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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추억 간직한 골목 (상)
(한국편)- 인천 수봉산 둘레 마실길
- 미디어2 (web@koreatimes.net) --
- 30 Aug 2021 01:44 PM
반백년 역사의 방안갓 . 빨간 굴뚝 목욕탕...
▲ 인천 미추홀구 수봉산 둘레 마실길 아리마을벽화골목 모습
▲ 수봉산 둘레 마실길에 자리한 편의점과 넝쿨 식물로 덮여있는 2층.
슈퍼 앞 의자에 앉아 부채질로 더위를 식히는 어르신들. 두 사람이 마주 지나기 어려운 좁은 골목과 가파른 계단.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넝쿨과 그 아래 놓인 작은 화분들. 빨갛고 파란 기와 사이로 보이는 회색 슬레이트 지붕. 초록색 방수 페인트를 칠한 옥상, 그 위에서 말라가는 고추들. 간판 없는 가게와 목욕탕 굴뚝.
인천 미추홀구 복판의 수봉산 자락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수봉산은 해발 104m 나지막한 산. 그 아래 비탈진 땅에 키가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피란민들이 흘러 들어오고 일자리를 찾아 몰려온 노동자들이 정착하면서 만들어진 마을에는 옛것과 새것이 공존한다. 사람과 화물이 오가는 인천항과 경인고속도로, 수도권 전철 1호선이 가까워 많은 것들이 생사를 반복했다.
주안역에서 남인천역까지 주한미군 화물을 실어나른 주인선, 80·90년대 인천에서 유년기를 보낸 이들에겐 '롯데월드'와 '에버랜드'가 부럽지 않았던 수봉놀이동산, 인천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인 AID아파트는 이제 흔적만 남았다.
▲ 주인공원의 벽화
1972년 문을 연 제물포시장과 붉은 벽돌에 흰색 목욕탕 표시가 선명한 옛 양지탕 굴뚝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물포시장의 이름 없는 두부 가게, 반백년 역사의 방앗간, 쉬어 가라고 빨간색 의자를 내논 의상실, 대를 이어온 문구점 등은 아직도 현역이다.
창작자들을 위한 공간인 '창작실험실 수봉정류장', 지역 예술가들은 지난해 이같은 흔적과 장소, 공간, 사람을 하나로 엮는 작업을 벌였다. 걷고 싶은 길 '수봉산 둘레 마실길'을 만든 것이다. 숭의4동과 용현1·4동의 얘기가 담겨 있는 자료집과 지도를 펴내고, 길 곳곳에 이정표도 설치했다.
추억과 자연이 어우러진 산책로 '마실길'은 3권역으로 구성됐다. 1권역은 숭의4동 마실길로, 주인공원부터 수봉영산마을까지 4.6㎞ 구간이다. 다 걷는 데 3시간 정도 걸린다. 1호선 제물포역 1번 출구를 나와 차도를 하나 건너면 숭의4동 마실길이 시작되는 주인공원이다.
주인공원은 주인선 폐선 구간에 1997년부터 2005년까지 단계적으로 조성됐다. 주안역과 남인천역을 연결한 길이 3.8㎞의 주인선은 1985년까지 미군 화물을 실어 날랐다. 인천의 징병 대상자들을 논산훈련소까지 나르기도 했다. 1994년 공식 폐선됐지만, 교량과 침목을 활용해 만든 길 등 그 흔적은 공원에 남아있다.
▲ 인천 제물포시장 지난달 18일 거의 방치돼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 수봉영산마을 타일계단.
주인공원에 들어서면 특이한 구조의 2층집을 만나다. 소설 '톰 소여의 모험'에 나오는 오두막처럼 보인다고 해서 '톰 소여의 오두막'이라고 불린다. 과거 자동차 정비 공장이었으나 지금은 가정집으로 쓰인다.
주인공원과 주택가 경계가 되는 담벼락에는 달리는 증기기관차 등 벽화가 그려져 있다. 폐선 구간에 조성돼 좁고 긴 형태의 야외 갤러리가 있어 그림도 감상할 수 있다.
주인공원을 벗어나 걷다 보면 카페와 넝쿨로 덮여 있는 편의점이 나온다. 이 곳을 지나면 넓은 공터를 살구색 건물이 'ㅁ'자형 건물도 둘러싸고 있는 제물포시장이 나온다. 제물포시장은 한때 점포가 120여개에 이를 정도로 호황을 누렸지만 1990대를 들어 쇠락했다. 2003년 재개발 사업시행인가를 받았으나 좌절됐다. 현재는 두부가게, 방앗간 등이 있는 일부분을 제외하고 폐허가 된 채 방치되고 있다. 특유의 분위기로 영화 '신세계', '써니'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배경이 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