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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입맛까지 빼앗긴 봄
프로슈토 두른 두릅 어때요
- 캐나다 한국일보 (public@koreatimes.net)
- Jun 10 2020 08:25 PM
▲ 염장 햄은 통밀이나 호밀등 구수한 빵과 잘 어울린다.
장 햄은 우리에겐 사각형의 가공육류로 각인돼 있지만, 실제로 햄이란 돼지의 부위를 의미한다.
돼지 발의 윗부분인 넓적다리 가운데서도 뒷다리를 햄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앞ㆍ뒷다리를 같은 부위처럼 취급하면서 불고기나 수육, 찌개 등의 재료로 쓰지만 서양에서는 통째로 소금에 절여 공기 중에서 건조시켜 가공육을 만든다.
가열을 하지 않고 만들어 그대로 먹을 수 있으므로 ‘생 햄’이라 부르는데, 사실 많은 양의 소금에 절이는 처리 자체가 조리 행위다. 이 조리법의 핵심은 미생물의 발생 방지이니 ‘생’이라는 접두사만 보고 ‘고기를 날로 먹어도 되는가’라고 우려할 필요는 없다.
생 햄은 많은 양의 소금에 절여 오랫동안 공기 중에서 건조시키므로 짭짤하면서도 감칠맛이 두드러진다. 또렷한 살코기와 비계로 구분된다는 점이 보통 요리에 쓸 때는 단점일 수도 있지만 가공 과정을 거치면 장점으로 바뀐다. 각각의 맛이 또렷한 두 켜로 나뉘기 때문이다.
생 햄은 아주 얇게 저며 진공 포장해 판매하니 유통 과정도 안전한데다가 포장을 뜯어 바로 즐길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시기에 좀 맛있는 것, 혹은 별미를 찾고 싶다면 생 햄으로 눈을 돌려볼 만하다.
염장 햄 대표 ‘프로슈토’와 ‘하몽’
식문화권마다 나름의 생 햄들이 있다. 이탈리아의 프로슈토가 대표적이다. ‘미리(pro)+수분을 뽑아내다(exsuctus)’라는 라틴어 어원에서 알 수 있듯, 프로슈토는 일단 염장으로 가공을 시작한다. 넓적다리를 통으로 소금에 절인 뒤 서서히 무게를 늘려가며 눌러 수분을 뽑아낸 다음 두 달 동안 둔다.
그리고 여러 번 씻어 염분을 최대한 걷어낸 뒤 직사광선이 닿지 않으며 통기가 잘 되는 곳에 매달아 말린다. 기후나 햄의 크기 등에 따라 가공 기간이 달라지지만, 완전히 건조가 끝나 상품이 가능해지려면 적어도 18개월은 걸린다.
▲ 다양한 음식과도 잘 어울리고, 입맛도 돋워줄 수 있다.
고온 다습한 기후에서는 햄 건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도 프로슈토가 파르마, 산 다니엘 등 북부 에밀리아로마냐 지역의 특산물인 이유다. 국내에서도 프로슈토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뒷면 딱지를 훑어보면 원산지가 미국인 제품이 많다. 이탈리아 프로슈토가 아니기도 하지만 대체로 대량생산 제품이므로 맛은 좀 떨어진다.
그렇다면 이탈리아의 프로슈토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치즈나 와인처럼 프로슈토 또한 원산지 명칭 보호(PDO, Protected Designation of Origin) 제도로 특산물 취급을 받는다. 따라서 양대 대표 지역인 파르마와 산 다니엘에서 나오는 프로슈토는 ‘Prosciutto di Parma/San Daniele, Italy, PDO’라는 문구를 포장에 달고 나오니 참고하자.
파르마와 산 다니엘의 프로슈토는 첨가물을 쓰지 않고 오로지 소금과 돼지 넓적다리만을 써서 만들어야 한다고 규제한다. 하지만 첨가물을 전혀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특산물에 대한 이탈리아만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 염장 햄은 단맛이 강한 멜론등 과일과도 잘 어울린다.
이탈리아의 프로슈토만큼이나 유명한 생 햄이 스페인의 하몽이다. ‘하몽’이라는 말 자체가 스페인어로 ‘햄’인데 돼지 종류, 숙성 기간, 사육 방식에 따라 등급을 나눠 이름을 달리 붙인다. 최상급은 ‘하몽 이베리코 드 베요타(Jamón Ibérico de Bellota)’다. 자유롭게 풀어 놓아 도토리를 먹인 이베리코 흑돼지로 만들었음을 의미한다. 부가 명칭 없이 ‘하몽 이베리코’라고만 쓰여 있는 건 배합 사료를 먹여 키운 흑돼지로 만든 제품이다. 베요타와 일반 하몽 이베리코 사이에 ‘레체보(Jamón Ibérico de Recebo)’ 등급도 있다.
하몽은 프로슈토와 달리 설탕을 첨가해 단맛이 조금 더 강하며 기본적으로 첨가물도 사용한다. 2주간의 염장을 마친 뒤 씻어 소금기를 걷어내고 6~18개월 매달아 말려 만든다. ‘하몽 세라노(Jamon Serrano)’ ‘레세르바(Reserva)’ ‘쿠라도(Curado)’ ’엑스트라(extra)’ 등의 이름이 붙어 나오는 제품은 흑돼지로 만들지 않는다. 일반 백돼지로 만든 햄인데 수식어와 품질은 크게 상관이 없다.
빵이나 과일, 봄나물과도 잘 어울려
염장 햄은 어떻게 먹어야 맛있을까. 종잇장처럼 얇게 저며 소량을 판매하는 데서 헤아릴 수 있듯, 맛이 강렬하므로 그 자체만 먹으면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굴비를 한 번 생각해보자. 소금에 짭짤하게 절인 것이니 살만 먹기보다 밥과 함께 먹으면 간이 잘 맞을 뿐 아니라 탄수화물의 단맛이 어우러져 전체적인 만족도가 한층 높아진다. 염장 햄 역시 원리는 같다.
▲ 데친 두릅에 프로슈토를 돌돌 말아 먹어도 좋다.
적은 양을 맛의 중심에 두고 탄수화물, 과일 등으로 에워싸주면 맛이 더 좋아지고 균형도 잡힌다. 굴비에 밥이라면 염장 햄에는 빵일 텐데, 희고 부드러운 식빵류보다 통밀이나 호밀이 섞인 빵이 더 잘 어울린다. 구수하면서도 지방을 많이 쓰지 않아 적절히 씹는 맛이 있는 빵 말이다. 이런 빵과 염장 햄을 천천히 조금씩 씹으면 햄의 풍성한 지방 위로 짠맛과 고기 본래의 단맛, 빵의 구수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단맛과 대조를 이룬다는 차원에서 염장 햄을 과일과 짝지어 먹으면 더욱 맛있다. 멜론이 지정 파트너처럼 프로슈토를 졸졸 쫓아다니지만 굳이 여기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달고 즙이 많으면서도 신맛을 적당히 갖춘 과일이라면 뭐든 좋다. 초봄이면 철을 안 타는 파인애플이나 맛이 제법 든 딸기도 괜찮다. 한여름이면 복숭아도 잘 어울리는데, 마냥 기다릴 수는 없으니 병이나 통조림 제품을 곁들여도 괜찮다. 생과일보다 잘 익은 걸 가공한데다가 부드러우면서도 아삭함이 남아 있어 생 햄과 제법 잘 어울린다.
▲ 가늘고 긴 브레드 스틱 ‘그리시니’에 프로슈토를 돌돌 말아 먹어도 좋다.
만약 모험심 또는 창의력을 발휘해보고 싶다면 한식에도 자리는 있다. 이제는 문을 닫은 ‘7pm’에서 프로슈토를 허리에 두른 두릅을 선보인 적이 있다. 두릅 특유의 살짝 미끌거리는 질감이 매끄러운 프로슈토와 잘 어울리기도 했지만, 핵심은 역시 쌉쌀함이었다.
적은 존재감으로도 확실한 균형을 잡아주므로 봄나물의 미덕인 쌉쌀함은 생 햄과 아주 잘 어울린다. 두릅처럼 직접 둘러 먹을 수 있는 봄나물이 아니라면 생 햄으로 양념장(드레싱)을 만들어 무쳐먹을 수도 있다. 기름기 없는 팬에 몇 쪽을 담아 약불에 올리면 익으며 비계가 녹아 기름이 배어 나온다. 이를 공기 등에 옮겨 담고 식초나 레몬즙으로 신맛, 약간의 간장으로 짠맛과 감칠맛을 맞춰준다.
그리고 다진 마늘이나 파 등을 더하면 고추나물 등 쌉쌀한 봄나물에 어울리는 양념장이 된다. 기름을 녹여 내고 남은 햄 쪼가리는 구워 바삭해졌을 테니 잘게 부숴 버무린 나물 위에 솔솔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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