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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음악축제의 망상
전망대
- 오피니언 관리자 (opinion@koreatimes.net)
- Aug 22 2019 06:00 PM
세계적 명성의 야외 음악공연장인 할리우드 볼에서 매년 봄 한국일보 음악축제가 열린다. 그날 거기 가면 오래 잊고 있었던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지난 4월 열린 올해 제17회 공연도 그랬다. 2만명 가까운 한인들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남가주에 한인인구가 많음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요즘 한국에서도 음악축제가 홍수를 이룬다. 2006년 시작돼 한국 음악축제의 효시로 꼽히는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을 비롯해 지산 밸리 록페스티벌, 서울 재즈 페스티벌, 울트라 코리아, 워터 밤 서울 등 수많은 야외공연이 매년 여름 펼쳐진다.
하지만 일정이 겹치기 일쑤일뿐더러 출연자들이 ‘그 밥에 그 나물’이어서 참관자들은 오히려 줄고 있단다.
여름엔 지구촌이 다양한 음악축제로 들뜬다. 영국의 글래스톤베리 축제, 이탈리아의 베로나 아레나 축제, 오스트리아의 도나우인셀 및 잘츠부르크 축제, 세르비아의 엑시트 축제, 모로코의 마와진 축제, 브라질의 록 인 리오 축제, 스위스의 몽트뢰 재즈 축제, 미국 위스콘신의 서머 페스트 등이 특히 유명하다. 남가주 인디오 인근의 코첼라 축제도 70여만명을 동원하는 유명 음악축제다. 미국 사회문화사에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음악축제가 있다. 꼭 반세기 전인 1969년 뉴욕 교외의 한 낙농장에서 열린 우드스탁 페스티벌이다.
한국의 광복절 경축과는 전혀 관계없이 8월15일부터 주말 사흘간(실제로는 4일간) 열렸다.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산타나, 그레이트풀 데드, 크리덴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CR) 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가수와 밴드 32팀이 출연했었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거의 50만명이 참관했다. 전대미문의 대기록이다. 대부분이 히피였다.
덥수룩한 머리에 꾀죄죄한 옷차림 등 영락없는 거지행색이었다. 월남전이 교착상태에 빠졌던 60년대 말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 팽배했던 소위 ‘대항문화’를 극대화시킨 이벤트로 부각됐다. 히피들은 반전, 평화, 자유분방, 인간성 회복, 마약 예찬 등 기존 사회질서와 상반되는 기치를 내걸었다. 축제의 공식 명칭 자체가 ‘어퀘어리언 박람회: 3일간의 평화와 음악’이었다. 어퀘어리언(aquarian)은 ‘뉴 에이지’(신세대)를 표징한다. 축제 장소도 우드스탁이 아니었다. 주최측은 팝음악의 거성 밥 딜런이 사는 우드스탁 마을을 개최장소로 추진했다가 여의치 않자 인근 벧엘에 있는 600에이커 낙농장으로 바꿨다. 그래서 벧엘 록 페스티벌로 불리기도 한다. 당시 출연자들 중 반전가수 조운 바에즈는 임신 6개월이었다.
시애틀 태생의 천재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는 공식 스케줄이 끝나 청중이 대부분 돌아간 월요일 아침 2시간동안 신들린 듯 공연해 축제의 백미를 장식했다. 그는 미국 국가를 기타로 연주하면서 날카로운 전투기 굉음을 내 월남전에 얽매인 미국을 풍자했다. 그의 로열티는 전체 32명 출연자 중 가장 많은 1만8,000달러였다. 청중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교통이 완전 마비되고 지역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넬슨 록펠러 뉴욕 주지사가 벧엘을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주 방위군 투입까지 고려했다. 그는 대신 야전병원을 차려줬다. 축제 후 주최자들은 10년차, 20년차, 25년차, 30년차, 40년차마다 기념공연을 개최해왔다. 하지만 ‘골드 애니버서리’(50주년)인 올해는 열지 못했다. 넓은 야외 공연장을 찾기가 어려울뿐더러 스폰서들도 선뜻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치안문제가 더 켕겼을 듯싶다. 첫해 축제는 평온하게 끝났지만 30주년 때 강간, 폭행, 약탈 등 범죄가 문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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