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스파이들(1) - 중

모토지로 아카시 남작(Baron·1860∼1919)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koreatimes.net) --
  • 14 May 2019

러시아에서 종황무진 첩보활동 혁명대원들과 접촉하며 정보수집 대만 점령 후 총독까지 지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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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아더항 전투에서 일본의 기습공격을 받아 박살난 러시아군함들.

러시아 음모

아카시는 일본대사관 무관으로 유럽에 부임하자마자 수집한 정보와 대사관 직원들의 의견을 참고, 본국 전쟁부에 첩보 제1보를 보냈다.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별 관심이 없다’고. “오히려 그들은 러시아를 동쪽에서 공격해주기를 기다릴지 모른다”고. 약육강식의 제국주의가 팽배하던 시기였다. 조선은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범을 잡으려면 그 소굴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곧 상트페테르부르크(제정 러시아 수도)를 방문했다. 도착 즉시 평소 접촉했던 2명의 공산 혁명대원들을 비밀리에 접선했다. 러시아 정교회(Orthodox Church)의 게오르기 가폰(Georgi Gapon)과 모스크바 최고의 무자비한 혁명지도자 예브노 아제프(Yevno Azev)였다. 세 사람은 일본이 공산혁명을 어떻게 도울까를 의논했다.

한편으로 그는 압둘 라시드 이브라햄(Abdur Rashid Ibraham)과 우정을 쌓았다. 그는 무슬림 지도자로서 러시아 정부의 무슬림 관계 자문관이었다. 교도들을 통해 그는 러시아군의 배치와 아시아의 해군력에 대해서 아는 게 많았다.

아카시는 점차 유럽의 일본 스파이망을 넓혔고 매주 외교행랑으로 본국에 정보를 전달했다.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외교행랑은 자국인 외의 어느 누구도 열어보고 조사할 권리가 없어서 비밀이 잘 유지됐다.

1904년 일본 해군이 선전포고 없이 아더항(Port Arthur)에 정박한 러시아 군함들을 기습 공격했을 때 해군사령관은 언제 어떻게 러시아의 동방 주둔군을 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더항은 지금의 랴오둥(요동)반도 남쪽 끝에 붙은 다롄(대련)을 말한다. 선전포고를 무시한 이같은 비신사적 공격은 40년 후 하와이 진주만 공격에서 재현됐다.

러시아 함대의 대부분이 박살난 것은 총사령관 노기 대장의 공이 컸으나 거기엔 아카시 대령의 정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러일전쟁이 공식화되자 이브라햄은 일본 지원을 받는 무슬림군을 이끌고 러시아 후방을 교란했다. 공산혁명가 아제프는 아카시를 데리고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갔다. 러시아 사회주의총회(Russian Socialist Congress)에서 그가 연설해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아카시는 유럽의 반대편 아시아에서 일본군에 의한 첫 총성이 울려 퍼지던 순간 연단에 섰다. “나는 본국 정부로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 오데사 및 키예프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나면 일본은 무기를 공급할 것을 약속한다고 발표할 권한을 받았다”고 아카시는 말했고 참석자들은 환호했다.

러시아 혁명을 사주하다

조선이 일본에 완전히 병합되지는 않았으나 그 영향권 아래서 크게 숨도 못 쉬던 시기, 조선이라는 이름이 점점 사라지던 시기였다. 아카시는 러일전쟁(1904년 2월∼1905년 9월) 중 러시아 주재 일본대사관 무관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전임했다. (주: 적국 대사관이 자국에서 활동). 그는 가폰 신부와  아제프에게 자금을 전하면서 러시아 황제의 퇴위작전을 꼬드겼다. 그는 적군인 러시아 장군들이나 해군제독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의 군사동향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고위층만큼 알았다. 그러나 그도 실수가 있었다. 그는 아제프가 황제를 보호하기 위한 비밀경찰 조직 오크라나(Okhrana)의 정보 대원임을 몰랐다. 가폰 신부 역시 이 조직의 일원이었다. 이중간첩인 이들은 아카시에게 러시아군의 군사정보를 주면서 대신 여러 나라의 제국주의 정책과, 국내 공산 혁명세력의 정보를 얻어 상부에 세밀히 보고했다. 아카시 편에 충성스럽게 남은 사람은 무슬림 지도자 이브라햄 1명 뿐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그후에도 계속됐다.

제국을 건설하다

1914∼1918년의 세계 1차대전 중 아카시는 일본군 작전사령부(General Staff)의 참모차장(assistant chief)으로 발탁됐다. 그는 몽골을 자치령으로 만드는 계획을 세워 정부의 허가를 기다렸다. 다음, 시베리아 점령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이 계획들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수포화됐다. 다만, 중국 연안의 독일 점령지역을 빼앗는 계획을 수립해서 성공시켰다. 

한편 일본의 약진에 자신을 얻은 흑룡회는 만주, 중국 및 시베리아 점령을 위해 노력을 배가했다.

장군으로 승진하고 대만 점령 후 총독을 지낸 아카시는 1919년 자연사했으나 그의 스파이 행위와 여러 계획들은 살아 남았다. 1931년 일본은 만주로 쳐들어갔고 수년 후 중국 본토로 진군, 1945년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주둔했다. 여러 유럽국가처럼 일본은 아시아의 침략자였다.

일본은 무력으로 나서기 전 자세한 정보를 수집, 이를 바탕으로 사전 정지작업을 했고 그후 군대를 투입, 마지막 숨통을 끊는 작전을 구사했다. 배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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