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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제5계절’ <7>
컴퓨터 유감...故 김주은 | 주부·2005년 별세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Aug 13 2021 04:19 PM

<1990년 7월9일 게재>
언젠가 은행에서 컴퓨터가 작동을 하지않는 바람에 현찰을 찾고 싶어하는 손님과 그의 잔고가 얼마인지 알아볼 수 없는 은행원이 전전긍긍하는 것을 보았다.
시드니 셀던이 쓴 소설 중 하나에 수사관이 스위스에 있는 국제컴퓨터를 통해 용의자의 행적을 추적하는데 그가 어느 나라, 어느 백화점에서 언제 등산화를 샀다는 기록으로 수사망을 좁히는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렸을 때 실종된 아이의 사진으로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은 이러할 것이라는 추측을 해내는 것도 컴퓨터이다.
얼마 전에 새로 배달된 남편의 크레딧 카드는 서너 개의 카드를 하나로 통일한 것이라고 했다. 모든 기업체가 컴퓨터화 된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단 하나의 카드로 상거래가 이루어지고, 화폐가 필요 없는 사회가 올지도 모른다.
아무튼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의반 타의반으로 컴퓨터를 사용하기도 하고, 또 그것이 의해 움직이기도 한다.
내 아이의 중학교 수학교과서 제일 첫 장에 나오는 것이 컴퓨터의 이해이다. 그것은 이미 컴퓨터가 필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1학년인 큰 아이는 숙제를 컴퓨터로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내가 교단에 섰던 15년 전에 단어시험으로 아이들을 닦달하던 내가 무색하게 컴퓨터는 틀린 단어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 그런 컴퓨터 앞에서 남편과 아이들은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용어로 이것저것 이야기한다. 컴퓨터 용어이다.
언젠가 큰 아이가 가르쳐준 “엄마가 자동차 발동 안 걸릴 때 발로 자동차 바퀴 가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도스(Dos) 가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하고 아마도 가장 실용적일 컴퓨터 용어다.
남편은 컴퓨터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크레딧 카드 없이, 접시 닦는 기계 없이, 지금까지 살아온 그 이상하고 불편한 고집을 고수하는 중이다.
아무튼 컴퓨터를 알면 알수록 불편해진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지난번 정전으로 컴퓨터에 저장했던 숙제를 몽땅 잃어버린 바람에 빈손으로 등교한 아이는 촛불 아래서 숙제를 마칠 수 있었던 나와는 전혀 다른 세대임은 말할 것도 없다.
얼마 전 개발한 수퍼마켓의 쇼핑카트에 달린 컴퓨터는 단추만 누르면 본인이 원하는 품목이 어느 진열대 있다고 화면에서 나온다고 한다. 시간의 낭비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목적이라지만 물건 사러 가서 이것저것 보는 것을 더 즐기는 내게는 마음 불편한 이야기다. 아마 그런 컴퓨터가 우리 집에 있다면 내가 아니면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짝짝이 양말, 가위, 스카치테이프, 고무줄, 쓸만한 펜, 그런 것들을 “글쎄, 내가 없으면 어쩌려구…"라는 공치사를 듣지 않고도 단추 하나면 어디에 있다고 재까닥 알려주리라.
컴퓨터가 과학, 의학 분야로 공헌하고 있는 정도는 이미 사람의 상상과 능력을 초월하고 있다. 남편은 컴퓨터는 거계일 뿐이고 사람이 조종하는 것이라고 노상 설명하지만 자신들의 발명심에 도취한 사람들이 컴퓨터에 감정을 집어넣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겠는가?

故 김주은 | 주부·2005년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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