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주간한국
꽃노년 명품 운전기사 ‘웨딩쇼퍼’를 아시나요?
사회적 기업 ‘더 쇼퍼’ 창업한 70세 노경환씨
- 미디어2 (web@koreatimes.net)
- May 04 2021 07:53 PM
노경환씨
한 지방 호텔의 총지배인을 마지막으로 노경환(70)씨가 호텔리어 경력 20년에 마침표를 찍은 건 9년 전이다. 돈이 아쉬웠고 무엇보다 젊었다. 그해가 가기 전 새로 찾은 직업은 대리운전 기사. 생각지 못한 험한 일도 여러 번 겪으며 견딘 3년 생활은 그에게 불현듯 시니어 창업으로 나아가는 혜안을 열어줬다. 그는 지금 결혼 날 신랑ㆍ신부의 이동을 품위 있게 책임지는 ‘웨딩쇼퍼’ 회사 사장님이다.
환갑에 은퇴, 일 안 할 이유 없다
61세에 은퇴를 하고 보니 일을 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호텔 생활 20년을 포함, 돈벌이를 한 세월만 30년이 넘는데 왜 노후자금이 없느냐 하는데, 아이들 결혼자금 신경 쓰느라 퇴직금은 손도 못 대고, 노후자금의 마지막 보루인 아파트 한 채 건사하는데도 적잖게 돈이 든다. 은퇴한 부모님들의 현실이다.
이런 저런 이유를 다 차치하더라도, 일을 안 하기엔 너무 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일을 하려고 하니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대리운전을 한다는 친구가 떠올랐다.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되니 다른 자격증이 없는 그에겐 안성맞춤인 듯했다. 친구에게 연락해 다짜고짜 물었다. “나도 대리운전 좀 해보려고. 어때?” 내심 응원을 기대했던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싸늘했다. “호텔 총지배인까지 하던 네가 대리운전을 할 수 있겠어?”였다.
오기에서 패기로, 시니어 창업 도전
처음엔 아내 말고는 누구에게도 대리운전 일을 한다는 사실을 숨겼지만 한 달이 지난 뒤엔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다. 계속 숨기고 살다간 자신의 존재가 너무도 작아질 것 같아서였다.
오기로 맞서며 시작한 일이라 쉽게 그만둘 수 없었지만, 아무리 술에 취했기로서니 손님이 대리운전 기사에게 욕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떠올린 방법은 깔끔한 정장 차림을 하는 것이었다. 의외로 호응이 좋았다. 스스로 품격을 지켜야 남들도 존중해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비슷한 또래의 대리운전 기사들과의 교류도 넓혔다. 상당수는 은퇴 전 ‘한가락’씩 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들과 함께라면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을 듯했다.
대리운전 3년차인 2014년, 아들이 결혼을 했다. 그런데 결혼식 당일 직접 운전해서 헤어샵, 결혼식장, 공항으로 이동할 거란 얘길 들었다. 아들에게 물었다. “요샌 친구들이 그런 거 안 해주니? 혹시 아버지 같은 노신사가 유니폼 갖춰 입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운전해주는 서비스가 생기면 젊은이들이 이용할까?” 처음에 갸우뚱하던 아들이 말했다. “아까 말한 사업 아이템, 생각해보니 괜찮은 것 같아요.”
그날부터 낮엔 사업계획서를 쓰고 밤엔 대리운전을 하는 강행군이 시작됐다. 번번이 창업 지원 사업에서 고배를 마시면서도 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제공하는 창업 교육 프로그램도 이수했다. 2016년 드디어 성남시의 창업 지원 사업 대상으로 선정됐다. 성남시에서 지원 받은 2,000만원은 창업 종잣돈이 됐다.
회사 이름은 ‘더 쇼퍼’라고 지었다. 원래 ‘쇼퍼(Chauffeur)’는 영국 왕실의 마부를 부르던 단어지만, 지금은 경호 의전 통역 등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을 일컫는다. ‘더 쇼퍼’가 현재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는 웨딩 쇼퍼(Wedding Chauffeur). 결혼하는 신랑ㆍ신부에게 격식을 갖춘 기사가 운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는 “대리운전 할 땐 한 달 내내 50~60만원 벌다가 요샌 주말만 일해서 300만원까지 번다”며 “돈도 돈이지만, 대리운전 할 땐 걱정만 하던 가족들에게 요즘엔 응원을 받으며 일한다는 사실이 더 뿌듯하다”고 말했다.
창업 선배로서 그는 “더 많은 시니어들이 자신이 가진 경험과 생각을 사회에서 다양하게 펼쳤으면 좋겠다”고 조언한다.
www.koreatimes.net/주간한국
미디어2 (web@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