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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꽃은 피는데…
박면순 | 한국문협회원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Aug 10 2021 11:23 AM

토요일 이른 아침. 매일 같은 시간의 산책이지만 토요일 아침 6시 반은 유독 이른 아침으로 느껴진다. 이날만큼은 너나 할 것 없이 느긋한 잠에 취해 있으니 사위 만물도 덩달아 늦은 기지개를 켜며 깨어 나는 듯하다. 오늘은 안개비마저 내리니 더욱 어둑하고 고요하다.
운동화 뒤축이 채 발에 끼이기도 전에 닿게 되는 집 옆의 리쏨 파크(Lissom Park).
넓적한 직사각형 공원에는 무섭게 짙어 가는 7월의 잔디가 짙푸른 양탄자를 깔았고 어둑하게 다가오는 동네 어귀도 온통 초록 일색인데, 까마득히 높은 첨탑의 종소리처럼 안개비가 흩어져 내리니 마치 깊은 바다 속에 잠긴 듯하다. 이웃집 담벼락에는 끝 간데없이 타고 오르는 담쟁이 덩굴이 숨 고를 틈도 없이 강행군 중인데 문득 이들을 비집고 불꽃처럼 피어난 꽃이 눈길을 끈다.
막 먼동을 밝혀 오는 햇살 닮은 다홍색 꽃이다.
도톰한 입술을 닮은 꽃잎에 빨강, 주황색 루즈를 맵시 있게 바르고 노란 꽃술을 길게 내어 밀어 나비며 벌을 유혹하는 어찌 보면 뇌쇄적으로도 보이는 꽃, 능소화이다.
Chinese trumpet vine이라는 이름처럼 꼬마들이 ‘따따따 주먹손으로 따따따 나팔 불어요!’ 노래 부르며 행진하는 듯 앙증맞은 주홍색 트렘펫들이 덩굴마다 줄줄이 달려있다.
한국에서는 예전에 양반 꽃이라 불리며 상놈이 심었다가는 곤장까지 맞았다는 꽃이지만 이젠 시골집 마당이나 담벼락 등 어디서나 볼 수 있고 특히 서울에서는 한강변 옹벽에 집중적으로 식재를 하여 여름 철 내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짙은 녹색 바탕 위 붉은 색 꽃의 조화가 원색의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마치 고갱의 거대한 캔버스를 세워 놓은 듯하다.
코로나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한국에 갈 엄두도 못 내고 있던 차에 동네 어귀에서 이 꽃을 보게 되니 여간 반갑지 않다. 아직 햇볕을 덜 받아서인지 철이 좀 일러서인지 한국산 보다는 꽃대롱이 작고 길쭉해 보이는데 붉은 입술 연지가 유난히 진하다.
능소화는 하늘을 뜻하는 소(霄)자에 능가할 능(凌)자를 써서 높은 하늘을 향해 웅비하는 기상을 가졌다 하여 양반의 호연지기를 대변한다 하였고, 꽃이 한창일 때 시든 모습을 보이지 않고 툭하고 떨어지니 시류에 야합하지 않는 양반의 품격을 말하였고, 덩굴조차도 직벽을 타는 습성이 있어 갈지(之) 자로 아무데나 달라붙는 담쟁이나 환삼덩굴 따위와는 결이 다르니 양반의 결기를 나타낸다 하였다. 실제로 태풍이 할퀴고 간 한강변 옹벽 밑에는 세찬 비바람을 이기지 못한 능소화들이 10미터는 족히 되는 꼿꼿한 줄기 채로 나자빠져 있곤 하다.
꽃은 기품이 있으며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 모습에서 선비들은 기개와 자신감, 동경을 읊었고 이해인 시인은 ‘능소화 연가’에서 구도자의 님을 향한 경건함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같은 꽃을 놓고 입술 연지 어쩌구 하면서 섹시해 보인다며 한창을 어루만지고 있는 나는 천생 상놈임이 분명하다!
양반꽃을 능멸한 죄는 치도곤이 분명할 진대 캐나다에서 그리 흔하지 않은 꽃을 보며 감상이 길어지는 것은 사실 양반 꽃이라는 이름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좋은 꽃 하나를 높고 그에 품격을 입히고 가까이 두며 조신(操身)하고자 했던 양반이 조선시대에는
있었다 치고, 지금은 과연 양반이라 할 수 있는 양반다운 양반(위정자)이 있을까?
수시로 말 바꾸고 자리 탓하며 뛰쳐나가고 세력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그 세력이란 것도 툭하면 이름마저 바꾸며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세상을 다스릴 장구한 계책 없이 날마다 임시방편만 꾀하여 민심을 순종시킬 수 있다고 믿고 그 민심조차 네편 내편으로 갈라 놓으니 제대로 된 위정자들이라 할 수 있을까?
사소한 꽃 하나를 놓고 그에 허세를 입히고 꼬투리 잡아 곤장질이나 했던 껍데기 양반도 조선시대에 있었던 것처럼, 권세만을 탐하며 수신제가(修身齊家)도 안된 자들이 평천하(平天下)를 다투는 것이 대선을 7개월 앞둔 현재의 대한민국이 아니가? 제대로 된 인물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모름지기 나라를 다스리려면 가장 먼저 사물의 이치를 파악하여 지혜에 이르러야 하고 지혜를 얻었으면 뜻이 정성스러워야 되고 뜻이 정성스러운 후에는 마음이 바르게 되어야 하고 마음이 바르게 된 이후에는 몸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히 한 후에 세상에 나오라고 하였다.
옛날 양반들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을 大學, 經 1장에 나오는 8조목인데 지금의 한국 위정자들에게는 기대하지도 않지만 다만 한번이라도 양반의 호연지기나 품격에 대하여 생각해 보길 바란다. 여의도를 오가며 한강변에 들러 꼿꼿이 직벽을 오르는 양반꽃도 좀 보고, 청와대를 오갈 때 북촌에 들러 왜 양반꽃이 그 동네에 유난히 많은지를 되새겨보고...

박면순 | 한국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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