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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닭 한마리
신경용 | 토론토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May 25 2021 04:04 PM

1.4 후퇴가 시작되자 인공치하 석 달 동안 하루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공포에 시달렸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인천으로 출장 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두 누님과 두 동생, 나까지, 다섯 남매를 이끌고 한 겨울에 피난길에 나섰다.
그 힘들었던 석달 동안 어머니는 잘 아는 사람의 가게 한구석에 재봉틀 한 대를 놓고 옷을 수선해주고 품값을 받아 다섯 남매의 입에 풀칠이라도 해보려고 애를 썼다. 서북청년단 단장을 지낸 아버지, 지원해서 국군이 된 형 때문에 공산정권이 언제 어머니를 잡으러 올는지 몰라 늘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 군인 비슷한 사람만 다가와도 어머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겁에 질리기가 일쑤였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일을 안 할 수도 없었다.
그럭저럭 그 참담했던 석 달을 무사히 넘기는가 싶던 어느 날 저녁, 빨치산 모자를 쓴 사람이 다발총을 메고 와서 어머니와 우리 동네 몇 사람을 어디론지 끌고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밤 어머니가 끌려갔던 비행장 넓은 벌판에서는 수 백 명의 아무 죄도 없는 양민들이 학살되었다. 어머니는 구사일생의 기적으로 학살을 면하고 살아 오셨다.
어머니는 이미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서 병색이 깊었지만 앉아서 죽느니 차라리 죽더라도 길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다섯 식구를 이끌고 피난길에 나섰다. 그해 겨울은 몹시 추웠고 우리는 가진 돈도 없었다. 작은 섬에 잠깐 몸을 피하고 있다가 천신만고 끝에 300여 명의 다른 피난민들과 함께 해군 경비정에 실려 목포항에 내려졌다.
목포에서는 학교 교실 바닥에 가마니를 깔아 놓고 급히 피난민 수용소를 만들었다. 수용소에서는 안남미라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푸석푸석한 쌀은 배급을 해서 주었지만 우리는 반찬을 장만할 돈이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며칠 있다가 경찰서 순경의 도움으로 나는 경찰서 급사가 되었다. 열세 살의 나이로 여섯 식구의 가장이 된 것이다. 내 월급으로 우리도 남들처럼 보란 듯이 쌀과 반찬을 사다 먹을 수 있었다. 여섯 달쯤 급사 일을 하고 있었을 때 부산으로 가셨던 아버지가 여러달 수소문 끝에 우리를 찾아오셨다. 나는 그날로 급사를 그만두고 학교로 갔다. 아버지를 만나기는 했지만 아버지도 돈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오셨다고 내가 갑자기 급사 일을 그만두는 바람에 한 달 치 월급을 미처 받지 못 한 채였다. 2만 원. 그때 우리 형편으로는 꽤 큰돈이었다. 나는 가끔 경찰서로 찾아가
그 월급을 달라고 졸랐다. 병약하신 중에도 오래 동안 맛 있는 음식을 잡수어 보신 적이없는 어머니는 얼마나 속이 허전하셨던지, “아, 닭이나 한 마리 고아먹었으면 좋겠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어서 나는 그 월급을 받으면 눈 딱 감고 어머니한테 닭을 한 마리 사다 드릴 작정이었다.
어느 날, 드디어 나는 그 돈을 받았다. 단숨에 어머니한테 달려가, “엄마, 나 돈 받았어. 그리고 닭 한 마리 사왔어” 라고 말씀드렸더니 얼굴에는 기쁜 빛이 가득하면서도, “원 저런. 쯧쯧. 그 돈을 쓸데가 얼마나 많은데 닭을 산단 말이냐?” 라고 하시면서 꾸중을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은 엄마한테 물어보고 사려고 닭은 아직 안 샀어” 라고 말씀드리며 그 돈을 다 드렸다. 아마 닭 서너 마리쯤은 살만 한 돈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한동안 그 돈은 쌀과 보리, 콩나물과 두부 등, 우리 식구가 먹고 사는데 꼭 필요한 것들을 사는데 썼겠지만 고등어 한 마리 마음 놓고 사 먹을 엄두를 못 내던 그때 닭은 물론 꿈도 꿀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 뒤 여섯 달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중증 폐결핵에 영양실조. 닭은커녕, 어머니는 병아리 한 마리 제대로 구경해 보실 기회도 없이 돌아가시고 말았다.
나는 70년이 지난 지금도 밀린 월급을 받았을 때, 눈 딱 감고 닭을 사다 드리지 못한 일이 너무 후회스러워 그 생각이 날 때마다 목이 메이고 가슴이 아프다. 그렇다. 아무리 후회해도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을 저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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