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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안좌면 박지도ㆍ반월도 (상)
- 캐나다 한국일보 (public@koreatimes.net) --
- 21 Jan 2021 09:33 PM
섬마을 스님의 애틋한 노둣돌, 보랏빛 오작교 되다
▲ 신안 안좌면 두리마을과 박지도를 잇는 ‘퍼플교’. 두리마을과 박지도, 반월도는 3개의 보라색 해상 인도교로 연결돼 있다.
모름지기 섬이라면 애틋하고 그리운 전설 하나쯤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지척에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섬이 있다. 달 밝은 밤이면 큰 섬 암자의 비구니가 울리는 목탁 소리가 낭랑하게 갯벌을 떠돌고, 바다안개가 어른거리는 새벽이면 작은 섬 승려의 예불 소리가 어렴풋이 수면에 번지곤 했다.
목청껏 소리 지르면 들릴 수도 있는 거리,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만큼 서로를 향한 그리움이 간절했던 모양이다. 이심전심, 큰 섬에 사는 비구니는 작은 섬을 향해 노둣돌을 놓기 시작했다. 작은 섬의 스님도 바닷물이 빠질 때마다 열심히 징검다리를 놓았다.
마침내 둘은 바다 한가운데서 만났다. 반가움이 컸던 걸까, 노동에 너무 집중해 물때를 잊어버린 때문일까. 때마침 급격하게 차오른 바닷물은 돌무더기 위에서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을 무심하게 삼키고 말았다.
▲ 신안 안좌면 두리마을과 박지도를 잇는 퍼플교. 왼쪽이 박지도 삼각형 모양의 섬이 반월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 승려의 인연은 사회적으로 지탄 받을 불륜으로 전개되지 않고 애틋한 사랑이야기로 막을 내린다. 섬 주민을 위한 헌신이자 보시라 할 수도 있겠다. 신안 안좌면 박지도와 반월도 두 섬을 잇는 징검다리, ‘중노두’에 얽힌 전설이다. 두 중이 놓은 노둣돌은 세월이 흐르며 갯벌에 묻혀 흔적이 희미해졌고, 이제 징검다리 대신 보랏빛 나무다리가 두 섬을 잇고 있다.
3개의 퍼플교, 사계절 보랏빛 향기
박지도와 반월도는 신안 안좌도에 딸린 작은 섬이다. 안좌도 남쪽 두리마을이 가까워지면 주변에 서서히 보랏빛이 감돈다. 마을로 들어서면 담장도 지붕도, 하다 못해 버스정류소와 쓰레기 수거함까지 보라색이다.
마을 남쪽 끝에서 좌우로 보이는 섬이 박지도와 반월도다. 2개 섬과 두리마을을 잇는 3개의 인도교가 바다 위에 설치돼 있다. 두리마을과 반월도 사이 다리는 ‘문브릿지’라는 별도의 명칭이 있지만 모두 보랏빛 ‘퍼플교’다. 3개의 다리 길이만 약 1.9㎞, 섬을 경유해 한 바퀴 돌면 3㎞가 넘는 바다 산책길이다. 퍼플교는 애초 ‘소망의 다리’라 불렸다. ‘걸어서 섬을 건너는 게 소원’이라는 박지도 주민 김매금 할머니의 간절함이 담긴 이름이었다. 할머니의 소망대로 2007년 목교가 놓였고, 두 섬에 보라색 꽃과 농작물을 심으면서 퍼플교로 불리게 된다.
▲ 박지도의 상징 조형물. 섬이 둥그런 박 모양이어서 박지도라 불린다.
퍼플(purple)은 빨강과 파랑이 반반 섞인 색깔이다. 흔히 보라색으로 번역하지만 붉은 기운이 감도는 자주색에 가깝다. 파랑이 더해질수록 바이올렛(violet), 즉 보라색이다. ‘퍼플교’보다는 ‘보라다리’가 낫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자주교’나 ‘바이올렛교’에 비하면 어감도 그렇고 부르기에도 한결 편하다. 보라는 화려함과 우아함을 상징하는 고급스러운 색깔이다. 고상하고 품위 있는 색이어서 유럽의 귀족들도 보라색 옷을 즐겨 입었다. 일상에서 패션으로 소화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민들도 처음에는 보라색 마을, 보라색 섬으로 가꾸는 것에 조금은 주저했다고 한다. 한국 전통 색상인 오방색(청ㆍ백ㆍ적ㆍ흑ㆍ황) 중 하나라면 모를까, 아무리 특색 있게 꾸민다 해도 보라는 너무 튀는 색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섬에서 고구마와 자색 감자를 많이 재배해 왔고, 도라지와 꿀풀 꽃도 흔했으니 자주색이나 보라색이 영 낯설지는 않았다. 요즘은 자색 뿌리를 자랑하는 양파와 콜라비까지 재배하고 있으니 알게 모르게 익숙한 색이다. 두 섬을 색깔 있는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지금은 라일락과 박태기, 자목련, 수국, 라벤더, 아스타국화, 수레국화 등을 심어 사계절 보랏빛 향기가 가득한 섬으로 변신했다.
▲ 박지도 해안에 보라색 꽃은 지고 진한 자주색 국화가 남아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