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주간한국
완주 구이저수지 둘레길 (상)
그림 같은 봄날을 거닐다
- 미디어2 (web@koreatimes.net) --
- 11 May 2021 06:56 AM
경각산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 오르면 모악산 아래 구이면 소재지와 구이저수지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주에서 임실로 넘어가는 지방도로 고갯마루에서 걸으면 볼 수 있는 풍광이다.
전국의 소도시를 다녀 보면 ‘지방소멸’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사람은 늙고 마을은 낡아간다. 옛 건물을 현대적으로 개조해 복고 감성을 입힌 카페나 숙소가 더러 있지만, 마을 분위기를 바꿀 정도는 못 된다.
식당이나 카페가 밀집된 관광지를 빼면 한 번 가보라고 권하기가 민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완주 구이면은 여느 시골과 좀 다르다. 속절없이 낡아가는 골목 대신 시골답지 않은 세련됨이 눈길을 잡는다. 옛 마을 아래에 깔끔한 전원주택 단지가 들어서 있다.
무분별하게 산을 깎아내고 나 보란 듯 지은 서울 근교의 전원주택에 비하면 소담하고 푸근하다. 바로 앞에는 아담한 저수지가 있어서 눈이 맑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자극적인 요소라곤 계절마다 눈부신 자연뿐이다. 일상의 평화가 그림 같은 마을이다.
경각산과 모악산 사이 저수지 품은 마을
전주를 감싸고 있는 완주군은 전형적인 농촌이면서도 아주 시골은 아니다. 군 단위지만 인구는 김제나 남원시보다 많다. 전주의 남쪽에 위치한 구이면은 한옥마을에서 불과 12㎞ 떨어져 있다. 한적한 시골이면서 사실상 도시의 편리함을 두루 누릴 수 있는 거리다.
경각산에 오르면 모악산과 구이저수지 사이에 자리 잡은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파란 호수는 눈이 시리게 푸르고, 주변 산자락으로 번지는 봄 빛깔이 찬란하다. 오른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드넓은 평야 뒤로 멀리 전주 시내의 아파트 단지가 아련하게 보인다. 경각산은 높이(659m)에 비해 거저 오를 수 있는 산이다. 힘들게 정상까지 갈 필요가 없다. 임실로 넘어가는 749번 지방도로 불재 고갯마루에서 약 10분 만 걸으면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다. 능선을 깎고 인조잔디로 덮어 놓은 모양이 다소 거슬리지만, 발아래 펼쳐지는 전망은 넓고 시원하다.
구이(九耳)라는 지명은 경각산 바로 아래 구암마을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마을에 거북 형상의 커다란 바위가 있어 조선 중기 이래로 귀동, 귀암마을로도 불려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거북 귀(龜)’ 자가 획수가 복잡하고 쓰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아홉 구’로 고쳤다고 한다. 본뜻을 잃어버렸으니 구운 음식이라는 뜻으로 오해할 만도 하다. 인근 태실마을은 조선 8대 임금인 예종의 태실이 있었던 곳으로 예전부터 명당으로 소문나 있었다.
지역에서는 경각산을 아버지 산, 모악산을 어머니 산으로 부른다. 경각(鯨角)은 고래등에 뿔이 툭 튀어나온 것 같다는 의미다. 모나고 가파른 경각산보다 치마폭처럼 산세가 부드럽게 흘러내린 모악산이 아무래도 어머니 품처럼 푸근하다.
정상 아래 '쉰길바위'의 형상이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 같다고도 하고, 사방팔방으로 흘러내린 산줄기가 호남평야의 젖줄인 동진강과 만경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덧붙인다. 구이면은 모악산 치맛자락이 바닥에 끌리는 곳에 자리 잡았다. 마을 끝자락은 잔잔한 구이저수지와 닿아 있어 산마을이면서 호수마을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