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주간한국
우리 세대 경험은 보배...해외로 눈 돌리면 평생현역
- 미디어2 (web@koreatimes.net)
- Mar 18 2021 03:16 PM
50대 중반에 ‘늦깎이’ 박사에 도전
구 전 교수는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75년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에 입사했다. 그는 “돈 많이 버는 걸 취업 목표로 삼는 건 당시만 해도 부끄러운 일이었다”면서도 “집이 워낙 가난해 주식 등 자본시장에 대해 잘 알면 큰돈을 만질 수 있겠다 싶어 증권사에 들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성공가도를 달렸다. 1986년부터 7년간 대우증권 런던현지법인 사장으로 있다가 귀국해 국제본부장 등을 지냈다. 그러나 2001년 대표를 그만 두면서 52세의 나이에 덜컥 은퇴자가 돼 버렸다. 구 전 교수는 이때를 “인생에서 가장 허망하고 찬 바람 불던 시기”라고 회상했다. “대표라는 직함을 달고 있을 때는 모두가 나를 알아줬는데 은퇴하고 나니 찾아주는 곳도, 불러주는 이도 없더라고요.”
인생 2막은 작은 성취감에서 시작됐다. 숭실대 대학원생과 최고경영자과정생을 대상으로 강의했는데 주식, 펀드, 해외투자 등 풍부한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강연이 꽤 인기를 끌었다. 구 전 교수는 “은퇴 이후 나의 경험과 지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돼 매우 기뻤다”고 말했다.
작은 성취는 욕심을 불렀다. “이왕 하는 거 부족한 이론 부문을 배워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4년 숭실대 중소기업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때 나이가 55세. 2008년 59세에 학위를 받은 ‘늦깎이’ 박사는 수원과학대 국제경영학과에서 66세까지 강단에 섰다.
해외활동에서 예상치 못한 보람 느껴
교수 생활을 마감한 그 해, 구 전 교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선발하는 ‘월드프렌즈 중장기 자문단’에 지원했다. 대학 동문 모임에서 지인이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계기였다. “금융계에 오래 있었고 교수도 해봤으니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고민 없이 곧바로 지원했죠.” 해외 중장기 자문단은 개도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행정ㆍ의료ㆍ교육ㆍ농업 등 여러 분야에서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퇴직자 또는 퇴직예정자를 선발, 파견하는 프로그램이다.
‘해외 석학의 초빙 강연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한 그는 평소 알던 미국ㆍ영국 소재 대학 교수 20여명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그중 한 명의 소개로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박사를 마친 마이애미대 교수를 초청했다. 그와 함께 ‘글로벌 시대 미얀마 정책 방향과 환경’이란 주제로 진행한 공동강의는 대학 총장이 직접 참석할 정도로 상당한 호응을 받았다. “이곳에선 내가 '필요한' 사람이구나 싶었죠." 예상치 못한 보람이었다.
“우리 세대 경험은 개도국에 큰 도움”
그 큰 보람은 구 전 교수를 이번엔 몽골로 이끌었다. 그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의 중장기 자문단에 지원, 2018년부터 1년간 몽골 금융위원회 증권국에서 증권시장 활성화와 관련한 조언 업무를 담당했다.
이곳에 파견 나온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등 내로라하는 기관의 전문가들 속에서 그는 자신의 “새로운 강점을 찾았다”고 했다. 그것은 ‘오래된 경험’이었다. “몽골에서 필요한 자문은 선진국의 1980~90년대 자본시장 육성 방법인데, WBㆍADB 등의 젊은 전문가들은 2010년대 이야기만 하더라고요.”
구 전 교수는 한국의 1980~90년대 자본시장 육성 정책에 대해 공부한 뒤 본인의 경험을 녹여 증권국 전문가들에게 설명했다. 파워포인트 100장씩 발표 자료를 만들어 한 달에 2회 정도 세미나도 진행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몽골의 유력 일간지와 ‘몽골 증권시장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인터뷰도 했다. 그는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룩한 한국의 시장경제, 투자문화 변화, 자본시장 육성 등 우리 세대가 갖고 있는 현장의 경험은 이제 개발단계에 들어선 개발도상국에겐 귀중한 조언이 될 수 있다”며 “더 넓은 세계에서 기회를 찾는다면 ‘평생 현역’으로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간 해본 적 없는 일에 뛰어드는 건 한 살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공률을 높이려면 자신이 일평생 해온 업무 범위 내에서 새로운 일을 찾는 게 중요해요.”
www.koreatimes.net/주간한국
미디어2 (web@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