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주간한국
신(神)에서 연합국 협조자로
히로히토 목숨구걸차 맥아더 방문
- 미디어2 (web@koreatimes.net)
- Apr 08 2021 10:52 AM
“설마 나를 죽이겠나?” 떨리는 가슴으로 깊이 머리숙여 정장 대신 셔츠차림 장군은 “Sir”자 붙이며 환영
▲ 판결을 듣고 있는 도조 히데키.
히로히토는 깊이 심호흡을 하니까 마음이 다소 안정됐다. 아니야, 나를 목매달아 죽이진 않을꺼야. 그는 맥아더에게 직접 사정해 보자고 마음 먹었다. 신(神)이라고 자칭하는 자의 목숨구걸이다. 그래서 그는 이날 아침 미국대사관까지 찾아온 것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사실은 용기다. 자기를 죽일 필요가 없다고 설득하는.
그가 만일 일주일 전에 맥아더를 방문하고 맥아더의 일본상륙을 환영했다면 그동안의 고뇌와 번민, 공포는 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왕은 맥아더에게 머리 숙이는 용기가 없었다. 그가 사는 왕궁은 도쿄의 다이치 세이메이 빌딩에 설치된 미국대사관 겸 맥아더본부의 바로 길 너머에 있다. 맥아더는 다이치 생명보험회사에게 “3일 안 이전”을 명령했다. 미군폭격에도 건재한 몇 안되는 건물 중 하나인 보험사 건물은 당당한 외양을 갖추었고 내부는 새롭게 단장됐다. 위엄있게 보여서 그의 본부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장군은 자기사무실을 6층에 잡았는데 창 너머로 왕궁이 빤히 내려다보였다.
히로히토 역시 창문을 열면 맥아더본부가 눈에 그대로 들어왔다. 그러므로 잊어버리려 해도 매일 장군을 기억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일왕은 맥아더가 첫 수를 둘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장군도 단순하지 않았다. 그가 일왕을 방문하는 것은 그가 일왕 아래에 있음을 보여준다고 판단하고 그 반대가 되기를 원했다. 즉 일왕의 방문을 기다린 것이다.
맥아더는 일왕과의 회합 장소는 반드시 대사관이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그는 모든 국민이 알아보는 일왕의 롤스로이스 차가 맥아더 거주지로 들어오는 것을 도쿄사람들이 똑똑히 보도록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날 아침 일왕은 왕궁의 사쿠라다 문을 나와 처절하게 파괴된 거리를 따라 남향했다. 그가 탄 차 뒤로 왕궁직원들이 탄 검정색 메르세데즈 벤츠 3대가 따라왔다. 운전시간은 10분 미만. 지금 긴장한 일왕에겐 그들이 뒤따라 오는 지 아닌 지는 관심 밖이었다.
검정 연미복, 높은 모자(톱햇), 반짝반짝하게 닦은 구두를 신은 히로히토는 대사관 정문계단을 무거운 마음으로 올라갔다. 미육군 장교 2명이 경례를 올린 후 그의 모자를 받으려고 다가섰을 때 그는 몸을 움찔했다. 그는 신민들이 그의 개인물품에 손대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신 것을 아주 환영합니다, 각하!”(“You are very, very welcome, Sir!”)
맥아더는 그가 기다리는 방으로 걸어들어가며 큰 소리로 인사를 건냈다. 얼굴에는 미소마저 띄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잡으려 했다. 그렇지만 5성 장군의 정장이 아니라 평상시 입는 카키색 셔츠 군복엔 훈장도 달지 않았다. 일부러 무례하게 보인 것인가. 그러나 장군은 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고 히로히토는 고개를 숙이면서 절을 했다. 맥아더가 내민 손은 그의 머리 위에서 멋적게 머물렀다. 일왕은 절을 계속하다가 자기 손을 위로 올려 장군의 손을 잡았다.
잠시 주저하다가 맥아더는 그와 통역원을 사무실로 안내했다. 두 사람은 40분간 이야기를 나눴고 그동안 히로히토는 전쟁을 일으킨 것을 사과했다. 장군은 대화 중의 사과를 그러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통치하는한 일왕이 사과하든 말든 관계 없었다. 이미 항복문서에 서명하지 않았나.
이날 맞선은 수년간 두사람이 가진 11번 중 첫 번 째였으나 그래도 이날 만남이 가장 중요했다. 단순한 이 회합중 맥아더는 앞으로 일본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일왕의 협력이 중요함을 분명히 밝혔다. 그를 목매 죽이기는커녕 맥아더에게는 그가 필요했던 것이다.
일왕 자신이 사죄했다는 사실은 그가 1급 전범이란 뜻을 본인이 자백한 것이지만 맥아더는 그가 차갑고 더럽고 좁은 감방에 가지 않도록, 그래서 그가 목에 올가미가 닿는 느낌을 영원히 맛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먹었다.
▲ 맥아더와 히로히토가 처음 만난 1945년 9월 27일 촬영됐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사진으로 남았다.
대화가 끝나자 맥아더의 개인 사진기사가 들어왔다. 그는 6개월 전 장군이 발목까지 적시는 바닷물을 휘적이며 필리핀에 돌아오는 유명한 장면을 찍은 개타노 페일레이스 대위였다. 이미 유명해진 대위는 이제 또 하나의 역사적인 장면을 찍는 기회를 부여받은 행운을 얻는 것이다. 그는 장군과 일왕이 책상 앞에 나란히 선 장면을 3장 찍었다. 그런데 사진 2장을 보니까 장군은 눈을 감았고 히로히토는 하품하고 있었다. 마지막 한 장은 흠이 없었다. 이 사진은 일본인들에게 일왕이 더 이상 일본통치자가 아님을 영원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키 6피트의 장군은 히로히토에 비하면 높은 탑과 같았다. 맥아더는 자기가 주인이고 왼쪽 옆의 작은 사람은 별 볼 일 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이다. 옆 사람은 딱딱하게 차렷자세인데 맥아더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손은 뒷짐을 지고 팔굽은 보통 미국관광객처럼 옆으로 튀어나왔다. 이 같은 메시지는 전세계 언론을 통해 크고 분명하게 전해졌다. 일본국민들은 자기들의 지배자로 나선 외국인을 처음 보았고 자기들이 신으로 모시는 히로히토와의 관계를 사진으로 확인했다.
예상대로 일본 국민들은 몹시 놀랐다.
3개월 후, 46년 1월 1일 히로히토는 맥아더의 권유에 따라 자기는 신이 아니고 그저 사람일 뿐임을 인정하고 모든 신(神)적 자격을 공개적으로 끊어버렸다.
이것은 일본통치자는 신적 존재라는 사실이 허위임을 보여주는 사건이었고 아시아 전역에서 그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수백만 전사자들에게는 너무 늦은 오류 시정이었다.
46년 5월3일 도쿄법정에서는 국제군사재판이 열렸고 전범기소장이 낭독됐다.
‘도쿄 트라이얼스(Tokyo Trials)’는 참전국 판사들이 검사들이 제시한 전범들에 대한 기소이유를 검토, 판단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인도 판사 라다비노드 팔은 혼자서 “이 재판은 오만한 연합국들이 패배한 일본에 가한 복수에 불과하다”고 반대했으나 권위적인 재판과 판결은 7명 1급 전범으로 사형, 16명 종신징역, 2명 단기 복역이었다.
히데키 도조 역시 기소된 전범중의 한 명이었다. 그가 미군에 잡히기 직전 자살한다고 자신의 가슴에 총을 쐈을 때 존 윌퍼즈 소위의 재빠른 행동으로 의사가 도착했으나 그는 치료를 거부했다. 자살 시도자의 의견존중 때문이었다. 윌퍼즈는 부리나케 다른 의사를 찾았다. 다행히 의사가 나타나 그를 응급처치, 생명을 살려놓았다. 환자 본인이 원하지 않은 일을 한 것이다. 병원에서 생명을 되찾은 이후 그는 도쿄 스가모형무소의 독방에 들어갔고 24시간 감시를 받았다. 외부와 접촉은 불가능한 참기 어려운 독방형벌이었다.
죽지 못하고 살아난 도조는 독방에 감금돼
의치엔 ‘진주만 기억하라’ 영원히 새겨져
재판 중 도조가 피고석에 앉아있는데 피고석의 일본 민간인 피고는 도조의 뒷통수를 손바닥으로 두번이나 쳤다. 정신이상 행위로 무죄판결을 받으려는 수작인 것이 곧 드러났다. 재판은 도조에게 불길한 예감으로 다가왔지만 그는 이런 경험이 오히려 재밌다고 크게 웃었다.
도조는 몰랐지만 또 하나의 웃기는 사건이 있었다. 그는 의치를 했고 곧 죽을 사람이지만 새 것이 필요했다. 그의 요청에 미국측은 기쁘게 응했다. 의사들은 의치에 “진주만을 기억하라”는 말을 모르스 부호 (Morse Code)로 새겨넣었다. 맨눈으로는 읽을 수 없는 크기다. ‘도조에겐 2차대전이 영원히 끝날 수 없다. 따라서 그는 그 죄를 죽어서도 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늦은 밤 형무소 독방에 누워서 새 의치를 끼워보면서 “그런데 왜 매끄러워야 할 이빨 표면에 이런 울퉁불퉁한 흠이 있지?”라고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는 죽을 때까지 몰랐다.
[도쿄재판=1급 전범혐의로 기소된 28인중 25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군 장성, 외교관, 일반 군인, 아시아/태평양상의 포로수용소 근무자들이었다. 영국은 버마-시암철도 건설에서 수천명을 죽인 책임자 처벌에 더욱 신경을 썼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 참조) 이밖에 일본군 4,300명이 성폭행, 포로학대, 살인 및 학살 등의 혐의로 유죄, 이들 중 1천 명은 사형, 나머지는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그후 복역자 중 상당수는 감형됐다.]
[계속]
www.koreatimes.net/주간한국
미디어2 (web@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