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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유적의 보고 경주 남산 (하)
발걸음마다 왕릉·불상·석탑... '신라박물관' 남산을 걷다
- 미디어2 (web@koreatimes.net) --
- 15 Jun 2021 10:44 PM
▲ 경주 남산 용장사터 삼층석탑. 평범한 숲길이 갑자기 낭떠러지로 바뀌는 바위 꼭대기에 세워져 있다.
암벽 낭떠러지에 홀연히 나타난 석탑과 석불
이곳부터 정상인 금오봉까지는 순탄한 능선길이다. 다소 펑퍼짐한 지형의 정상에는 표석이 하나 세워져 있을 뿐이다. 주변 전망도 나무에 가려져 있어 남산의 명성에 비하면 지극히 평범하다.
용장골로 내려가는 길 역시 동네 산길처럼 수더분하다. 임도처럼 넓게 닦인 내리막길을 걷다가 ‘용장마을’ 팻말을 따라 다시 등산로로 들어선다. 숲이 울창한 것도 아니고 경관이 빼어난 것도 아니어서 다소 지루하고 맨숭맨숭하다 싶을 때쯤, 평범한 흙길이 갑자기 암벽 낭떠러지로 변한다.
▲ 남산 용장사터 석조여래좌상. 보기 드물게 원형 좌대 위에 불상이 얹혀 있다. 터가 좁은 낭떠러지라 아슬아슬한 위치지만 불상은 왠지 안정감이 느껴진다.
▲ 삼불사 삼존불상은 미소가 아름다워 경주 여행 기념 엽서 사진에 자주 쓰인다.
거친 바위틈에 뿌리내린 소나무가 그림 같은 자태를 뽐낸다. 애국가에 등장하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가 어쩌면 이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고하게 선 소나무 뒤로 맞은편 산자락이 걸리고, 그 아래는 까마득한 계곡이다.
발 아래만 주시하며 조심스럽게 내려가는데 낭떠러지 끝에 매끈하고 새하얀 석탑 하나가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다. 뜻밖의 반전, 비현실적 풍경에 넋을 잃고 오도카니 서서 주변을 살핀다.
맞은편 고위봉 자락의 녹음은 짙어만 가고, 아득하니 펼쳐지는 들판도 푸르름을 더해가는데 삼층석탑만 홀로 말갛고 고고하다. 용장사터 삼층석탑이다. 자연석에 홈을 파고 탑을 세웠으니, 떠받히고 있는 바위봉우리 전체가 거대한 기단인 셈이다.
바로 아래의 석조여래좌상도 잠시 딴 세상에 발을 들인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3단의 원형 석좌 위에 곡예를 하듯 불상이 얹혀 있다.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안정감 있다. 머리가 없어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그윽하고 평화롭게 산 아래 들판을 내려다보고 있을 듯하다. 바로 옆 바위에는 연꽃 위에 가부좌를 튼 여래상이 새겨져 있다. 가사와 머리의 돋을새김이 섬세하다. 세 유적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다.
불상 아래 절터도 온전한 전각 하나 짓기 힘들 정도로 옹색하다. 집 지을 터가 부족하니 불상과 불탑이 자연스레 산으로 올라간 구조다. 남산의 절집이 대부분 이런 지경이었으니 결국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사찰이고 불국토였다 해도 틀리지 않을 듯하다.
▲ 경주 남산 서편 기슭의 포석정. 신라 왕실과 귀족의 풍류가 깃들어 있는 유적이다.
용장사터에서 내려가는 길도 가파르기는 한가지지만 암벽 대신 숲길이어서 걷기에는 한결 부드럽다. 이런 길을 약 500m 내려가면 드디어 계곡과 만나고, ‘설잠교’라 이름한 작은 다리가 나타난다.
‘설잠(雪岑)’은 조선 전기의 학자 김시습(1435~1493)의 법명이다. 생육신의 한 사람인 그는 단종의 폐위 소식을 듣고 읽던 책을 모두 불태운 뒤 만 20세에 방랑의 길을 떠났다. 수년간 전국의 명산대찰을 떠돌다가 30세에 이곳 용장사에 들어와 7년간 머물며 집필에 몰두했으니 대표적 저작이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다.
용장골은 큰길에서 아주 멀지는 않지만 계곡이 깊고 한갓진 편이다. 용장마을까지 내려오는 동안 물가에 앉아 쉴 만한 너럭바위가 더러 있는데, 요즘은 물이 적어 계곡의 정취를 제대로 맛보기는 어렵다.
용장마을에서 출발지인 삼릉 입구로 돌아올 때는 내남치안센터에서 시내버스(약 30~40분 간격)를 이용하면 된다. 삼릉과 함께 둘러볼 유적지로 미소가 천진한 삼불사 석조여래삼존입상, 신라 왕실의 별궁인 포석정이 있다. 임금과 신하가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며 풍류를 즐겼던 곳이자, 경애왕이 견훤의 공격을 받아 비극적 최후를 맞은 곳이기도 하다.
남산의 유적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사단법인 경주남산연구소’에서 매주 토ㆍ일요일 무료로 진행하는 답사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평일 답사는 홈페이지 예약자에 한해 유료로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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