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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言)을 묻다
소설가 김외숙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Apr 19 2021 10:26 AM
유난히 마음이 개운치 않은 날이 있다.
말을 많이 한 날이다.
하고자 한 말의 핵심은 단어 하나일 수도 있는데 말에다 말들을 얹은 날이다.
가만히 입 다물고 있어도 될 일에 목소리까지 높인 날이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 후엔 그래서 늘 한 사나흘 뼈저린 후회를 한다.
그래서 기도 중의 하나가 ‘말이 많다 싶을 때는 입을 좀 다물게 해 주소서.’인데
내 입에서 나오는 말 하나도 스스로 자제를 못하니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다.
지난 한 해 동안 사람들은 타의 또는 자의적으로 사회생활을 절제해야 했다. 우선 강제로
활동 반경을 좁혀놓고 사람 간의 왕래를 막으니 절로 의기소침해져서 할 말도 삼키게 되고
말할 기회도 확연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라서 우리에 가둔다고 갇혀만 살지 않고 입마개를 씌운다고
속에다 눌러 참으며 살지는 않는다. 왕래를 막으니 가상공간을 만들어 그 속에서 만나 할
말은 다 하며 사는 것이다. 갇혔다가 가상공간에서나마 만나니 참았던 말까지 드러내느라
오히려 말이 경계를 넘어 난무한다.
어제 서울의 한 친구와 오랜만에 가상공간에서 만났다.
재작년 내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 만나고는 처음이었는데 대화 도중에 친구가 말했다, ‘외숙
아, 내가 참 미안하더라. 그때 내가 그런 말 해서’라는 것이었다.
그때, 이 친구가 뭐라고 말했더라,라고 급히 되돌아보는데 내 약한 기억력 탓인지 이 친
구와 주고받은 구체적인 대화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친구는 ‘내가 그때 그랬었
잖아’라며 자신이 한 말을 상기했지만 그러함에도 내가 그 친구와의 만남에서 언짢았던 기
억이라고는 도통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름 생각한 것이, ‘아, 그 날 친구가 말을 좀
많이 한 날이었나 보다. 그 말들 중 하나가 행여 내 마음을 상하게 했을까 봐 오래 끼고 있
었구나.’하는 것이었다. 내 경험을 통한 이해였다.
말의 무덤을 아시는가?
가서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말을 묻는 언총이란 것이 경상북도 예천 어딘가에 있다고 들었
다. 오래전에, 주민들이 예사로 주고받는 말이 서로 간의 마음에다 상처와 불화를 만들어
평화를 해치자 발단이 된 말들을 그릇에 담아 묻은 것이 말의 무덤, 언총이라고 이라고 한
단다.
과한 말이 짓는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안 선조들의 지혜롭고도 기지가 넘치는 해결방법이다.
후회를 품은 말은 무게 때문에 멀리 날지도 못하고 주로 가까운 사람의 가슴에 떨어진다.
가족의 가슴에 친구들의 마음에 박혀 상처를 만드는 것이다. 혀가 짓는 말의 독성이 듣는
사람, 뱉은 사람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지금 속에다 또 하나의 무덤을 파고 있다. 내 입술에서 날아가
남편 가슴을 찢으며 박혔을 그 한마디를 뽑아 묻어둘 말의 무덤이다.
“자꾸 잊어버리면 어떡해!”
오늘도 잊어버린, 하루에 세 번 복용해야 하는 약을 두고 기억을 잃어가는 남편에게 낸
짜증이었다. 그의 가슴에 떨어지기 전에 삼켰어야 한 말이었다.
내 가슴이 언총이다.
후회까지 함께 묻는 말의 공동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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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