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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엘 콘도르( El Co'ndor)' - (20)
김외숙 소설가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Sep 22 2021 10:24 AM
다정한 대화와 웃음소리가 있는 일상의 평화는 그렇게 한여름 햇살처럼 집안에 충만했다.
“오늘 모임에 애나가 나랑 가줄 수 있겠니?”
아침 식탁에서 어머니가 날 바라보며 말하셨다. 어머니의 모임엔 주로 손수 운전하시거나 나도 가끔 운전으로 어머니와 동행을 했다. 부인들의 모임이라 조심스럽고 재미는 없지만 나는 기꺼이 어머니를 따랐다.
운전을 이유로 모임에 동참하노라면 부인들 모임에서 하고 있는 봉사활동 등, 그 사회에 대한 소소한 정보들을 어깨너머로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인들이 주고받는 정보는 남편들의 와이너리 운영에 직 간접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속에는 알게 모르게 시기가 있었고 비교와 경쟁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품위가 있었고 나름으로 그어놓은 배타적인 선도 존재했다. 동종의 비즈니스에 남편들은 실질적으로, 부인들은 그들끼리의 대화로 참여했다. 남편들이 부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으니 결국 부인들도 간접적으로 비즈니스에 동참하는 셈이었다. 그래서 부인들의 정기적인 모임은 각자에게 중요했다.
화장을 정성껏 하고 어깨를 약간 덮은 연 푸른 원피스 차림을 한 어머니는 살림을 하고 정원에 엎드려 화초를 돌보는 여느 주부의 모습이 아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에 나갈 때마다 어머니는 우아한 귀부인이었다.
내가 운전해 간 곳은 골프클럽 레스토랑이었다.
온타리오 호수는, 북미대륙의 내륙에 위치한 오대호의 가장 큰 호수, 슈피리어에서 흘러 호수 휴런과 미시간을 만나고 이리호수와 합류, 다시 나이아가라 강으로 흐르다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곤두박질치고 협곡에 휘둘린 후 마침내 고된 긴 여정에서 물이 몸을 풀어 쉼을 누리는 곳이다.
나이아가라 강의 끝자락이자 온타리오 호수의 초입인 창밖엔 세일보트가 돛을 올려 바람에 밀려가고 있었다.
“조앤, 오늘은 따님과 동행 했군요!”
다른 부인들이 가끔 딸이나 며느리가 운전을 이유로 동행하면 우리는 우리끼리 앉아 얘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오늘은 나 혼자여서 부인들 사이에 앉았다.
“곧 할머니가 되신다고요, 조앤!”
부인들은 어머니를 향해 일제히 축하의 말을 했다.
“그런데 며느님은 사우스(South)에요, 노쓰(North)예요?”
부인들은 코리아에 대해 질문을 했다.
“당연히 사우스 코리아죠.”
어머니가 말했다.
“조앤은 행복하겠어요, 이렇게 예쁘고 참한 딸에다 며느님까지..”
“고마워요. 사실은 오늘 함께 와서 인사드리게 하고 싶었는데 몸이 무거워서 쉬라고 했어요.”
실은 결혼식 없이 부부가 된 탓에 모르긴 해도 입에 꽤 오르내렸을 수아를 아직은 부인들 앞에 세워 난감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일 것이었다. 그 점은 어머니도 아직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코리아에서 결혼한다고 했을 때 결혼식에 갈 준비를 하시던 부모님에게 브라이언이 반지만 주고받는다며 먼 길 오지 마시라고 해 많이 실망을 하셨고 가서 이유를 말하겠다던 브라이언은 여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기에 결혼식도 없이 반지만 주고받니? 정말 아들을 잃어버린 것 같아, 애나야.’
외아들 결혼식을 거하게 할 계획을 하고 있던 부모님은 거한 결혼식은커녕 저들끼리 반지만 주고받으니 오지마시라던 브라이언의 그 말에 코리아 여행까지 취소하며 크게 실망하셨다. 하여 한 번은 부인들 모임에 수아를 인사를 시키고 싶으신 것이 어머니의 마음이지만 이번엔 무거운 몸을 핑계로 내가 동행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럼요, 몸도 무거운데 조심해야지요.”
“부러워요, 조앤. 우리 둘째도 장가를 보내야 할 텐데 어디 좋은 신붓감 없을까요?”
대화가 자식 얘기로 시작되자 에반스(Evans) 부인이 좌중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에반스 부인이 자식을 위한 중매를 공개적으로 부탁한 것이었다. 모두 과년한 자녀들을 둔 부인들이므로 자녀들의 혼사는 서로에게 관심 있는 대화꺼리이기도 했다.
“마이클 말이군요?”
누군가의 입에서 떨어져 나온 마이클이란 이름이 무심코 앉아 있던 내 정수리를 탁 치고 굴러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커피 잔을 내려놓고 벌렁거리기 시작하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창밖의 호수에다 눈길을 주었다. 세일보트는 이미 저만치 바람에 밀려갔고 머리를 치켜든 쾌속 보트 하나가 물을 가르며 저 홀로 종횡무진하고 있었다.
마이클, 그 이름만으로도 아직 철렁 가슴부터 내려앉는 것 같은 이 증세는 분명 내 속에 깊이 박힌, 오랜 세월에도 삭지 못하고 돌출한 그 기억들 때문일 것이다.
“참, 애나도 마이클을 알겠구나?”
그 때 느닷없이 길모어(Gilmour) 부인이 날 향해 말을 걸었다. 길모어 부인의 질문에 부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쏟아졌고 내가 다시 바짝 긴장했다.
마이클 에반스, 내가 그를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어렸을 적의 내게 그토록 모진 상처를 안긴 아이, 같은 동네에서 우연히 라도 만날까 두려워한 그 악동, 마이클이었다. 그 마이클이 에반스 부인의 둘째 아들이란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길모어 부인의 질문은 전혀 예상치 않았던 것이어서 부인들 사이에 앉아 있던 나는 그만 몹시 난감했다.
“아다마다요. 우리 애나와 브라이언이 마이클과 같이 공부했잖아요.”
내 기분을 짐작한 어머니가 나대신 날렵하게 대답하셨다. 예사로운 것 같아도 어머니의 말 속에 뼈가 들어 있음은 나 외에 부인들은 아무도 짐작조차도 하지 못했으리라. 그 마이클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시달렸다고요, 하는 약간의 감정의 뼈였을 것이다.
“마이클과 애나가 서로 잘 아는 사이였군요? 잘 됐네요! 말 나온 겸에 마이클과 애나, 어떻게 생각하세요?”
길모어 부인이 이미 잘 아는 사이라고 멋대로 해석하더니 말 나온 겸에 라며 느닷없이 날 끌어들였다.
갑자기 일어난 어이없는 상황에 나는 그만 그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고 싶었다. 길모어 부인의 말에 어머니와 다른 부인들은 아주 잠시 벙어리가 된 듯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리고 어머니와 에반스 부인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길모어 부인을 쳐다보다가 이어 어머니와 에반스 부인이 서로 마주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 앉은 나는 투명인간이었다.
“두 청년이 서로 모르지도 않고 양가도 서로 믿을 수 있고요, 안 그래요?”
어차피 끄집어 낸 말,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듯 길모어 부인의 하는 말이 장황했다.
이미 뼈가 든 말을 한 어머니조차도 아무 말을 하지 못한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당황하신 기색이 역력했다.
“실은 우리 마이클한테 시련이 있었어요.”
그 때 에반스 부인이 이미 다들 대충 알고 있을 일, 그러나 쉬쉬하고 있던 그 일을 시련이라며 고백하듯 먼저 언급을 했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에반스 부인에게로 쏠렸다. 아무도 아는 척 할 수 없던, 그러나 발 없는 말이 옮겨 다닌 바람에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을 마이클이 겪은 그 시련을 구체적으로 혼담이 시작되지도 않은 이 시점에 어머니인 에반스 부인이 직접 언급을 했기 때문이었다. 부인들은 입을 다문 채 에반스 부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를 주시하고 있었다. 소문으로 떠돌다 내 귀에까지 든 마이클의 알콜 치료에 대한 고백일 것이었다.
“그건 이미 다 지난 일이잖아요. 마이클은 열심히 일하고 애나는 또 얼마나 참한 젊은이인지는 우리가 다 알고요.”
길모어 부인이 또 나서서 마이클이 겪은 어떤 일을 다 지나간 것으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까지 살짝 치켜 올림으로서 에반스 부인과 갑자기 놀라고 당황해 하는 어머니를 쓰다듬었다. 에반스 부인은 더 이상 아들이 겪은 시련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 생각들이 분명해서..”
할 말이 많을 것 같던 어머니는 성급히 전개되는 전혀 예상치 않은 분위기를 버거워하며 말을 얼버무리셨다. 내 속을 모르지 않을 어머니가 부인들 앞이라 길모어 부인의 말을 차마 냉큼 자르지는 못하고 요즘 젊은이들의 다른 생각을 핑계 댄 것이라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야 뭐 그냥 다리나 놓아주는 거죠. 요즘 젊은이들 똑똑하잖아요.”
그러나 길모어 부인은 집요했다. 마치 마이클과 나의 혼담이 오늘 모임의 주제 같았다.
“두 집안이 자녀들로 서로 한 가족이 되면 이 지역에서는 비교할 와이너리가 없겠는데요?”
오가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포드 부인이 농담을 하자, ‘너무 앞질러 가시네요, 미세스 포드’하면서 에반스 부인은 민망해 했고 어머니는 연거푸 주는 충격에 사로잡혀 웃지도 화를 내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우아하고 교양 있는 부인들의 오늘의 대화는 실망스러웠다, 적어도 내게. 이들은 남의 지극히 사적인 일에 일방적으로 나서서 관여를 하는 무례를 범한 것이다, 더구나 날 앞에다 두고. 나는 어머니를 따라 모임에 간 사실을 후회했다.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모임에 가고 싶어 하실 때마다 동참을 하는 이유는 어머니의 권유이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므로 불편한 자리여도 나는 기꺼이 따랐다. 그것은 평소 ‘노’ 보다는 ‘예스’에 익숙한 내 대답의 습관과도 무관하지 않을 거였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노’라고 했어야 했는데 하는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었다.
어서 일어나고 싶었지만 혼자 먼저 나설 수 없던 나는 몹시 불편한 심정으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부인들이 느긋하게 대화를 마치도록까지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의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길모어 부인이 한 그 말 때문인 것 같았다. 어머니도 마이클이 내게 어떤 존재였던지 브라이언만큼은 아니어도 조금은 알고 계셨다.
마이클, 내가 어떻게 그 이름을 잊을 수 있을까?
처음 캐나다에 와 브라이언과 학교에 가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가장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날 괴롭힌 아이였다.
‘넌 왜 브라이언과 다르니?’
‘네 집에 가라, 애나야.’
‘애나는 벙어리래요!’
마이클이 내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날 괴롭게 하면 나는 아무 말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디서 알고 날듯이 뛰어 온 브라이언은 주먹을 움켜 쥔 채 씨근대며 마이클을 노려보곤 했다.
‘브라이언, 넌 왜 애나와 다르니?’
‘네가 왜 애나 편드니?’
마이클의 개구쟁이 짓은 멈출 줄 몰랐고 브라이언이 부모님께 얘기를 했어도 부모님은 크게 관여하지 않으셨다. 너무나 잘 아는 같은 업종 친구의 아들이었고 무엇보다도 아이들 일에 어른들이 개입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 것도 모르는 부인들이 나를 마이클과 엮으려는 것이었다. 마음이 몹시 불편했지만 기색을 보일 수는 없던 자리였다.
“이제는 모임도 피곤하구나.”
집에 도착하도록 침묵하던 어머니가 말하셨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늘 따랐을 모임, 이제는 자식들 일까지 어머니를 피곤하게 했을 것임이 분명했다.
“우리 애나도 좋은 청년 만나야 할 텐데, 너한텐 내가 할 말이 없구나, 애나야.”
나는 대답 없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이클에게 있었다던 시련에 관한 것이었다. 길모어 부인이 말을 가로채는 바람에 에반스 부인이 하려다 만 그 일이었다.
작은 동네라 쉬쉬해도 소문은 금방 거품까지 얹어 퍼졌었는데 그 소문에 의하면 마이클이 알콜중독 치료를 받는다는 것이었고 한참 후엔 치료를 끝내고 아버지 소유의 와이너리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정말 우연히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널 맞을 때 페루의 아버지와 오빠와 내가 약속했어, 널 내 딸로 키울 거라고.”
어머니가 부인들 간에 주고받은 말에 충격 또는 피로를 느끼셨음이 분명했다. 처음의 그 때부터 한 번도 입에 올린 적이 없는 말을 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어머니의 딸이어야 하는 이유였다.
내가 기억하는 그 때의 마리오 오빠는 나를 보내지 말라고 아버지께 사정했었다. 처음엔 말하다가 나중엔 소리를 쳤었다, 보내면 안 된다고.
‘네 엄마만 있어도 보내지 않는다, 마리오. 우리 마마니를 딸로 키운다잖니?’
아버지는 오빠를 달래다가 야단도 치고 나중엔 큰 소리가 오갔다. 아버지가 치차에 취하면 오빠도 마셨다. 나 때문에 아버지와 오빠가 다투는 모습을 나는 아주 싫어했다.
“너는 내게 과분한 딸이다, 애나야. 무엇보다도 브라이언이 밝은 사람으로 잘 성장하도록 영향을 준 누나지. 엄마 아버지가 할 일을 대신 다 감당한 거야.”
나는 어머니의 말씀이 진심인 줄 알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런데 왜 브라이언과는 그토록 야박한 경계를 두셨던 것일까? 아무리 시작이 누나와 동생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내게 너무 가혹한 경계였다.
한창 몸과 마음이 성장하던 브라이언과 나 사이에 어머니가 그으신 경계선은 내가 하는 모든 일엔 경계선이 있을 수 있다는 의식을 은연중에 갖게 했었다. 그렇지 않아도 주저하다가 참고, 매사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던 새 가족 속에서의 내 행동이었다.
자라면서 내가 느낀 경계선은 무엇보다도 어머니를 어렵게 여기도록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브라이언이라면 주저할 필요가 없었을 어떤 일에 나는 말이나 행동에 앞서 예의부터 의식했고 그것은 곧 내가 만든 한계선의 의미였다. 그 선이 속에 자리 잡고 있었으니 내 생각을 선뜻 드러내지 못하고 ‘노’ 라고 하고 싶어도 ‘예스’로 대답했을 것이다. 남매로 자랐어도 나는 극복할 수 없던, 브라이언과는 다른 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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