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주간한국
맥아더 통치자로 일본 땅 밟다
- 미디어2 (web@koreatimes.net)
- Mar 21 2021 07:35 PM
호위병도 무기도 없이 적지(敵地)에 내리다 주둔군 총사령관이며 일본을 통치 개조할 독재자 앗수기 비행장은 1주전에도 가미카제 훈련한 곳 무슨 일 벌어질까 전세계가 숨죽이고 기다려 미군 정보당국, 일본군 함정아닌가 전전긍긍
앗수기 비행장
일본 혼슈 칸토 평야
1945년 8월30일 하오 2시 5분
▲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앗수기 비행장에 도착, 개인전용기 C-54 군용기앞에서 내리고 있다.
최고사령관이 도착했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개인전용기 C-54 4발 프로펠러 군용기가 비행장에 내렸다. 활주로는 울퉁불퉁하고 위험하게 여기저기 파손되었다. 미군 비행기들이 이 비행장을 수 주 동안 폭격했고 그후 점령한 미군이 긴급히 복구공사를 했다. 그러나 비행기 바퀴가 폭탄이 파놓은 웅덩이에 빠지면 나오지 못했다.
덥고 습기찬 날이었다. 장군을 태운 비행기는 성조기가 펄럭이는 청사로 천천히 진입했다. 장군은 기내의 작은 창문을 통해 밖을 열심히 살폈다. 비행장에는 최근 도착한 B-29기들이 줄지어 있었다. 도열한 군악대는 곧 행진곡을 연주할 준비를 갖추었다.
일본 승용차들이 장군과 대원들을 요코하마의 뉴그랜드 호텔로 에스코트하기 위해 대기중이었다. 그를 기다리는 2백 명 가량의 취재진들도 있었다. 이들은 비행기 트랩 아래로 뛰어갈듯한 태세다. 거의 모두가 일본인이었다.
3일 후 일본 지도자들은 도쿄만에 정박중인 미국 미주리함 갑판에서 항복문서에 정식서명할 것이다. 세계 지도자들이 이 광경을 목격하기 위해 함상을 꽉 채울 것이고 맥아더는 승전 사령관으로서 만천하에 위엄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이날 또 다른 방법으로 기록될 수 있고 맥아더는 이를 혼자서 짊어질 지 모른다.
일본은 이제껏 외국인의 군화에 짓밟힌 적이 없었다. 연합군 총사령관으로서의 맥아더는 일본에 상륙한 점령군을 지휘할 뿐 아니라 일본을 다스리는 독재자가 될 것이다. 그는 언론과 일본 정치를 통제한다. 독일에서 이같은 역할을 수행하다가 쫓겨날 상황에 처한 조지 패튼 장군과 달리 맥아더는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권력을 소유할 것이다. 러시아가 “맥아더와 같은 수준의 장군을 파송, 일본을 공동통치하겠다”고 제의했을 때 촌스럽지만 의지가 굳은 트루만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맥아더는 앞으로 수개월간 일본 안팎을 철저하게 바꿀 대변혁을 시작한다. 일본여성들에게 공식 투표권을 주고 전범으로 도쿄전범재판에 어떤 일본장군을 세우느냐 하는 결정에도 관여한다. 일본 지도자인 히로히토 일왕의 권력도 빼앗는다. 사실상 장군의 통치스타일은 1192년부터 1867년까지 일본을 주름잡은 쇼건이나 군벌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맥아더의 이 같은 조치들이 무리없이 잘 집행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수많은 제국주의 일본군대는 무기를 그대로 가졌다. 진주만 습격에서 보았듯이 속임수는 일본 군문화의 일부다. 미국 정보당국은 맥아더를 기다리는 천막파티가 그를 살해하는 함정이 될 지 모른다고 몹시 마음을 조렸다.
장군의 별을 단 스탭들이 목적지에 도착, 비행기에서 내리려고 줄을 섰을 때 그들은 안절부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장교들은 방금 다린 카키색 군복을 말끔히 차려입고 보기 좋았으나 그들은 휴대한 무기가 없었다. 특별전용기가 이륙 직전일 때, 맥 장군은 스탭들이 권총을 차고 있는 것을 보고는 즉시 무장해제를 명령했다. “그런 것으로 무얼 할꺼냐. 내려놔라” 장군은 소리쳤다. 이어서 “그들이 우리를 죽이려한다면 그 따위 무기들은 아무 소용 없을 것이다. 반대로 전혀 두려움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인상을 깊게 할 것이다. 그들이 아직도 패배했음을 모른다면 우리 스탭들의 당당한 태도가 그들을 감화시킬 것이다”라고 위엄있게 말했다.
그들을 기다리는 운명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 채 어떤 무기도 손에 들지 않은 스탭들은 선두에 선 장군을 따라 램프에서 내렸다. 그가 가장 신임하는 부하들이었다. 커트니 휘트니 소장은 이때의 긴장된 광경을 “세계가 숨죽여 보고 있던 순간이었다”고 기술했다.
1주일 전 만 해도 이 비행장은 일본군의 제로전투기 부대가 미국폭격기로부터 도쿄를 보호하기 위해 주둔한 기지였다. 카미카제 조종사들을 훈련하는 곳이기도 했다. 바로 종전 직전까지 수많은 시민들이 동원되어 미군격퇴를 위한 땅굴과 비행기를 숨기는 격납고를 만들던 곳이었다.
▲ 일본의 항복 장소였던 미주리 전함의 갑판.
히로히토가 항복선언을 라디오로 방송하자마자 이 기지에 있던 수많은 전투기 조종사들은 맹렬히 반발하면서 일본국민의 항쟁을 권하는 전단을 도쿄에 계속 뿌렸다. 이런 상황으로 판단할 때 맥 장군이 무장도, 호위부대도 없이 적지로 뛰어든 것은 대단한 용기가 아니면 무모한 짓이었다. 일본 조종사 중 일부는 이날 공중에서 대기하다가 장군 비행기에 카미카제 공격을 할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상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리차드 서더랜드 장군은 이륙전 “맙소사”를 외치면서 말했다. “일왕은 신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그래도 그들은 항복하는 왕을 죽이려 한다. 그러니 맥 장군 당신은 얼마나 좋은 굴러 들어온 목표물이냐”고 장군에게 위험을 경고했다.
그러나 맥아더는 비행기가 청사 앞에 멈추자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원수 모자를 쓰고 옥수수대 담배파이프를 입에 물었다. 검은색 조종사 선글라스를 썼다. 그후 비행기 뒤쪽 문으로 다가갔다. 그는 모든 가능성을 가볍게 보지는 않았지만 과거 일본을 방문했을 때 동양 사고방식에 대해서 조금 배운 게 있었다.
윈스톤 처칠 영국수상은 맥아더가 호위부대 없이, 권총조차도 차지 않고 일본 비행장에 도착하는 것을 보고 탄복했다고 기록했다. “2차대전의 모든 사건 중에서 맥아더 장군이 취한 앗수기 비행장 도착은 가장 용감한 행위로 생각한다.”
두려움을 보이거나 아주 작은 공포의 모습은 일본국민들에게 ‘간이 작은 사람’으로 보이게 할 것이다. 그가 타고 온 전용기 별칭도 바탄(Bataan=루존 섬)이었다. 42년 필립핀에서 수천명의 미군과 영국군이 일본군에게 학살당한 지역을 언제나 상기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었다. 이 같은 자극적인 이름을 동체에 써붙인 적국기 단1대가 아무런 호위병 없이 제 발로 걸어들어온 그 용기는 일본인들을 감탄시키지 않았을까.
[계속]
www.koreatimes.net/주간한국
미디어2 (web@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