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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여행의 중심 충남 부여읍(상)
- 캐나다 한국일보 (public@koreatimes.net) --
- 27 Nov 2020 09:23 PM
아득한 옛 도읍 정취 삼천궁녀는 잊어도 좋으리
부여는 낮아서 참 편안한 곳이다. 100년 넘게 사비백제(538~660년)의 도읍이었지만, 웅장한 궁궐 하나 남은 게 없다. 주변 지형도 마찬가지다. 비산비야(非山非野), 위압감을 줄 정도로 높은 산도 없지만 끝없는 평야지대도 아니다. 고만고만한 산과 들이 있는 듯 없는 듯 금강처럼 부드럽게 이어진다. 도심에도 고층 빌딩이 거의 없어 찬찬히 둘러보면 골목마다 옛 도읍의 향기가 은은하다. 국가의 기틀을 다진 위례(한성)나 두 번째 도읍이었던 웅진(공주)에 비하면 백제의 서정이 짙게 남아 있다.
삼천궁녀는 잊어라…갈수록 그윽한
부소산성의 매력
부여 읍내의 북쪽 끝자락 부소산성은 금강(부여에선 ‘백마강’이다)과 접하고 있는 작은 산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소부리성’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지금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실린 산 이름을 따 부소산성으로 부른다. 산성은 웅진에서 사비로 수도를 옮기던 시기인 성왕 16년(538)에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성곽은 산봉우리를 빙 둘러싼 테뫼식과, 주변 계곡을 감싸는 포곡식이 혼합된 형태다. 군창터와 건물터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유사시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평시에는 왕과 귀족들의 후원으로 이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낙화암 바로 아래의 고란사.
산 전체가 성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성벽이 특별히 도드라지지는 않는다. 부소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 해발 106m, 웬만한 지역에선 동네 야산이다. 그래서 대개는 아담하고 담백하다고 표현하는데, 시조 시인 가람 이병기는 부소산을 둘러보고 갈수록 ‘아득하다’고 했단다. 규모에 비해 깊고 그윽하다는 말이다. 부소산문(매표소)에서 출발해 산 뒤편 고란사에 이르기까지 계곡과 능선을 교차하며 여러 갈래의 산책로가 나 있다.
곧장 가면 1시간도 걸리지 않지만, 삼충사ㆍ영일루ㆍ군창지ㆍ궁녀사ㆍ사자루ㆍ낙화암 등을 거치면 2시간 가까이 걸린다. 산자락 돌면 끝이겠구나 여겼는데 고갯길로 이어지고, 고개 넘으면 다시 계곡길이다. 동행한 부여 문화관광해설사는 그래서 “맛있는 음식도 세 번이면 질리지만 부소산성 산책로는 매일 가도 새롭다”고 자랑한다.
▲ 고란사 아래 백마강으로 황포돛배 유람선이 지나가고 있다.
새롭다고 하는 건 겉 다르고 속 다른 부소산의 식생 때문이기도 하다. 옛 지명인 ‘소부리’는 소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겉보기에 부소산은 ‘소나무 산’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내부로 발을 들이면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초입부터 단풍나무가 발갛게 물들어가고, 토성 주변 계곡엔 아름드리 복자기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능선 중간의 영일루에도 단청과 단풍의 조화가 고색창연하다. 궁녀사 인근 ‘태자골 숲길’엔 크고 작은 활엽수가 어우러져 숲의 다양성을 뽐낸다. 늦가을 부소산이 특히 아름다운 이유다.
▲ 부소산은 규모에 비해 깊고 그윽하다. 곡선이 유려한 토성 주변 산책로를 걸으면 마음도 한결 둥글둥글해진다.
산성 내부의 옛 건물을 보면 누구나 망국의 처연함에 어느 정도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데, 사실 백제시대 누각은 하나도 없다. 해맞이 장소에 세운 영일루는 홍산 관아의 부속 건물이었고, 정상의 사자루는 임천 관아의 정문을 옮겨 세운 누각이다.
맑은 강물을 굽어보는 곳이라는 의미의 ‘사자루(泗泚樓)’ 현판은 구한말 의친왕 이강의 글씨다. 강 방향에는 서화가 김규진(1868~1933)의 작품인 ‘백마장강(白馬長江)’ 편액이 걸렸다. 백제의 세 충신(성충ㆍ흥수ㆍ계백)을 배향하는 삼충사, 낙화암에서 꽃처럼 떨어진 궁녀들의 충절을 기리는 궁녀사는 모두 현대에 세운 사당이다.
낙화암은 백마강이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바위 절벽 위다. 아찔함을 뒤로하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강가에 고란사가 자리하고 있다. 절 뒤 돌 틈에 고란초가 자란다고 하는데 쉽게 찾기는 어렵다. 대신 ‘고란약수’ 한 모금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고란사까지 오면 대부분의 관광객은 오르막길을 되짚어 가기보다 황포돛배(편도 5,000원)를 타고 구드래나루로 돌아온다. ‘삼천궁녀’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꾸준히 지적돼 왔지만 유람선의 주제곡은 여전히 ‘백마강’이다.
구드래나루에서 부소산성 주차장까지는 약 1km, 걷기에 적당한 거리다. 오는 길에 구드래조각공원과 부여음식특화거리를 거치고, 백제 궁터였던 관북리유적도 지난다. 부소산 아래 관북리유적엔 현재 조선시대 부여 관아의 객사와 동헌 등이 남아 있다.
[계속]
전체 댓글
조영연 ( yycho4**@gmail.com )
Nov, 28, 09:57 PM백제의 고도 부여에 대하여 잘 읽어보았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나는 부여가 고향인 관계로 부여읍에서 떨어진 곳에서 자랍습니다만 부여는 옛날과 완전히 달라졌지요.
내가 어렸을 때 75년 전에는 군창터( 군인들 양식을 저장하든 곳)에 가보면 불에 탄 보리와 쌀들이 바닥에서 많이 나왔지요. 그래서 관광겍들이 기념으로 가지고 갔지요. 또한 시내 곳 곳에는 옛날 기와장도 나왔고, 심지어 쇠로 만들어 놓은 대인 지뢰도 발견하였었지요. 이제는 옛 모습을 찾을 수가 없지요. 몇년전에 부소산 일대를 돌아보았는데 모두가 달라졌지만 특히 눈에 띠게 달라진것은 가는 곳만다 막아놓고 입장료를 받고 있든군요. 그래서 실망스럽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조영연
joe ( jjiiss**@gmail.com )
Nov, 30, 10:43 AM3 천 궁녀 ??? 말도 안되는 소리 !! / 3 백 궁녀 라면 몰라도 ???!!
솔로몬도 1 천 궁녀 라고 성경에 나와 있는데 !! / 이넘이 지 혼자 1,000 명을 거느리고 ?!! / 청년 들은 장가도 못가고 , 아이를 못 나으니 / 병사들이 부족 해서 , 이민족의 침략에 나라를 잃고 말았다 !!!
아뭏든 ! 3 백 혹은 3 십 궁녀로 역사를 다시 쓰야 한다 !!
그 시절에 작은 나라 에서 3 천 궁녀 라니 / 말이라도 되냐 ???
역사가 승자의 기록 이라 하지만 !! 어느 넘이 택도 안되는 소리를 만들어 놓고 , 우리는 그냥 믿고 있는거 같은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