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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랑한 ‘불멸의 연인’은 누구? <상>
베토벤 탄생 250주년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Aug 13 2020 07:10 AM
손영호 | 칼럼니스트·토론토
■ 올해가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탄생 250주년이 된다. 하지만 세계적인 코로나-19 병란으로 그 빛이 다소 바랜 것 같아 안타깝다.
베토벤 사후에 그의 옷장 속 비밀 서랍에서 '불멸의 연인에게(Immortal Beloved)'라고 쓰인 모두 10쪽의 편지 3통이 그의 비서이자 제자였던 안톤 쉰들러(Anton Felix Schindler, 1795~1864)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 세 통의 편지에는 수신인도 연도도 없이 '7월6일 월요일 아침, 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라고 날짜와 요일만 적혀 있었다.
베토벤 연구가들은 이 편지가 쓰인 시기는 1812년, 그의 나이 42세 때로 추정한다. 문득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를 떠올리는 대목이다.
편지 내용을 보면 베토벤이 '불멸의 연인'과의 사랑을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가슴 절절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분명 그들 사이엔 운명적으로 가로막는 무언가가 있었다.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 여인은 누구였으며 어디에 있었을까?
■ 첫 후보는 1799년 17세였던 줄리에타 귀챠르디(Giulietta Guicciardi, 1782~1856). 그녀는 비엔나가 칭송하는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베토벤의 연주회에서 그의 피아노곡을 듣고 그의 음악적 재능과 열정에 압도되어 1801년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 후 미래의 남편이 될 벤첼 폰 갈렌베르크(1783~1839) 백작을 포함한 다른 모든 남자들의 청혼을 거절했다.
그러나 작위가 있거나 부유하지도 않으며 대중적으로 잘 어울리지 못하는 이 천재 피아니스트에 대해 집안의 반대가 거세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베토벤의 부인이 되는 대신 백작부인 자리를 선택했다.
1802년 베토벤은 "내가 그녀의 남편보다 더 그녀를 사랑했다"고 고백하며 그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Moonlight)'을 줄리에타에게 헌정한다. 원래 이 월광소나타는 그녀를 위해 쓴 작품이 아니었지만 그녀에게 연정을 품었던 베토벤이 충동적으로 헌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 1799년 줄리에타 갈렌베르크 백작부인의 사촌이며 헝가리 왕국의 귀족 가문인 테레제 폰 브룬스빅(Therese von Brunsvik, 1775~1861)과 요제피네 폰 브룬스빅 다임(Josephine von Brunsvik Deym, 1779~1821) 백작부인 자매가 비엔나에서 그에게서 피아노 레슨을 받는다.
요제피네가 만 20살, 언니 테레제가 24살 때였다. 요제피네는 27살 연상의 요제프 다임 백작(1752~1804)과 일종의 정략결혼을 하여 자녀 넷을 둔 유부녀였는데 남편이 1804년에 폐렴으로 프라하에서 급사하자 베토벤의 구애에 결국 결혼 약속까지 했다. 이는 베토벤 생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약혼이었다. 이 시기에 베토벤은 피아노곡 '안단테 파보리(Andante favori, WoO 57)'를 그녀에게 헌정했다.
하지만 이 약혼은 브룬스빅 가문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친데다, 요제피네 스스로도 베토벤이 자식들에게 좋은 아빠가 될지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실을 맺지는 못하고, 그녀는 홀로 네 자녀를 키우며 가난과 고독 속에 살다가 1821년 42세의 젊은 나이로 타계했다. 베토벤보다 6년 먼저였다.
다수의 베토벤 연구가들은 요제피네가 죽을 당시 써진 베토벤의 마지막 두 피아노 소나타 31번(작품 110)과 32번(작품 111)을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송곡으로 보고 있다. 이 두 소나타의 주제에서 그 전에 그녀에게 헌정했던 '안단테 파보리'의 주제, 일명 '요제피네의 주제(Josephine's Theme)'가 연상된다는 것이다.
불멸의 연인의 실제 인물이 누구던 간에 베토벤의 인생에서 '진정한 불멸의 연인'을 딱 한 명 꼽는다면 바로 이 요제피네 폰 브룬스빅일 것이다. 그녀야 말로 베토벤이 가장 오랫동안, 또 가장 깊이 사랑했던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베토벤은 요제피네와 성혼이 되지 못해 마음의 상처를 입은 후 위안 차원에서 언니 테레제와 잠시 사귀었던 것으로 보인다. 베토벤은 나중에 테레제에게 '피아노 소나타 24번 작품 78'을 헌정했으며, 그 덕분에 이 소나타에는 '테레제'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테레제는 보육원을 설립, 봉사하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그녀가 남긴 일기와 서간은 베토벤 연구자들에게 대단히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다음 후보는 헝가리 귀족 출신 안나 마리 폰 에르되디(Anna Marie von Erdoedy, 1779~1837) 백작부인. 안나 마리는 18세 되던 1797년에 페테르 폰 에르되디 백작과 결혼했는데, 남편은 사업상의 이유로 1807년 비엔나를 떠나 5년 만인1812년에 돌아왔다. 1807년은 베토벤이 브룬스빅 가문의 두 자매 요제피네, 테레제와 모두 결별한 시기였으니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을 때였다.
1남2녀를 둔 안나 마리는 곧 베토벤의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하는 최고의 관객이자 그에게 진지한 조언을 해주는 최고의 매니저가 되었다. 베토벤은 그녀로부터 많은 정신적 도움을 받았으며 그녀에게 보낸 편지마다 '내 영혼의 고해사제'라는 찬사를 적어 보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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