(理)고, 이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기(氣)로 피의 순환에 신비한 기(氣)가 따라다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인데 이 현상을 하나로 보느냐 아니면 분리하느냐 하는 논쟁이었다.
여하튼 근세에 서양문화와 종교가 전래되기 전까지 기(氣)는 하나의 학문이었고 서민적인 종교였다고 말할 수 있다. 서구 역시 고대에 신비스러운 기현상이 있었음이 기록돼있지만 중동에서 들어간 종교에 의해 흡수되거나 종교교리와 일치하지 않으면 ‘악령’으로 간주돼 철저히 배척된바 동양같이 기(氣)라는 학문은 없었다. 이는 종교가 형성되기 오래전부터 인간은 이미 기(氣)를 느끼고 살아왔으며 이에 따라 심리학자들이 주장한 인격화된 신이 생긴 동기 중에 기(氣) 같은 신비성이 있음을 추가해야 될 것 같다. 결국 언젠가는 인간이 인격화된 신의 허구를 깨닫게 되겠지만 그래도 기(氣)의 신비성은 변함없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현대과학은 기(氣)현상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물론 지금까지 과학이 기(氣)를 주제로 직접 연구해본 적은 없다. 정확히 말해 안하는 것이 아니라 차원이 달라 못하고 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이 자연을 더 깊이 연구할수록 기(氣)현상이 더욱 진하게 도출되고 있다. 예를 하나 든다면 태양에너지는 빛이란 파장에 의해 전달되듯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파장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또한 우주공간에 가장 많이 날아다니는 파장이 있는데 이를 우주선(Cosmos Ray)이라 하며, 우주선을 이끌고 달리는 입자가 중성미자(中性微子; Neutrino)다.
중성미자는 아주 작지만 종이 한 장 지날 때 무려 100억 번의 파장을 치며 태양이나 지구를 거침없이 빛의 속도로 통과하는 아주 신비한 파장이다. 21세기 전까지만 해도 중성미자가 지닌 에너지양을 산출하지 못했지만 분석기의 발달로 2005년 중성미자 하나가 지닌 에너지양 산출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2007년 과학으로는 더 이상 연구할 수 없는 신비한 사실이 드러났다. 즉 하버드대학의 양자물리학 박사 하워드 조자이Howard Georgi 팀이 중성미자 에너지를 연구하다가 중성미자에 알 수 없는 잉여에너지가 따라다니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즉 파장 외에 에너지라는, 과학적으론 있을 수 없는 현상이었다. 물론 반복해 실험을 거듭했는데 잉여에너지가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따라서 우선 불입자(不粒子: Unparticle)란 학명을 부쳤지만 더 이상 과학으로 연구할 수 없는 존재라 지금까지도 오리무중이다. 그러니까 불입자 에너지는 하늘과 땅 속에도, 물속에도, 그리고 나 안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에너지의 정체는 무엇일까? 고대동양에서 믿던 기(氣)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현재로는 기(氣)일 가능성이 가장 많다. 이런 신비한 존재가 있는 한 인간은 종교 없이도 경이로움을 느끼고 영(靈)적인 체험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