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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어렵다고 해도
안상호 | 논설위원 (LA)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Mar 12 2021 05:07 PM
지난해 크리스마스 무렵 버지니아주의 한 선교회 앞에는 긴 차량 행렬이 늘어섰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은 겨울비처럼 차게 굳어 있었다. 일주일치 정도의 식재료를 나눠주는 자리였다.
TV 카메라 앞에서 한 여성이 말문을 열었다. “여기 오는 게 망설여졌어요. 최후의 뭔가를 선택한 저 자신이 싫었어요” . 그녀는 일자리를 잃은 회계사였다. 감원 통고를 받은 약사도 차량 행렬에 있었다. “아이가 둘인데 음식이 정말 중요해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LA의 엘몬티에서도 몇 블록에 걸쳐 차가 길게 늘어섰다. LA 리저널 푸드뱅크는 이날 식품 4,000박스를 배포했다. 식사와 신선한 야채, 낙농품, 통조림, 기저귀 등이 들어 있었다. 가족 중에 유일하게 일자리가 있다는 한 여성은 “요즘 같은 때 큰 도움이 된다”며 식품 박스를 반겼다.
비슷한 시간 오렌지카운티 애나하임의 혼다 센터에서는 세컨드 하비스트 푸드뱅크가 식료품을 나눠주고 있었다. 주말마다 150명 가까운 자원봉사자들이 나와 일손을 도왔다. 해고된 후 처음 푸드뱅크의 존재를 알게 됐다는 한 남성은 지금은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인의 살림살이는 상대적으로 더 고지식하다. 완충장치가 그만큼 엷다. 안정된 사회에서 살아 온 때문인 듯하다. 굴곡진 세월을 보내야 했던 이민자들이 거의 본능적으로 비오는 날에 대비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백신도 없는 것이 배고픔이라고 한다. 통계를 보면 이게 맞는 말인가 싶을 정도로 미국의 굶주림도 심각하다.
지난달 연방정부 발표에 따르면 팬데믹 후 미국 성인의 11%, 자녀가 있는 가정은 7집중 한 집 꼴로 식품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특히 라티노와 흑인 주민들이 심각하다. 이들이 밀집한 동네는 건강 식품을 찾아 보기 어렵다고 해서 ‘식품의 사막’ , 또는 패스트 푸드점만 몰려 있다고 해서 ‘식품의 늪’으로 불리기도 한다.
LA 리저널 푸드뱅크는 지난해 3월부터 반 년간 1억1,500만 파운드, 9,500만 끼의 식사를 나눴다고 한다. 전보다 145%가 늘어났다. 버지니아의 실직 회계사나 약사처럼 중산층도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기부되는 식품과 자원봉사도 늘었다. 돕고 사는 사회인 것이다.
지난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이었다. 그만큼 기아가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이어 올해는 세계적으로 기근 바이러스가 덮칠 것이라는 경고도 있다. 식량 주권을 확보하고 있는 나라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안상호 | 논설위원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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