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전투 참전용사 클라이슬러(87)씨 (2)

부대장 특명 “후퇴는 없다 싸우다 죽을 뿐”



  • 캐나다 한국일보 (public@koreatimes.net) --
  • 07 Sep 2018


캐나다군 주둔지는?

- 뉴질랜드, 호주, 영국, 캐나다 군으로 편성된 영연방 27여단에게 ‘서울을 목표로 남하하는 중공군을 저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내가 소속한 캐나다군 2대대는 가평 남단의 667고지에 진지를 구축했다. 왼편에는 호주 , 오른편에는 뉴질랜드 군이 포진했다. 우리는 중공군에 비해 수적으로 너무나 열세였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유리한 점들이 있었다. 우선 적은 고지를 향해 올라와야 했고 우리는 아래를 향해 방어만 한다는 , 우리에겐 막강한 화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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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이슬러 씨는 사용한 무기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화력을 설명했다. 각종 소총 , 경기관총, 중기관총, 기관포, 화염방사기 등이었다. 지금 여러 나라에 파견되는 캐나다 평화유지군은 간단한 무기를 소지했으나 당시 군은 최강의 무기로 중무장했다.

 

무기들을 사용한 결과는?

- 떼를 지어 오르는 적들을 향해 우리는 쉬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적들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물려왔다. 그들은 죽어 넘어지는 전우들의 시체를 밟으면서 산등성을 기어올랐다. 우리는 그들을 향해 기관총 무기를 닥치는 대로 잡고 쐈다. 펄펄 날뛰던 전우들이 적의 총탄을 맞고 이름 모를 산골에 쓰러지는 광경을 보면서 허무한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센티멘탈한 생각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그만큼 중공군의 공격은 집요했다.

 

쏘고, 쏘아도 물러가지 않는 적들을 보면서 두렵거나 남의 나라에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안들었는지?

- 두려움 같은 느낄 틈조차 없었다. 그래서 탄창을 잽싸게 끼며 죽을 사격을 계속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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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 피해는 어느 정도였는지? 부대원들 중에서도 전사자가 속출했는지?

- 전투 중에는 그런 것에 신경쓰지 못했다. 그러다가 적의 공격이 잠시 중단되면 주위를 돌아보았는데 우리 부대는 다행히 피해를 입은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중 알고 보니 우리 왼쪽에서 싸웠던 호주군의 손실은 상당했다.

 

탄약은 충분했는지?

- 아니다. 탄약이 진작 떨어졌지. 전투기들의 호위를 받은 수송기들이 탄약, 레이션(간이음식), 의약품들을 낙하시켜 주어서 보충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다죽었을 것이다.

전투 중에 혹은 적의 공격이 뜸해지는 시간에 ‘왜 내가 남의 나라에 와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나 후회는 없었는지?

- 우리는 상부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한국을 위해 싸우려고 자원 입대한 사람이다. 따라서 캐나다 군인답게 명령에 복종하면서 최후까지 싸우려는 생각 밖에는 없었다.

 

조국 캐나다를 위한 싸움에는 당연히 목숨을 걸어야겠지만 알지도 못하는 한국을 위해 싸울 결단을 것은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다는 목적 같은 것이 숨어 있었는지?

- 솔직히 말해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은 나에겐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군인의 기본임무인 명령에 복종하여 싸운 뿐이다.

 

가평전투에 임하면서 부대장으로부터 특별한 명령이나 훈시를 받지는 않았나?

- 물론 있었다. 적의 공격이 시작되기 직전 중대장은 부대원들에게 엄숙하게 말했다. “우리에게 후퇴는 없다. 여기서 싸우다 죽을 뿐이다”이라고. (중대장은 수년 고향서 사망)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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