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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조된 신화,‘항미원조’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Nov 03 2020 05:23 PM
옥세철 | LA논설위원
‘잊혀진 전쟁'-. 6.25동란, 혹은 6.25전쟁. 미국식으로는 한국전쟁(Korean War).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북한 공산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그해 10월19일 중공군의 압록강도하와 함께 사실상의 미-중 전쟁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1년. 밀고 밀리는 공방전 끝에 전황은 중부전선에 고착돼 지루한 참호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무렵인 1951년 10월5일자 유에스 뉴스 & 월드 리포트지는 한국 전쟁 상황을 보도하면서 ‘한국: 잊혀진 전쟁(Korea: The Forgotten War)’이란 제목을 달았다. 한국전쟁은 이후 말 그대로 미국인들에게는 한동안 ‘잊혀진 전쟁’이 됐다.
2차 세계대전은 ‘가장 위대한 세대(Greatest Generation)’ 가 승리로 이끈 정의의 전쟁으로 각인돼 있다. 반면 월남전은 기나긴 비극적 악몽과 같은 전쟁이었다. 그 두 전쟁 사이에 끼어 샌드위치 신세가 된 전쟁이 한국전쟁으로 별다른 조명도 받지 못하고 세월이 가면서 기억마저 희미해져 간 것이다. 한국전은 그러면 정녕 잊혀진 전쟁인가.
온통 ‘항미원조(抗美援朝)’, 항미원조. 항미원조란 단어로 전 중국이 도배된 것 같다. 이와 함께 ‘19만7653. 이 숫자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가 소셜 미디어에 넘쳐난다. 중국이 참전한 6.25에서 전사한 영웅들을 기억하라는 거다.
6.25, 중국의 공식용어로는 항미원조전쟁. 그 70주년을 맞아 중국에서 목도되는 현상이다. 드라마와 영화가 경쟁적으로 제작된다. 테마는 하나 같이 항미원조 정신을 이어받자는 거다. ‘항미원조 정신은 중국인민의 위대한 자산이다’ 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가 한 마디 했다. 그러자 각급 관영매체들은 일제히 항미원조전쟁 띄우기에 나섰다.
말장난이 심해도 보통 심한 게 아니다. 19만7653이란 숫자부터 그렇다. “적에게 맥시멈 피해를 입혀라.” 당시 미군 야전사령관 매슈 리지웨이장군의 반격지시다. 이에 따라 중공군은 100만이라는 엄청난 전사자를 냈다. 6.25는 그런 면에서 중국공산당으로서도 ‘잊고 싶은 패배한 전쟁’이다.
6.25는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블레싱 하에 김일성이 불법기습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이다. 중국공산당은 이 불의의 전쟁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전쟁을 ‘항미원조’란 프레임을 씌워 역사적 사실을 비틀어 대고 진실을 가렸다. 그리고는 평화를 수호하는 중국이 북한을 도와 미제국주의자를 패퇴시킨 전쟁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그러니까 팩트를 고쳐 현재에 맞춰 과거를 끊임없이 수정하는 거다’ - 진실과 거짓의 분별이 사라진 세계를 그린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의 이야기다. 이와 방불한 수법을 통해 거짓 신화를 중국공산당은 ‘항미원조’란 이름하에 날조해온 것이다.
“항미원조 정신은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위대한 승리였다.” 시진핑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항미원조전쟁 참전 70주년 기념식에서 한 말이다. 그러면서 그 역시 전쟁에서 희생된 19만7653명을 들먹였다.
항미원조란 날조된 신화, 그 안에서는 또 다른 거짓 신화가 꿈틀댄다. 한(漢)지상주의의 중화민족주의다. 시진핑은 엉터리 신화를 강조하면서 배타적 애국주의랄까, 호전적 중화중심주의랄까 하는 고스트를 불러낸 것이다. 광기가넘쳐 흉흉한 살기마저 감도는. 이와 동시에 신 냉전 상황에서 다시북한을 지원하며 ‘신 항미원조’전략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시진핑은 중공군 참전으로 최대피해를 입은 한국은 안중에도 없는 듯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여기서 앞서의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한국전쟁은 정녕 잊혀진 전쟁인가 하는. “80년대 초반까지도 잊고 싶은 전쟁이한국전이었다. 그러나 88서울올림픽, 냉전종식.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달성한 ‘선진 대한민국의 커밍아웃’과 함께 한국전쟁은 재평가됐다.”
6.25 70주년을 맞아 우드로우 윌슨센터가 내린 진단이다. 대한민국은 미국이 막대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공산주의침공으로부터 지켜야하는 나라이고 한국전쟁은 승리한 전쟁으로 미국인들은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최종 결론이다.
6.25를 문재인 정부 사람들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다름에서가 아니다. ‘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였다’ - 문재인 정권 핵심세력들이 지닌 생각으로 보여서다.
공산군침공으로 대한민국을 지켜낸 6.25의 영웅 백선엽 장군이 별세해도 청와대는 애도성명조차 내지 않았다. 벌어진 것은 그의 시신을 국립묘지에서 파내야한다는 저주의 굿판이었다.
방탄소년단이 밴 플리트상 수상소감으로 한미 양국이 함께 6.25란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자고 하자 중국의 누리꾼들은 벌떼같이 달려들어 ‘항미 반대편에 서지 말라’며 생떼를 썼다. 문재인 정권 사람들은 쳐다보기만 했다.
시진핑이 말도 안되는 항미원조를 외쳐도 문재인 정권은 침묵만 지킨다. 아니, 그토록 수모를 당하면서도 자발적 자세로 중국의 세력권에 편입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6.25의 가해자 격인 북한의 독재자를 계몽군주로 둔갑시켰다. 자국민의 죽음엔 입도 벙긋 못하고.
6.25를 조국해방전쟁, 그러니까 미완으로 그친 조국해방전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닐까. 문재인 정권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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