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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고려하는 일왕... 군부가 걸림돌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 Jan 24 2021 08:26 PM
소련군 참전하자 히로히토, “이젠 졌구나” 맥아더는 ‘때는 왔다’고 사상최대 상륙작전 구상
일본 도쿄
1945년 8월9일
오전 10시 30분
▲ 히로히토 일왕, 가운데(정면) 군 최고수뇌부와 민간인 장관들 모여 회의.
히로히토 일왕은 시무룩했다. 느릅나무와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정원을 걸으면서 그는 전쟁에서 졌다는 생각을 떨구어 버리지 못했다. 전쟁초기부터의 많은 기억이 머리를 스치다가 히로시마의 철저한 파괴에 생각이 닿았다. “일본국민의 자긍심이 대파됐군.” 그는 혼자 말을 뱉았다.
바로 이때 또하나의 절박한 뉴스가 정원으로 전달됐다. 소련이 만주를 침략했다는 것이다. 소련과 일본관동군이 전투중이라는 것이다. 그의 입에서는 본의 아니게 탄식이 새나왔다.
“러시아의 만주침략은 항복을 불가피하게 만들 것이다.” 그의 결론이었다.
러시아와 일본은 4년전 불가침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다. 배신이었다. 히로히토는 러시아가 동부유럽에서 점령 3개월이 지났지만 그대로 주저앉은 것을 보면서 그렇잖아도 그들을 매우 침략적인 사람들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그들이 태평양전쟁에 끼어들었다는 것은 그들이 일본본토를 점령하겠다는 뜻으로 밖에 볼 수 없었다. 그가 왕으로 있는 국가는 미국과 러시아 두 대국을 상대로 동시에 싸울 만한 인력도 무기도 없는데…
포츠담 선언(Potsdam Declaration) : 1945년7월26일 독일 포츠담에서 가진 회담. 참가국: 미국, 영국, 중국, 소련. • 제1~5항: 일본의 포츠담선언 즉각 수락을 요구. • 제6항: 앞으로 일본의 군국주의 거부. • 제7항: 일본영토 보전을 보장한다. • 제8항: 카이로선언의 실행과 일본영토의 한정. • 제9항: 일본군대의 무장해제. • 제10항: 전쟁 범죄자의 처벌, 민주주의 부활강화, 언론, 종교, 사상의 자유 및 기본적 인권존중의 확립. • 제11항: 군수산업의 금지 • 제12항: 민주주의 정부수립과 동시에 점령군은 철수한다. • 제13항: 일본 군대의 무조건 항복. |
그는 지하벙커에 있어서 걱정없지만 국민들은 그렇지 못함을 히로시마 원폭으로 새삼 깨달았다. 미국은 일본 전국을 공중폭격해 폐허로 만들었고 이젠 폭격할 목표가 더 이상 없다는 말도 그는 들었다.
도쿄는 10여차례 폭격 받았다. 지난 밤에도 그는 B-29폭격기 60대가 부근의 항공기제작소를 폭격하러 왔을 때 적기출현 경보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왜 이 지경이 됐나”이해가 되지 않았다. 국민들은 지쳤지만 그래도 참으면서 반신(神) 반인(人)인 왕이 자기들을 치욕과 고통에서 건질 것으로 기대했다.
일왕은 항복가능성을 깊게 생각했다. 따라올 위험이 상당했다. 우선 일본군이 반대할 지 모른다. 일부에서는 “침략자들아, 올 테면 와라. 너희 야만인들에게 본 때를 보이겠다”라면서 끝까지 싸우려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죽음으로 싸운 후 역사에 길이 남겨지기를 바랄 것이다. 전쟁장관 코레치카 아마미는 믿었다, “일본본토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우리는 적들을 모조리 물리칠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우린 승기를 얻을 지 모른다.” 허황하게 들렸지만 일왕은 그의 말을 믿었다.
일왕이 러시아의 만주침략 뉴스를 곰곰이 반추할 때 군 최고수뇌부와 민간인 장관들로 구성된 ‘전쟁최고위원회’는 칸타로 스즈키 수상 집무실 바로 밑에 파놓은 벙커에서 ‘포츠담선언을 수락하고 항복할 것인가’ 여부를 뜨겁게 논의했다.
▲ 히로히토 일왕.
일왕은 미국 등 연합국에 항복하기 위해서는 군대의 전적인 동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히로히토의 신적 위치와 전제군주적 통치체제에도 불구, 일본에서 실질적 권한을 가진 사람들은 군부였다.
그는 거의 10년 전 1936년도 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군대가 반란을 일으켜 정부의 최고위직 대여섯 명이 암살 당했고 도쿄 다운타운 일부가 이들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결국 일왕 충성파들이 궐기, 봉기를 제압했으나 이같은 쿠테타가 다시 일어날 수도 있고 그렇다면 전과 같이 평정될 지 여부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군국주의 국가에서 군대의 강력한 힘은 통치에 꽤 제약을 주기 때문이다.
맥아더는 그의 마닐라 집무실에서 러시아의 만주침략 소식을 듣자 무척 기뻤다. “그들이 일본에 선전포고했다면 이제야 양면작전이 가능하고 시작됐으니 일본은 반드시 망할 것이다. 유럽전투에서 러시아는 동부전선, 연합군은 서부전선을 맡았다. 이제 태평양에서는 연합군은 동부전선, 러시아는 서부전선을 맡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른 고위 미 장성들처럼 맥아더는 아직도 스탈린을 적이 아니라 동지로 보았다. 그는 전에 장교들에게 “러시아군이 만주에서 작전하지 않으면 우리는 일본본토를 공략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는 러시아 침략은 ‘관동군’이란 일본군 정예부대를 그 지역에 묶어둬서 이들이 미군과의 전투에 동원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그는 또 러시아가 중국의 넓은 지역과 한국을 점령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후일 그가 공산주의자들의 한국침략에 대항해야 할 운명을 그는 그때 알 턱이 없었다. 그는 전투의 전략가일뿐 장래를 내다보는 위대한 정치인은 아니었다.
오늘로써 원폭이 히로시마에 떨어진지 3일 째, 연합국은 일본반응을 기다렸으나 일본은 항복을 거부했고 따라서 맥아더는 세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상륙작전을 구상했다. 본토점령을 위해서다. 장군의 사고방식은 두 번 째 원자탄의 사용과 성공이 가져올 역사적 사건은 내다보지 못했다. 두번째 원폭 그 자체를 그는 몰랐다. ‘봐라. 일본 항복을 얻으려면 지상군이 투입돼야 하지 않나.’ 그는 세상에 화려하게 보여줄 군사작전으로 머리가 꽉 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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