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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린 스테트하이머
Florine Stettheimer (1871~1944)
- 미디어2 (web@koreatimes.net)
- Mar 23 2021 04:56 PM
미묘한 사회적 풍자를 그린 아방가르드 맨하탄 재즈시대의 환타지

▲ 자화상
스테트하이머는 미국의 화가이자 시인으로 재즈시대 뉴욕의 사회적 풍경을 밝고 화려하게 캔버스에 묘사했다. 일생동안 그는 주류 예술계와 거리를 두면서 자신의 작품을 선별적으로만 공유했다. 독창적인 미국의 모더니스트로서 사후 모호하게 사라진 그의 작품은 1995년 뉴욕 휘트니미술관이 "Manhattan Fantastica"라는 제목으로 전시하므로써 재발견되었다.
플로린은 1871년 뉴욕 로체스터에서 저명한 독일계 유대인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플로린이 어렸을 때 집을 나갔지만, 가족들은 재정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남겨져 어린시절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살았다. 기숙학교에서 미술개인교습을 시작으로 언니 캐리와 여동생 에티와 함께 유럽의 수많은 미술관들을 돌며 유럽 전통스타일의 미술기법들을 공부했다.
또 19세기말 큐비즘 작가들과 세잔, 마네, 반 고흐, 모리소, 마티스 등의 살롱전시와 스튜디오들을 다니며 당대의 미술을 마음껏 경험했다.

▲ A Model (Nude Self-Portrait), 1915-16, oil on canvas

▲ Family Portrait I/1920
세 자매는 “독립적인 처녀 컬트”라고 부르는 것을 형성했다. 어머니 로제타에게 헌신한 세 자매는 "절반은 예술적 쾌락에, 또 절반은 예술작업에 집중하는 최고의 여가 생활"을 추구했다.
플로린은 평생 결혼하지 않고 두 자매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여성의 자유와 창작력을 억압한다고 생각했다. 자매들과 함께 페미니즘 테마와 여성 배우들로 이루어진 공연작품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다.
1차대전 발발후 스테트하이머가 (家) 의 네 여자들은 맨하탄의 아파트에서 살며 살롱을 열었다. 20세기 초반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음악가, 시인, 작가, 무용가들이 모두 모이던 곳이었다. 빈번한 방문객으로는 우리가 알 만한 조지아 오키프, 마르셀 뒤샹 등이 있다.
플로린은 그 곳에서 자신의 최신 작품들을 선보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동성애가 불법으로 여겨졌지만 그의 살롱에는 많은 레즈비언과 게이, 양성애자들이 모였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길 필요도 없었다.

▲ Family Portrait II/1939

▲ Sunday Afternoon in the Country 1917
그의 작품은 화려한 색과 춤을 추는 듯한 사람들의 포즈가 매력적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그 시대를 마음껏 누렸던 자유주의 사고가 표출된다. 그래서 어떤 고뇌나 괴로움이 아닌 기쁨과 행복, 자신이 살던 뉴욕을 사랑했던 충만함이 감돈다.
플로린의 사상은 명백히 자유주의였다. 그는 20대부터 프랑스에서 열린 초기 페미니스트 모임에 참석했고, 여성의 투표권을 열렬히 지지했다. 또한 프랭클린 D.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의 노골적인 지지자였다. 또한 조지 워싱턴의 기념품을 수집하고 "내가 수집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밝혔다.
플로린은 사회적 비평에 억제되지 않은 날카로운 혀를 가진 재치있는 아티스트였다. 1920년대에 유행했던 옷의 직선 컷에 등장한 플로린의 페인트 버전은 빨간색 하이힐을 신고 70대에도 불구하고 40대처럼 보였다.
그는 1944년 사망 2주 전에 뉴욕현대미술관에서 가장 좋아하는 자매들과 어머니, 사랑하는 뉴욕을 주제로 ‘걸작’인 Family Portrait II (1939)를 전시 했다.
그리고 사망 2 년 후, 그의 절친 마르셀 뒤샹은 현대미술관에서 플로린의 회고전을 조직했다.

▲ Jenny and Genevieve, 1915

▲ The Cathedrals of Art, 1942, 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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