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기다리고 인내하라
민경숙의 교육칼럼 <9> 비평적 문해력 II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May 26 2021 03:55 PM
아이들의 바람직한 문해력 형성은 단순한 문자의 해독과 정보의 수용을 넘어 텍스트에 대한 보다 비평적인 재창조를 의미한다. 비평적이며 창의적인 문해력의 원활한 형성과 성장을 돕기 위해서 부모는 어떤 이해와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우선, 아이들의 읽기와 쓰기에 대한 지나친 칭찬 혹은 평가 절하는 불필요하다. 자녀의 읽기와 쓰기 활동에 대한 과도한 반응은 자칫 아이들로 하여금 문해 활동을 칭찬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시킬 수 있다. 또한 구태의연한 표현으로 이런 행동을 과대 포장하는 것은 - 예를 들면 “대단해! 우리 딸, 금방 박사 되겠네" - 아이들에게 심적 부담감까지 얹어줄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자녀의 문해력을 지나치게 과소 평가 – ‘도대체 왜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니?’ – 하는 것은 읽고 사고하는 작업의 즐거움과 자신감을 절하하는 누를 범할 수 있다. 'Read to Live' 라는 문구가 있듯이 읽는 것은 살아가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다. 읽고 쓰는 것의 목적을 단지 지식습득의 수단으로만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은 읽기와 쓰기를 통해서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이 만들어 내는 다채로운 문화의 내용을 이해하고 이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비평적 문해력은 기다림과 인내를 요구한다. 좋은 독서의 기술과 적절한 작문 활동은 분명 배움의 질과 속도를 빠르게 향상시킨다. 개방형 질문으로 상상력이 풍부한 반응을 독려하는 동시에, 핵심 아이디어를 재빠르게 알아채는 훈련을 하거나, 서론, 본론, 결론의 구성이 어우러진 글을 쓰도록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유익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일견 산만하고 복잡하게 진행되는 내러티브에서 주제를 파악하는 분석과 추론 능력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하는 논리적 글쓰기 능력은 하루 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주요한 사상, 관점,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아이들에게 엄청나게 많은 양의 독서를 하게 하거나 난해한 글을 읽게 하는 것은 비록 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유익한 일도 아니다. 교육학에 성숙주의(maturationism)라는 사조가 있다. 아이들은 몸이 충분히 자라 15세 정도가 되면 남자 아이들은 100미터 달리기를 15초에 주파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1학년 아이들에게 15초 안에 달리라고 요구하면 어떻게 될까? 열 다섯이 되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될 것을 왜 여덟 살 아이에게 하라고 강요하는가?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어려운 개념을 이해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사고할 수 있게 될 나이가 되면 쉽게 읽고 소화할 수 있는 책들을 어린 나이에 읽으라 요구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 아니다. 제인 어스튼(Jane Austen)의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같은 제 아무리 좋은 고전도 초등학생들에게 권할 필요가 없다.
창의적이며 비평적인 시각은 다양성, 즉 나와 생각이나 사물을 보는 관점이 다른 타인들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비평적 시각을 얻으려면 타인과의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 한 문화적 사건이나 글에 대한 타인들의 의견을 수렴하게 되면서 우리는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고 생각하지 못한 점을 생각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내 생각은 단순한 주관적인 견해를 넘어 타인들이 존중해 줄 수 있는 객관성을 확보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이슈나 책, 뉴스, 드라마 등이 다루고 있는 다양한 사안에 대해서 말하고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누리게 해 줄 분위기의 조성이 필요하다. 타인의 의견을 수렴하는 목적으로 '트리플 엔트리 저널'(triple entry journal)은 잘 알려진 학습 방식 중 하나다. 세로로 두 칸이 그려진 용지를 이용하여 텍스트에 대한 읽기가 끝나면 좌편에는 저자의 중심 내용을 요약하고 우편에는 나의 생각과 의견을 적는다. 이어서 파트너와 이를 교환하고 종이의 여백에 파트너는 자유로운 생각을 적을 수 있다. 적어도 세 명(텍스트저자, 학습자, 학습 파트너)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하여 트리플 엔트리 저널이라 이름 붙여진 이 방법은 열린 마음과 융통성 있는 태도로 타인의 생각을 수용하여 비평에 대한 인식의 수준을 높여준다. 그러니 접하게 하시라. 보게 하시라. 듣게 하시라. 그리고 말하게 하시라.
비평적 문해력의 발달을 돕기 위해 끝으로 제언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아주 평범한 사실이다. 무수히 많은 심리학자와 교육학자의 입을 통해서 검증되고 대중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법칙과도 같은 이야기이지만 실상 부모들이 가진 가장 취약점이 아닐까 싶다. '우리 엄마, 아빠는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해요,' 와 '우리 부모님은 자신들은 싫어하는 것을 내게만 하라고 하셔요.' 라고 말하는 것 사이에 아이들이 지각하는 이해와 결과의 양상은 극과 극에 달하지만 부모들이 감당해야 할 행위의 모범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다. 그렇다. 하루에 한 장 읽는 작은 실천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이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진정한 독자로의 전환을 부모들에게도 권면하고 싶다. 그러니 아이들에게만 요구하지 말고, 손수 많이 읽으시라(다독). 많이 생각하시라(다상량). 많이 쓰시라(다작).
·교육학 박사(토론토)
·교육컨설턴트
·한국 교원대·토론토대 대학원 졸업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