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시백 한국영화 100년 <11> 문희ㆍ남정임ㆍ윤정희 1세대 트로이카(하)

현모양처 틀 깨고 배역 다변화에 기여



  • 캐나다 한국일보 (public@koreatimes.net) --
  • 24 Jun 2019

청순가련한 이미지의 문희 활달하고 발랄한 청춘 연기의 남정임 지적인 이미지로 차별화한 윤정희


남정임 · 윤정희에

압도된 문희

돌연 기절

촬영 일정 통으로 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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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인엽 감독의 ‘결혼교실’(1970)에 출연한 신성일과 여배우 트로이카 남정임(위 왼쪽부터)과 문희 윤정희. 

여배우 가뭄 속 등장한 샛별 
서라벌 예술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이던 문희는 1965년 KBS 탤런트 선발 공모에 응시했다. 때마침 카메라 테스트반에는 이만희 감독의 조감독이 있었고, 그녀를 눈여겨본 것이 계기가 되어 ‘흑맥’(1965)에 캐스팅된다. 

당시 엄앵란은 “어린 나이에도 눈빛이 꺾이지 않는 모습을 봤다”며 문희를 칭찬했다고 한다. 이문희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에서 문희는 불량배 두목을 사랑하는 고아 출신의 아가씨 역을 맡아 청순한 인상을 한껏 살린 연기로 주목받았다. 이후 6년간 유현목 감독의 ‘막차로 온 손님들’(1967), 신상옥 감독의 ‘이조잔영’(1967), 정진우 감독의 ‘초우’(1966), 김기덕 감독의 ‘섬마을 선생’(1967)과 이규웅 감독의 ‘공주 며느리(1967)’ 등에 잇달아 출연했다. 경력의 정점은 정소영 감독의 ‘미워도 다시 한 번’(1968)이었다. 신파 멜로드라마의 대표작인 이 영화에서 문희는 유부남 신호(신영균)를 사랑하지만 본부인 때문에 난처해진 그를 떠나 홀몸으로 아들을 낳고 살아가는 비련의 여인 혜영을 맡아, 내성적이고 청순가련한 이미지를 십분 활용했다.   

문희의 대척점에는 활달하고 발랄한 청춘 연기를 장기로 삼은 남정임이 있었다.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진학하고 KBS 탤런트 공모에 합격한 남정임은 김수용 감독의 ‘유정’(1966)에 발탁되면서 급속한 성공가도를 달린다. ‘유정’은 국도극장에서 구정프로로 개봉해 33만의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이 되었다. 남정임은 제4회 청룡영화상 신인상, 제13회 아시아영화제 신인여우 장려상을 받으며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었다. 이후 그녀는 본명인 이민자 대신 김수용 감독으로부터 받은 배역명 남정임을 예명으로 삼게 된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남정임은 ‘첫 정’(1971)으로 은퇴하기까지 연평균 20~30편을 찍는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했다. 특히 배우의 길로 이끌어준 김수용 감독과 꾸준히 합을 맞추어 ‘망향’(1966), ‘수전지대’(1968),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은 ‘분녀’(1968), ‘봄봄’(1969)과 경력의 마지막인 ‘웃음소리’(1978)까지 함께 하게 된다. 평소 남정임은 온순한 편이었지만 유독 질투심만큼은 남다른 성격이었다고 한다. 거리에서 라이벌인 문희와 윤정희가 출연한 영화의 포스터를 본 날이면 밥을 잘 먹지 못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윤정희의 데뷔는 ‘청춘극장’(1967)으로 트로이카 중 가장 늦었지만 영화에 대한 집념과 열정만큼은 단연 으뜸이었다. 지적인 이미지로 차별화된 인상을 주었던 윤정희는 ‘안개’(1967)와 ‘장군의 수염’(1968), ‘독짓는 늙은이’(1969)와 ‘위기의 여자’(1973) 등 장르와 캐릭터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려는 의욕을 보였다. 문희가 ‘연인의 길’(1967)의 제작자였던 한국일보의 장강재 부사장(장기영 부총리 장남:작고), 남정임이 재일동포 임방광과 결혼해 은퇴하면서 트로이카 체제가 무너지는 1971년 이후에도, 윤정희는 유현목의 ‘분례기’(1971)로 대종상, 정진우의 ‘석화촌’(1972)과 신상옥의 ‘효녀 심청’(1972)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차지하며 연기파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윤정희는 연기 생활 중에도 틈틈이 학업을 겸해 논문 ‘한국여배우론’으로 중앙대 석사 학위를 받은 근면한 노력파였다. 윤정희는 1973년 은퇴선언을 한 후 프랑스 파리 3대학에 유학해 9년간 공부를 지속하기도 했다. 트로이카의 전성기가 끝난 뒤에도 유일하게 현역 연기자로 남은 윤정희는 66세 때 이창동 감독의 ‘시’(2010)에서 주연을 맡아 생애 두 번째 대종상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게 된다.

영화에서 두 번 만난 트로이카 
기적적으로 세 사람이 한 영화에서 함께 연기한 일이 두 번 있었다. 최인현 감독의 ‘만고강산’(1969)과 정인엽 감독의 ‘결혼교실’(1970)에서였는데, 특히 ‘결혼교실’에서 서로간의 인기 경쟁과 견제가 극에 달했다고 한다. 이 영화에는 당대 최고의 인기 남자배우 신성일에 트로이카 배우, 엄앵란까지 합류해 장안의 화제였는데, 다른 영화를 찍다 늦게 촬영장에 합류한 문희는 주변을 돌아보더니 돌연 기절해서 바닥에 쓰러졌다고 한다. 한 컷도 찍지 못한 채 하루 일정을 통으로 날린 이 사건은 사실 문희의 꾀병이었다.

붉은 색 블라우스에 하얀 미니스커트로 꾸민 남정임, 검은 색으로 단정하게 차린 윤정희의 패션에 압도당한 문희는 스스로 준비한 의상이 초라하게 느껴진 나머지 즉석에서 연기를 벌였던 것이다. 서울 관객 10만을 동원한 ‘결혼교실’은 1세대 트로이카가 쏘아 올린 마지막 불꽃이었다. 훗날 문희는 은퇴를 결심할 당시를 회고하며 말했다. “1960년대는 우리나라 영화의 전성기였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많은 영화를 찍었어요. 연이은 밤샘 촬영에 너무 지쳤습니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기를 견인했던 트로이카 배우들의 공백은 이윽고 다가올 1970년대, 한국영화의 침체기 예고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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