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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원흉 도조 수상, 시민과 포로의 고문학살을 지시하다
미군체포조가 닥치자 방아쇠 당겨 … 잘못 쏴 생명 유지
- 미디어2 (web@koreatimes.net)
- Mar 29 2021 07:44 PM
자살위해 가슴에 심장표적 그려놓고 권총을 항상 옆에 둬
▲ 총리대신 시절의 히데키 도조.
전쟁은 히데끼 도조에게는 끝나지 않았다.
작은 체구의 60세 전 수상이며 전쟁을 계획하고 촉진한 최고 원흉은 완전무장 미군 부대가 자기를 잡으려고 닥쳐올 때를 기다리며 여유있게 지냈다. 도망갈 수도 있었지만 ‘그는 미친 사람’이란 평판과 달리 사려깊은 사람이었다. 그는 독일 나치들이 패망 후 남아메리카로 떼지어 숨어들어오는 것을 경멸했다. 자기는 생면부지의 땅에서 이름 없이, 평생 마음조리며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자기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얼굴 아닌가. 어디서 살건 일본인임을 부인할 수 없고 결국 자기 정체는 드러나 체포 압송되는 창피를 당할 것이다. 키는 불과 다섯 자지만 지구상에서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있을까. [일본군 평균키 5피트 3인치]
도조는 도쿄 외곽에 있는 본인 소유의 작은 농가에서 지냈다. 다만 권총 1자루는 늘 가까이 두었다. 체포조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생명을 한 방에 끊기 위한 것이다. 그때문에 주치의에게 부탁해서 심장이 있는 가슴에 표적을 그려놓기까지 했다.
항복 직후여서 미군들은 매일 떼를 지어 상륙했다. 그들은 일본군을 무장해제시키고 일본군 함정의 함포 포신에는 쐐기를 박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모든 군비행기에서 프로펠라를 떼어내 날 수 없게 만들었다. 중국에서는 미해병 4만명이 북쪽으로 향했다.
거기서 그들은 러시아에 점령되지 않은 일본군들의 항복을 받고 주둔군의 역할을 수행했다. 사실 이 해병들은 바로 1년전 펠렐리우 해변에서 일본군과 혈투를 벌이던 용감한 군인들이었다. 일본군들이 자기들의 잔인한 모습을 세계에 보인 전투이기도 했다. 전사자의 고환을 짜르고 시체를 나무에 걸어놓고 총검연습을 한다든지 …. 그러므로 해병들에게 일본군은 원수와 같았지만 승리자의 관용과 용서가 그들을 자제하게 만들었다.
중국에 있던 일본인들은 전투에서 패배한 경험이 없다. 그때문에 자존심 강한 그들이 무기를 땅에 놓고 군기를 내리는 것은 참기 어려운 수치였다. 미군이 이 점을 이해한 것도 양국간 전후 화해와 복구에 도움이 됐다.
전쟁은 끝났더라도 해결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었다. 미군도 일본군 영향으로 전투중 더럽고 잔인한 짓들을 저질렀다.
나치 지도급 인사들이 뉴렘버그에서 국제재판을 받듯이 일본의 외교관과 군 수뇌들도 감방신세를 지면서 재판정에 오를 것이다. 이를 예상, 최고사령부 격인 제국부대(Imperial Guard) 본부는 전 예하 부대에게 전통을 때려 모든 문서를 불태워 증거를 인멸할 것을 지시했다.
▲ 권총알이 빗나가 고통으로 얼굴을 찌그린 도조. 그는 배를 가를 용기는 없어서 권총을 택했다.
이 문서들은 외국군 포로에 대한 대우와 학대, 한국인 등 위안부와 징용자 관계, 생화학 무기개발 등, 후에 드러나면 일본의 온갖 죄악상이 천하에 드러나 두고두고 규탄 비난 받을 기록들이다. 그러나 모든 증거가 사라지지는 못했다.
맥아더는 42년부터 전쟁범죄 증거수집 필요성을 고려, 통번역 군부대에 지시, 일본군의 모든 포로 학대와 전사자 신체 훼손 등 갖가지 잔혹한 처사에 관한 기록을 전부 수거보존할 것을 명령했다. 일본이 모든 공문서를 소각했지만 전쟁이 끝난 9월2일까지 통번역부는 35만건을 수거했다.
통번역부 책임자 시드니 마쉬버는 일본외무성의 가즈오 오카자키 질문에 반박할 수 있었다. 그가 증거제시를 요구하자 마쉬버는 일분군들이 마닐라점령 때 수천 명의 시민들을 불태워 죽이고 강간하고 심지어 아이들까지 집단 학살하라고 명령 받았음을 사진으로 증명했다.
“그러면 명령을 내린 사람이 누군지 아시요?”라고 오카자키는 또 물었다. 마쉬버 대령의 증거가 조작임을 증명하려 했던 것이다.
대령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분노한 목소리로, “그것은 건마다 다르다. 당신은 조금 후 그 책임자들의 신병을 연합군으로 넘겨달라는 요구를 받을 것이다”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일본 외교관과 군인들이 살인과 성폭행 및 포로학대 등으로 재판받을 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주동이 된 가장 악랄한 전범은 연합국 검사단 조사로부터 제외됐다. 사실, 일본이 항복하고 연합군의 일본 주둔이 시작된 지 거의 2주가 지났으나 히데키 도조 장군은 단 1명의 미국인도 만나지 못했다. 그는 농가에서 기다렸으나 미헌병들의 방문이 없자 어떤 때는 미국인들이 아예 안 올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도조는 자기가 특별함을 알았다. 일본을 미국과의 전쟁으로 이끈 사람으로 또 진주만 기습작전의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한 사람으로, 또한 포로들과 점령된 시민을 학살하라고 일선 사령관들에게 독촉한 사람으로서 그는 책임질 일이 너무 많았다.
그러므로 기소되지 않을 지 모른다는 생각은 그의 단순한 희망일 뿐이었다.
자기가 사형장에서 처형되는 것은 또하나의 다른 일이었다. 그는 결코 살아서 체포되지 않을 작정이었다. 권총을 항상 옆에 두었고 가슴에 목표지점을 그려 둔 것도 이때문이 아닌가. 그는 많은 사령관들 처럼 유서를 쓰고 바닥에 꿇어앉아 단도로 배를 가를 용기는 없었다. 그 대신 .32구경의 콜트 자동피스톨이 훨씬 빠르고 확실하지 않는가.
바로 전날 두 명의 용감한 기자가 그의 집 문을 노크하지 않았더라면 연합군측은 그를 찾아서 오래 헤맸을 것이다. AP통신사의 머린 스펜서와 러슬 브라인즈는 도조가 그들에게 독점인터뷰를 허락하자 사실일까 의문이 들 정도로 놀랐고 기뻤다.
큰 기대없이 그에게 전화해 본 것이 그대로 성사된 것이다. 도조에게 인터뷰는 죽기전 자기 이야기를 늘어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는 기자들이 질문을 퍼붓는 인터뷰 중 줄담배를 계속했다. 다가온 전범재판에 관한 이야기를 제외하곤 못 물어볼 말도, 대답못 할 것도 없는 장황한 인터뷰였다.
“아시아의 테러 자체였던 민대머리.” 두 기자의 이름으로 쓴 기사는 이렇게 시작했다. “그는 많은 토픽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했다…. 차가운 눈매가 섬뜩하기도 했다. 때로는 그는 소리내 크게 웃었다.” 인터뷰 내용은 도조가 기대한대로 다음날 전세계 신문에 크게 실렸다.
그는 농가 창문으로 내다보며 기자들을 기다렸다. 혹시 대부대가 오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의 눈에 전날 인터뷰한 기자 한 명이 못보던 사진기자와 함께 다가왔다. 이들은 집에 들어오지 않고 거리를 두는 것이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아니나다를까. 두 대의 미군 차가 집 앞에서 급정거 했다. 무장한 미군 5명이 황급히 뛰어 내렸다. 그의 체포조가 분명했다. 그들 중 하나가 창문을 내다보는 도조를 발견했을 때 그는 창문을 열더니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내가 도조다.” 군인들은 재빨리 정문으로 들어갔다.
도조는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도 그는 창문을 닫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음 셔츠 단추를 풀고 집안에서도 항상 가지고 다닌 미제 권총을 가슴의 심장자리에 정확히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군인들이 안으로 닥치는 것과 거의 같은 순간이었다. ‘빵!’ 소리와 함께 총알이 심장을 관통했고 피가 홍수처럼 뿜어나왔다.
그의 자살은 계획대로 정확히 실행됐다. 그러나 한 가지가 틀렸다. 총알은 심장을 완전히 빗나갔다. 도조는 생명이 끊어지지 않았다.
존 윌퍼즈 중위는 총소리를 들었다. 25살의 정보장교는 계단을 올라가면서 발로 문을 차고 뛰어들었다. 맥아더 장군은 이날 아침 도조를 잡아올 것을 308 방첩부대에게 특별히 명령했고 윌퍼즈는 최선을 다해서 명령을 실행하려 했다. 그러므로 죽은 도조는 명령복종이 아니라 위반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거의 죽은 것처럼 보였고 실제로 죽어가고 있었다. 급사하지 않은 것은 그가 절박한 순간이어서 표적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계획상의 착오였다.
군인들은 그를 일으켜세워 의자에 앉힌 후 스프레이 응급약으로 출혈을 멈추려 했다. 그의 가슴은 미세하게 뛰었다. AP사진기자 찰리 고리는 때를 놓칠새라 셔터를 눌렀다. 프래쉬 벌브를 갈아끼우면서 한 방 한 방 쏘는 구식카메라였지만 귀중한 특종 사진이었다. 윌퍼즈 중위는 도조의 팔을 들고 상처를 천으로 감쌌다. 이때 도조는 ”빨리 죽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진심인지, 조크인지 모를 말이었다. 도조의 32구경 권총을 주워서 위험을 제거한 윌퍼즈는미친 듯 의사를 찾았다.
명령은 명령이다. 고로 도조는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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