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 불 이상 벌어도 허무해…"

변호사의 길 마다하고 목회자가 된 한인



  • 조 욱 (press1@koreatimes.net) --
  • 18 Jul 2019

박태현씨 28일 목사 안수


1박태현_01.jpg

유망한 변호사로 발을 디뎠다가 목회자의 길로 진로를 변경하는 것은 괜찮은 선택일까?

디모데장로교회의 박태현(43)씨.

박 변호사는 디모데교회에서 오는 28일 안수를 받고 전임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학창시절을 보낸 80~90년대만 하더라도 인종차별이 심했다. 토론토에서 2세로 태어났지만 피부색깔이 달라 젊은 시절 정체성 혼란을 많이 겪었다”며 “그때마다 저를 잡아준 것이 교회이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2005년 오스홀굿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상법·형법 전문)로 일하면서 행복했지만 돈·명예가 전부는 아니었다. 목회를 하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삶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찾고 싶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박 변호사는 젊은 시절 만능스포츠맨이었다. 학창시절 하키·야구·소프트볼·축구 등을 좋아해 선수로도 활약했다. 병원에서 약사로 근무 중인 아내(데보라 김)를 만난 것도 소프트볼 경기에서였다. 상대팀 선수로 나온 걸 보고 한눈에 반한 것. 기도할 때도 계속 쳐다봤다. 지금은 아들(4)·딸(2)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박 변호사는 어려서부터 정의감이 많은 효자였다. 아버지 박기창(73)씨와 어머니 민애연(68)씨가 편의점을 하며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아버지가 경상도(대구) 특유의 무뚝뚝함으로 말이 없었지만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삶을 배워 나갔다.

그는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마틴 루터 킹 목사처럼 약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었다. 의사나 법조인이 되길 바라는 부모님의 바람도 지키고 싶어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박 변호사의 동생은 한인여성회장인 박태준(37) 정신과 의사다. 박 변호사는 ‘형 보다 나은 동생’이라고 칭찬했다.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 뭘까?

“고등학교 때 하나님이 목회자로 부르심을 느꼈다. 대학교에서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바람에 따라 비즈니스(퀸즈대)를 전공했다”며 “대학교 졸업 후에도 로스쿨(오스굿홀) 진학과 신학도 사이에 고민이 많았지만 법조인의 길을 선택했다. 10년 변호사 생활을 끝내고 목회자 안수를 앞둔 지금,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라고 그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후회와 미련은 없다.

변호사 시절 그는 잘 나갔다. 상법·형법 전문가로 연 수입이 20만 달러가 넘기도 했다.
법조인으로 '한보이스' 탈북자 인권 단체에 몸담았고 한인변호사협회·장학재단 등 한인단체 봉사에도 앞장섰다. 풍족하며 보람된 삶에 불만이 없었지만 가슴 한 켠에는 늘 공허함이 자리잡고 있었다.

“젊었을 때 한인들과 만남을 자주 가지면서 그들이 어떤 두려움(강박관념)을 갖고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돈이든 명예든 ‘성공에 대한 갈망’은 결국 삶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중요한 것은 하늘이 주신 이 삶을 어떻게 살아내느냐, 마음 깊숙이 자리잡은 ‘삶에 대한 신념과 자세’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새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론토대 낙스칼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2016년 전도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제 디모데장로교회(담임목사 김인기)에서 영어예배 목회자로의 삶을 시작한다. 풀타임 목회자로 근무하며 벌이가 줄었지만 그는 "성도들 앞에서 말씀을 전한다는 설레임에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전체 댓글

  • 주여 감사합니다. 앞길을 인도 하소서!
  • 저는 이민자로서 어린 학창시절 80 - 90년대에 인종차별을 이겨내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때마다 저를 잡아준 것도 교회이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제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했기에 높은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꿋꿋이 행복하게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행복한 주님의 말씀을 여러분들께 전해주시기 바랍니다.주님의 축복이 내리시길 기도합니다.

댓글을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