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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단성면 (1)
기생 두향 향한 퇴계의 그리움, ‘구담봉 석벽’ 겹겹이 서렸을까
- 캐나다 한국일보 (public@koreatimes.net) --
- 06 Nov 2020 12:55 PM
관광자원으로 치면 단양은 복 받은 곳이다. 물길과 산길 따라 수려한 경관이 펼쳐진다. 단양팔경으로는 모자라 제2단양팔경까지 선정해 자랑하고 있다. 경치만 빼어난 게 아니라 이야깃거리도 풍성하다. 험한 산세에 비해 접근성도 좋아 예부터 이름난 문인과 화가가 절경을 찾아 흔적을 남겼다. 유서 깊은 도담삼봉을 비롯해 최신식 전망대인 만천하스카이워크, 주변의 수양개터널과 단양강잔도는 이미 널리 알려졌으니, 조금은 덜 붐비는 단양의 또 다른 절경을 찾아간다.
국보 품은 휴게소
적성산성 오르면 남한강이 한눈에
휴게소는 스쳐가는 곳이다. 잠시 쉬면서 급하게 생리 현상을 해결하고, 간단하게 요기를 때우는 곳이다. ‘소떡소떡’을 비롯해 개그맨 ‘이영자 메뉴’로 차별성이 부각되기도 했지만 일시적 현상이다.
뭐 하나 잘 팔리면 유행처럼 번지니 늘 붐비지만 특색 없는 곳이 고속도로 휴게소다. 그러나 중앙고속도로 단양팔경휴게소(춘천방향)은 좀 다르다. 아니 특별하다. 휴게소 뒤편으로 돌아가면 국보가 있고, 남한강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산성도 있다.
▲ 1978년 발견된 단양적성비. 철제 울타리 안에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어 실제 비석은 먼 발치에서 어렴풋이 보인다.
그럼에도 이 휴게소는 유난히 한산하다. 고속도로에서는 휴게소가 보이지 않는다. 조금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곳에 위치해 갈길 바쁜 운전자에게 외면 받기 때문이다.
휴게소 건물 오른편으로 돌면 남한강 전망대가 나오고, 뒤로 돌면 적성산성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이어진다. 잠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중턱쯤에 단양신라적성비가 있다. 삼국시대에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인 적성 지역을 점령 후 세운 비석으로 국보 제198호로 지정돼 있다. 높이 93㎝, 최대 너비 107㎝의 이 비석은 진흥왕 6~11(545~550)년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978년 1월 6일 단국대 학술 조사단에 의해 발견됐는데, 그 과정이 극적이다. 이미 여러 차례 조사가 진행됐기 때문에 주민들은 별 게 없을 거라고 했다. 정영호 교수팀도 큰 기대를 갖지 않았고, 성벽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땅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돌 하나를 보게 된다.
▲ 비각안의 단양적성비.
한 쪽 끝이 삐죽하게 깨져 있어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이면 등산객이 신발에 묻은 진흙을 비벼 털곤 하던 돌이라고 한다. 30㎝ 정도 묻혀 있던 돌을 파보니 글자가 줄줄이 새겨져 있는데 ‘적성’이라는 글자가 먼저 눈에 띄고 이어서 ‘이사부’ 등 신라인의 이름이 보이더라는 것이다.
비의 윗부분이 파손되고 두 동강이 나 있었지만 비문은 땅 속에서 온전하게 보존돼 남아 있는 284자(이후 발굴된 21자를 더해 현재까지 판명된 비문은 총 305자)는 판독이 가능한 상태였다.
비석이 있던 자리에서 옛 건물터도 발견됐다. 기와와 토기 조각 등이 함께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적성산성을 축성할 당시의 지휘본부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문의 대체적인 내용은 진흥왕이 신라의 척경사업(拓境,국경을 개척한다)을 돕고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한 적성인 야이차(也爾次)의 공훈을 표창한다는 것과, 장차 그와 같이 충성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똑같은 포상을 내리겠다는 포고다.
▲ 단양 단성면 성재산 정상의 적성산성. 죽령을 넘은 신라가 한강 유역과 북측으로 진출하기 용이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성 오른편 교각이 중앙고속도로다.
새로 개척한 지방의 민심을 살피고 노고를 위로하며, 용맹하게 싸워 나라에 공훈을 세운 사람에게 상을 내리겠다고 약속한 다른 지역의 진흥왕순수관경비(眞興王巡狩管境碑)와 비슷하다. 국왕이 직접 행차하지는 않았지만 신라가 죽령을 넘어 최초로 축성한 군사기지에 세운 척경비로, 순수비의 선구적 형태라는 점에서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비석은 나무 창살을 두른 비각 안에 고이 보관돼 있고, 비각 바깥으로 멀찍이 철제 울타리가 둘러져 있다. 거리가 멀어 비석은 형체만 어렴풋이 보일 뿐이다. 약 1,500년만에 발견한 소중한 유적이니 그러려니 이해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적성산성은 성재산(323m) 정상 부근을 타원형으로 띠를 두르듯 축조한 테뫼식 산성이다. 성의 동쪽으로는 죽령천, 서쪽으로는 단양천이 흘러 남한강에 합류된다. 적을 방어하기에 용이하고 물길을 이용하기도 수월한 곳이다.
▲ 말발굽 모양으로 남아 있는 적성산성 북측 성벽. 휴게소에서 10분가량 걸으면 도착.
남한강 수로를 따라 상류로 가면 영월이고 하류로 이동하면 충주다. 강 건너 제천 방면으로 진출하기에도 유리한 교통의 요충지다. 경상도에서 죽령을 넘은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고, 북쪽으로 세력을 팽창시키는 전진기지로 이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약 900m에 달하는 산성 중 북측 끄트머리의 성벽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다. 특히 남한강과 접하는 부분은 가파른 절벽이다. 말발굽 모양으로 휘어진 성벽 위에 서면 좌우와 전방으로 시야가 툭 트인다.
전방으로는 요즘 단양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만천하스카이워크와 단양 읍내 모습이 겹겹의 산 능선을 배경으로 아스라히 보이고, 오른편으로는 소백산 줄기가 우람하게 펼쳐진다. 남한강 물줄기는 성벽 북측 바로 아래를 가로질러 제천으로 흐른다.
그 옛날 군사적으로 천혜의 요새였던 곳이 지금은 최고의 전망대다. 휴게소에서 적성산성 북측 끝머리까지는 채 1km가 되지 않는다. 쉬엄쉬엄 걸어도 10여분이면 도착한다.
1시간 정도 쉬어간다고 생각하면 가장 오래되고 멋들어진 최고의 전망대를 산책하는 셈이다. 휴게소 바로 아래 단성면 소재지에서도 휴게소까지 연결되는 도로가 있다. 직원들이 이용하는 별도의 주차장이 있는데 여기에 차를 세우면 산성도 오르고 휴게소도 이용할 수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