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꽃과 시인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Jul 06 2021 09:28 AM
내가 조금 할 줄 아는 것 중에 오랜 연습 끝에 얻은 솜씨가 몇 있는데 머리 깎는 일은 그 중 하나다.
Niagara On The Lake에서 토론토까지 가 몇 번 머리 손질을 했었는데 왕복 4시간 여 걸리는 거리, 기다리는 시간, 그러니까 머리가 길 때마다 장거리를 오가려니 시간도 아깝고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어서 집에서 조금씩 자르기 시작한 것이 어언 열여덟 해 째다. 내 손으로 잘랐으니 모양이 오죽할까마는 머리 좀 더 잘 자른다고 해서 더 고와보일 나이도 아니어서 대충하고 사는 편이다.
머리 깎기에 웬만큼 익숙해진 나는 어느 날부터 남편의 머리까지 책임을 지게 되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발소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외숙, 귀는 자르지 마.’
겁이 많은 편인 그는 내가 가위를 들고 나서면 늘 어린아이가 된다. 그가 긴장하면 나까지 불안해져서 귀 근처에 가위가 다가가야 할 때는 극도로 신경을 쓴다.
그렇게 겁내는 사람을 달래고 얼러 머리를 깎고 돌아서면, 또 어느 사이에 자라서 나는 늘 한 며칠 그와 날짜를 타협해 다시 가위를 든다.
내일, 내일 하며 미룰수록 더 더부룩해지던 그의 머리를 미룬 숙제 바라보듯 하다가 이번엔 뜰에다 의자와 이발도구를 준비했다.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을 거야.”
그의 목에다 이발 보자기를 두르며 내가 말했다. 그는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고 있는 유월의 뜰에서 무릎을 덮는 이발 보자기를 두르고 아이가 되어 내 가위질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내 가위질이 시작되자 검은 것이라고는 한 올도 없는 그의 흰 머리카락이 눈꽃처럼 목화처럼 그의 등에 그의 어깨와 무릎에 사뿐사뿐 내려앉았다. 일단 가위질이 시작되면 나는 과감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잘려나간다고 애닮을 일도 없는 흰 머리카락 뭉치들에게 잘라서 미안하고 또 고마워하기도 한다. 시들어 가는 그의 몸 어느 부분에 아직은 생명력이 샘처럼 솟고 있었음을 눈으로 보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은 가위질이 필요한, 흐뭇하고도 눈물 나게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손톱도 깎아요, 아프게 안 할게.”
내킨 겸에 나는 손톱 깎기까지 내민다. 손톱은 주로 그 스스로 깎는데 어차피 꽃 속에 앉았으니 꽃향기에 취한 나의 서비스 차원이다.
또 자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머리카락을 잘랐듯이 손톱 또한 자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발톱도 깎을까?"
내 말에 그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래요, 그건 한 십 년 후에 깍지 뭐."
내가 인심을 써 한 십 년이라고 하면 마치 그의 눈앞에 와 얼쩡거리는 어두운 그림자의 부름으로부터 정말 한 십 년 유예받기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윽고 가위질에서, 손톱 깎기에서 벗어난 그는 아주 느긋한 미소로 꽃들을 바라본다.
'그래, 내가 다시 너희들 이름을 불러주마, 꽃이라고.'
평생, 지극히 높은 존재의 종으로 산 그는 이제 내 눈에 시인이다.
꽃을 꽃으로 부를 기회를 부여받은 시인
다른 기능 다 시들었음에도 아직은 하얀 머리카락을 자라게 하고 손발톱을 자라게 하는 방울방울 떨어지는 생명수를 허락받았음에, 올 해도 꽃을 꽃이라 부를 수 있음에,
그는,
속으로는 울지 모른다.
소설가 김외숙
나이아가라 온더레이크 거주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전체 댓글
손용상 ( ysson06**@gmail.com )
Sep, 05, 12:28 AM꽃밭에서 이발보를 두른 두 커플의 그림이 머리에 그려지네요. 멋진 외숙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