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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은 나를 돌보는 법을 가르쳐 준다
이충걸의 필동멘션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는 법- 하>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 19 Nov 2020 03:45 PM
어떤 일이 있어도 끄지 않는 휴대폰 군중 속에 있을 땐 짜증난다면서 왜 우리는 고독을 견디지 못할까
다들 자기가 만든 리얼리티 쇼의 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모두가 그러니까. 이때 내가 너무 흥미로운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는 사실은 어쩐지 마음이 놓인다. 나는 내면의 지루함과 접촉하면 되니까. 동시에 당신 내면의 지루함을 엿보면 되니까.
최신의 테크놀로지 역사는 일과 삶의 경계가 휴대폰이 만든 다리로 이어질 거라더니, 결국 우리에게 봉사해야 할 물건이 우리의 주인이 되고 말았다. 한 친구는 휴대폰이 세 개나 있는데, 이 전화기로 통화하는 동안 저 전화기로 이메일을 확인한다. 마지막 하나는 모든 전화가 불통일 때를 대비해 차에 두었다. 그는 마트에서 쇼핑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도 휴대폰으로 계약 하나를 끝냈다고 자랑해서 나의 분노를 샀지만, 그런 사람은 필시 하늘이 내리는 거라서 시기하지 않았다.
휴대폰 저글링은 다른 사람들도 능통했다. 어느 레스토랑에선 점심 테이블에 앉은 네 명이 동시에 각각 통화하고 있었다. 모두가 태연한 얼굴. 그 옆 테이블에 앉은 남성도 음식을 먹는 내내 전화를 했다. 통화가 끝나자 앞자리 여성이 휴대폰 좀 보자고 했다. 나는 그녀가 휴대폰을 물컵에 넣거나 밟아 버리길 바랐다. 그럼 얼마나 절묘한 응대가 될까. 그녀는 판결을 내렸다. “앞으로 나 대신 휴대폰이랑 먹어. 나 빼고 영원히.”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전화는 불확실한 의사소통에 대해 새삼 일깨워 주었다. 받을 수도 있고 못 받을 수도 있는 소식의 불규칙함을. 위태로운 네모 박스 벽에 걸린 메시지는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사람들은 집 전화기로는 꿈도 못 꿀 일을 휴대폰으로 다 한다. 강박은 더 심해지고(신호음이 들린다고 당연히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에티켓은 더욱 느슨해져도(얼굴을 기우뚱, 어깻죽지로 받친 채로도 오줌을 싸니까), 통화 규칙을 강조하려는 시도는 비참하게 끝난다(어떨 때는 내가 제일 심하니까).
게다가 영화 볼 때도 응급 상황을 대비해 휴대폰을 켜둔다. 잘 때도 절대, 절대 끄지 않는다. 그 사람이 언제 연락할지 몰라서. 그러나 그런 전화는 걸려오지 않고 휴대 기기나 보험, 부동산 호객 전화나 물러 터지도록 받는다. 나는 인생의 우선순위가 된 ‘중요한 전화’의 정확한 의미가 너무 궁금하다. 그 창의적인 정의가 뭔지.
내 마음은 이제 그만 친구를 만들라고 경고한다. 누군가의 주소록에 내 이름을 보태는 것이 휴식을 주지 않는다고. 친구가 된 낯선 사람이 손짓할 때 그를 알아보지도 못할 거라고. 나의 초보적인 호기심은 이것이다. 사람들은 군중 속에 있으면 짜증난다면서 왜 혼자를 못 견딜까? 결국 양손에 다 쥘 순 없는 걸까?
예술가들은 고독할 필요와, 그 필요가 만들 삶의 방식을 기억한다. 그렇지만 우리 같은 사람도 혼자 보내는 일정량의 시간이 필요하다. 크고 작은 일 속에서 자기를 보호하는 문제, 그때그때 필요한 경계심, 종종 표면으로 끓어오르는 페이소스가 따르긴 해도. 그렇지만 금욕적인 이들이 같이 모여 있는 유럽의 수도원을 보면 끝까지 혼자 지내기란 정말 어렵구나 싶다. 그들은 하늘의 은총과 성직자의 계율, 영적 본성에 대한 사색으로 같이 어울렸으니까.
현대적인 고독은 너무 떠들썩해졌다. 그러나 혼자가 편한 사람은 서로에게 부드러운 기술을 요구하는 세태의 외래종도, 개별적 존재의 희생자도 아니다. 다만 스스로를 통제하는 권리를 가진 사람일 뿐. 당황스러운 건 혼자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혼자가 아닌 시간이다. 자기만의 경험으로 나를 고쳐주려는 사람들과 잡동사니 정보의 참호에서 빠져나온 토요일 아침에는 저녁에 친구를 만나는 시간 사이를 채워야 한다. 무엇을 하든 그 시간은 나만의 것. 입을 닫으면 타인이 나에 대해 말해주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알게 될 것이다.
어느 밤, 동네 밖에서 친구들과 마시다가 집에 들어오면 처음 본 것 같은 적막이 채워져 있다. 그러면 다시 전화 걸고 싶은 충동이 치솟지만 꾹 참는다. 오래된 고독만큼 반갑지 않은 것도 없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혼자 있는 시간은 나를 돌보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것을. 실용적인 자립심은 오히려 나를 사회적 인간으로 만든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비밀의 무게는 늦은 잠, 혼자 마시는 맥주 한 잔만 못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