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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엘 콘도르( El Co'ndor)' - (19)
김외숙 소설가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Sep 21 2021 10:21 AM
8. 수다에 휘둘려
아직 봄이라 부르고 싶은데 여름이 무례한 점령군처럼 봄을 젖히고 자꾸만 앞질러 땅을 밟으려 했다. 언제 긴 겨울이, 발목을 덮은 눈이 있었으며 언제 나목의 시간이 있었느냐는 듯이 성급한 여름은 정오의 열기를 동원해 움츠리고 있던 것들을 충동질했다, 어서 꽃 피고 어서 잎 무성하고 어서 열매 맺으라고.
잔디는 유난히 더위를 탔다. 한겨울 눈 속에서도 초록인 잔디가 여름 더위엔 예민했다. 며칠 가물면 누렇게 마르다가 한줄기 소나기에 금방 초록으로 돌아왔다.
겨울의 퇴장을 가장 먼저 알리는 소리 중의 하나가 잔디 깎기 기계 소음이었다. 추위에 성장을 멈췄던 잔디가 햇빛을 받아 더벅머리가 되면 겨우내 마음껏 게을렀던 사람들은 잔디 깎기 기계부터 가동해야 한다. 이웃의 잔디가 어느 날부터 오래 미룬 목욕에 가위까지 지나간 아이 머리처럼 말끔하면 다른 이웃도 몰라라 할 수 없다. 게으르다고 눈총 받지 않으려면 한 주에 한 번씩은 깎아줘야 뜰이 말쑥하고 집이 단정해진다.
날씨가 더워지면 잔디 깎기 기계는 한더위를 피한 이른 아침부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정오의 태양보다 무례하다. 고요한 동네가 매일 소음에 시달려도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없으니 아, 우리도 잔디 깎아야겠구나, 하고 덮고 갈 수밖에 없다. 깎아줘도 돌아서면 자라는 잔디처럼 봄꽃 지나간 자리에 열매 매단 과수들은 햇빛에 과즙 달이느라 소리 없이 분주하고 사람들은 겁도 없이 노출한 채 내리쬐는 햇빛 아래서 걷거나 자전거를 탄다. 해저물녘엔 삼삼오오 모여 고기를 구우며 와인 잔을 기울이니 사람들에게 길고 깊었던 겨울은 다만 잊혀 진 계절일 뿐이다.
땅이 잔디 깎기 기계 소음에 시달릴 때 호수, 온타리오는 탈 것의 소리에 휘둘렸다. 춥고 음산한 겨울을 난 호수는 오히려 탈것들의 소음을 기다렸을 런지도 모른다. 이른 아침안개를 가르며 낚시에 나서는 통통배의 모터 소리, 삼각돛을 올리고 우아한 자태로 나서서 낮부터 해저물녘 시간을 즐기는 세일보트 속의 와인 잔을 든 사람들의 웃음소리까지 겨우내 호수가 기다린 소리였을 것이다. 호수는 스스로 호수이기보다 품은 물고기들과 물새들과 사람들의 탈 것, 내려다보는 하늘 빛깔과 어우러지면서 비로소 완성된다. 그리고 소음으로, 그 품에서 마음껏 질주하는 사람들로, 더운 한 때의 축제를 즐긴다.
호수가 있고 과실과 와인이 있는 동네,
동네사람들에게 여름은 넘쳐서 신나는 축제의 계절이었다.
여름 들면서 가슴팍의 무성하게 자란 잎들을 훑어주자 포도넝쿨의 품에서 어미 소 유방처럼 쳐진 포도송이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가리고 있던 잎들을 걷어냈으니 숨어 있던 유방들은 이제부터 햇빛 품에서 탱글탱글 마음껏 단 즙의 젖꼭지를 불릴 거였다.
그렇게 익은 포도는 대부분 와인이 되지만 더러는 테이블 그레이프 즉, 과일로 먹도록 식탁에 오르기도 했다.
‘날씨에 큰 변동만 없다면 풍작일 것 같아. 아주 실해.’
아버지는 농장에서 고랑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포도가 여물어 가는 과정을 보기를 좋아하셨다.
아버지의 성품은 낙천적이어서 눈이 많이 오면 비달 포도가 단맛들이기 좋다고 좋아하고, 비가 오면 과수에 필요한 물이라고 좋아하셨다. 여름 가뭄이 길면 바다 같은 온타리오 호수가 눈앞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하고 바람이 불면 포도나무들이 저들끼리 결속해 더 실해진다고 좋아하셨다. 모든 계절, 모든 현상을 과일 농사와 연결 지어 그것도 다 유익하다며 긍정적으로 여기시니 아버지의 농장과 와이너리는 더 번창하는지도 몰랐다.
‘수아 출산도 앞두고 있고 첫 포도 수확도 해야 하고, 여간 바쁘지 않을 것 같아.’
수아의 산달이 가까워질수록 어머니의 마음도 덩달아 바빠 보였다.
어머니는 이미 만들어 둔 기저귀를 빨아 햇볕에 잘 말려 개켜놓았고 아기 배냇저고리며 이불은 이미 다 준비해 두었다. 어머니는 손쉽게 살 수 있는 종이 기저귀를 두고도 천을 사 와 손수 만드셨다.
어머니는 일을 만드시는 분이었다, 그것도 행복하게.
나는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수아의 부른 배를 바라보고 또 브라이언을 대하게 되었다. 내 속에서 일던 못 견디겠던, 그래서 떠나야 한다고 작정한 그 심정을 내려놓은 듯, 그래서 한 발 물러나서 바라보게 된 것은 아마도 그 새벽의 이별 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속의 뭉쳐진 것들, 끌어안은 채 억지로 이해해야 했고 여상하게 말하고 웃어야 했던 그 고문 같던 일상, 한 번은 쏟아 내고 싶던 그것을 그 깊은 새벽에 퍼 올려 발산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일어나면 커피부터 내려놓고는 어머니와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브라이언이 커피와 토스트로 아침을 마치려면 어머니는 늘 못마땅해 하셨다. 그것이 장정에게 영양이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토스트에 우유며 계란 프라이, 베이컨을 과일과 함께 식탁에 올리셨다. 때로는 오트밀로 죽을 만들어 우유와 브라운 설탕을 끼얹고 블루베리를 더해 아침을 대신하기도 했다. 심플한 아침 식단이었다.
‘엄마는 아직도 내 키가 더 자라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
어머니의 요구에 마지못해 우유를 마시며 브라이언은 아이 같은 불평을 하곤 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늘 브라이언이 어머니의 말씀을 세우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코리아에서 온 후부터 브라이언은 더 많이 웃고 특히 어머니에게 더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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