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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SNOWPIERCER
서스펜스 제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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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 Mar 2021 08:45 PM
설국열차는 계속 달린다
기 획 : 조시 프리드먼, 그레임 맨슨 | 장 르 : 액션, SF, 스릴러 | 주 연 : 다비드 디그스, 제니퍼 코넬리 | 평점: ★★★(★ 5개 만점)
2020년 5월 25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미국 드라마 <설국열차>
원작 뛰어넘기. 리메이크 작품의 저주 같은 숙명이다. 미국 드라마 ‘설국열차’도 다르지 않다. 밑그림으로 삼은 봉준호 감독의 동명 영화와 곧잘 비교된다. 안타깝게도 원작만 못하다는 평가들이 나온다.
드라마 ‘설국열차’는 망작일까. 그렇지 않다. 드라마는 화법부터 영화와 다르다. 훨씬 더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그들의 사연이 중첩된다. 시즌당 10편이니 이야기 전개는 영화보다 느리다. “원작 영화에서는 이랬는데”라는 생각을 접고 보면 드라마 ‘설국열차’는 꽤 재미있다. 새로운 볼거리가 있고, 새로운 이야기가 있다.
연쇄살인범 싣고 달리는 설국열차
이야기 얼개는 원작 영화와 엇비슷하다. 환경 악화로 지구는 급속히 얼어붙는다. 인류는 거의 절멸했다. 설국열차에 올라탄 사람들만 생존했다. 1,001칸짜리 열차는 순환 철로를 하염없이 달린다. 멈추면 곧 종말이다. 열차의 운동에너지가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원작 영화의 커티스(크리스 에번스)처럼 꼬리칸에서 혁명을 꿈꾸는 지도자 레이턴(다비드 디그스)이 있다. 레이턴은 본래 형사였는데, 꼬리칸에서 비참한 현실을 겪으면서 최하층민의 지도자로 거듭났다. 레이턴은 꼬리칸 사람들과 무력 혁명을 몰래 준비 중인데, 갑자기 설국열차 상층부의 호출을 받는다. 열차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을 해결해 달라는 요청이 잇는다.
열차 내 살인사건은 시드니 루멧 감독의 고전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1974)을 떠올리게 한다.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 오리무중인 범인, 누구나 용의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은 스릴과 서스펜스를 만든다. 레이턴은 수사를 하게 되면서 설국열차 상층부에서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다. 드라마는 연쇄살인 사건과 상층부의 비밀 맞물리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미국사회를 열차에 담다
드라마는 연쇄살인 사건을 빗대 설국열차 안에 새로 형성된 사회의 부조리를 들춰낸다. 최상층 사람들은 열차라는 운명공동체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다. 자신들의 기득권과 특권 유지, 안락한 삶만 생각한다. 열차는 칸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 중간층이 있는 한편 중하 계층이 존재한다.
열차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특히 다양한 인종들이 부대끼는 미국사회를 반영한다. 레이턴은 흑인이다. 흑인이 혁명을 주도한다는 설정부터가 의미심장하다. 승무원과 보안요원 등 열차의 중간 계층은 이민자들이 많다. 성소수자들의 사랑이 묘사되기도 한다. 인종 문제에 계층 갈등, 소수자 이슈, 여성주의가 포개지면서 담고 있는 이야기가 영화보다 풍성해진다. 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다채로운 사랑 이야기까지 전개된다. 아무리 작은 사회라고 하나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 패스가 있기도 하다.
▲ 드라마 ‘설국열차’는 여성주의가 반영된 여성 주인공을 내세우기도 한다.
혁명 이후에도 세상은 지속된다
원작 영화는 기후문제, 아동 노동의 야만성을 지적함과 더불어 기존 시스템의 파괴를 주장한다. 남궁민수(송강호)가 열차를 폭파하고, 요나(고아성)가 밖으로 나가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기존 시스템에 대한 전복 없인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없다는 감독의 급진적 사고가 담겨있다.
드라마는 다르다. 레이턴은 열차를 파괴하고 밖으로 나가는 위험천만한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물론 설국열차 파괴는 시즌 종료를 의미할 수도 있으니까). 그는 설국열차 안에서 다종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며 새로운 사회 건설을 도모하나 기존 지배세력의 반동이 기다린다. 설국열차 지도부의 비밀과 또 다른 주요 인물의 등장은 영화와 판이하게 다르다. 시즌2부터는 원작 영화와 궤도를 아예 달리 한다.
▲ 꼬리칸 하층민의 혁명이 성공하면 새로운 사회는 바로 건설되는 걸까. 드라마 ‘설국열차’는 원작 영화와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