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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도로 따라 예술인 기행 통영 산양읍(하)
- 미디어2 (web@koreatimes.net)
- Feb 10 2021 06:38 PM
윤이상이 그리워하고 박경리가 잠든 곳

▲ 당포성에선 3면으로 남해 바다와 포구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빼어난 전망에도 불구하고 관광 자원이 많은 통영에선 대접받지 못하는 곳이다.
김춘수유품전시관에서 미륵도 동쪽 끝머리로 이동하면 통영국제음악당이 있다. 한려수도의 상징인 통영 앞바다가 코앞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갈매기 두 마리가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형상으로 지었다. 인구 13만명 남짓한 소도시에서 보기 드물게 큰 공연장인데,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1917~1995)에 대한 헌정이라 해도 무방하다.
산청에서 태어난 윤이상은 세 살 때 통영으로 이주해 유년과 청년기를 보냈고, 오사카 음악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후 통영으로 돌아와 교사로도 활동했다. 광복 후 통영의 거의 모든 학교 교가를 작곡했을 정도로 이미 유명해져 있었다. 1957년부터 베를린에 정착해 당대의 거장들과 교류하며 세계적 음악가로 명성을 쌓았지만, 반공을 국시로 내건 박정희 정권과는 화해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

▲ 통영국제음악당 뒤뜰에 윤이상을 기리는 박석이 놓여 있다.
1967년 동베를린(동백림)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그는 중앙정보부에 체포돼 국내로 압송된 후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러자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주축이 된 200여명의 유럽 음악인이 한국 정부에 항의하는 등 그의 수감은 국제적 문제로 번졌다. 결국 1969년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그는 다시 독일로 돌아가 죽을 때까지 조국 땅을 밟지 못했다. 그에게 통영의 잔잔한 파도 소리는 음악 자체였다. 통영 바다는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고향이자 그리움의 대상이다.
음악당 아래 바닷가에는 현재 해안 산책로가 조성돼 시민과 관광객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이곳에서 수륙마을을 거쳐 일운항 부근까지 이어지는 약 4㎞ 도남해안길은 한려수도를 조망하며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거나 걷기에 좋다. 특히 크고 작은 섬들 사이로 솟아오르는 일출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섬 사이에 대로처럼 뻗은 물길로 고깃배들이 부지런히 드나들어 망망대해가 펼쳐지는 동해의 일출에 비하면 한결 안정적이면서도 푸근하다.

▲ 박경리기념관 마당의 동상.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기단의 글귀는 그의 유고 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길을 잡으면 통영에서도 빼어나기로 소문난 산양관광일주도로다. 미륵도를 한 바퀴 도는 드라이브 코스로 일부 구간에 확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대체로 1982년 완공 당시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도로 폭이 좁고 굴곡이 심하다는 얘기다. 해안의 작은 포구를 연결하는 도로는 리듬을 타듯 바다와 산길을 번갈아 오르내린다. 속도가 느려지는 만큼 마음도 한결 여유롭다.
섬의 남쪽 달아항을 지나면 높은 언덕배기에 달아공원이 있다. 최근 일몰 포인트로 유명해진 곳이다. 수평선 부근 먼 산자락으로 해가 떨어지면 띄엄띄엄 봉긋하게 솟은 섬들 사이 바다가 붉게 물든다. 드넓은 갯벌이 드러나는 서해와는 또 다른 일몰 풍광이다.

▲ 달아공원 부근 산양일주도로에서 보는 일몰 풍경.
당포항으로 이동하면 뒤편 언덕에 당포성 터가 남아 있다. 고려 공민왕 23년(1371) 최영이 병사와 백성을 이끌고 왜구를 물리쳤고,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이 다시 한 번 왜구를 쫓아내고 통제영이 설치될 때까지 사용했던 성이다. 당포승첩은 옥포대첩에 이은 이순신의 두 번째 승리였다.
소중한 역사 유적이자 전망이 빼어난 곳인데, 관광 자원이 많은 통영에선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내비게이션에 ‘당포성지’를 입력하면 성 뒤편 마을길로 안내해 바로 찾아가기 어렵고, 주차장도 갖추지 못했다. ‘산양읍 삼덕리 195’를 입력하면 일주도로 바로 옆에 차를 3~4대 댈 공간이 나온다. 이곳에서 대숲과 동백숲이 조화를 이룬 언덕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3면으로 포구와 쪽빛 바다가 펼쳐진다. 미륵산 정상에 오르는 케이블카나 달아공원 전망대에 비해 결코 풍광이 뒤지지 않는다.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양지바른 언덕에서 한적하게 소풍을 즐길 수 있으니 ‘거리두기 여행’에는 오히려 적합한 곳이다.
일주도로 산양읍사무소 부근에서 섬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오르면, 고갯마루에 ‘박경리기념관’이 있다. 단아한 붉은 벽돌 기념관에서 박경리(1926~2008) 묘소까지는 공원을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육필 원고와 통영을 배경으로 쓴 ‘김약국의 딸들’을 시각화한 전시물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의 숨결이 느껴진다.

▲ 강구안 인근 김춘수유품전시관. 시인을 기리는 공간치고는 건물이 관공서처럼 딱딱하다.
전시관 마당의 동상 기단에는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의 유고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산다는 것’ 중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고 남아있는 모든 기운을 사르면서 썼다는 거장의 회고가 단순하면서도 울림이 깊다. 동상은 아슴푸레하게 바다를 내다보고 있는데, 도로 주변 전봇대와 전깃줄이 못내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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